실패할 가능성에 투자가 진정한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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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가능성에 투자가 진정한 가치이다
  • 장나현 기자
  • 승인 2016.04.12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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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희망이다>홍성의 인맥-홍성출향인을 찾아서 <3>

이거종 전 KBS영상제작국장

홍주 이씨의 무사 DNA가 흘러 진취적
엄홍길 히말라야 등정을 카메라에 담다
국민체위향상 국가발전기여 훈장 수상
홍성농업에 “세계 최고가 되라”고 조언

▲ 이거종 전 KBS영상제작 국장.

“당시 대한민국 산악회에서는 히말라야의 험난한 14개 봉우리를 한 사람이 전부 올라가는 사람이 나타나길 뜨겁게 열망했습니다. 산악회에서는 ‘만약에 14개 봉우리를 올라가는 사람이 한국에서 나타난다면 엄홍길이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 사람도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히말라야 등정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이거종 국장(65)은 아시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한 산악인 엄홍길을 세상에 알린 주인공이다. 이 국장은 산악인들 사이에서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을 이야기하는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모두 올라간다면’ 소릴 들었다. 8000m는 흔히 신의 거처라고 하며 인간이 갈 곳은 아니였다고 한다. 1995년 14개 봉우리 등정에 성공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를 비롯한 6명으로 아시아인은 없었다. 이 국장은 한국 사람이 신체 능력이 부족해서 히말라야에 못 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원이 부족해서 오르지 못함을 알았다. 

이 국장을 만나기 전 엄 대장은 이미 7개의 봉우리를 오른 전력이 있었다. 한 봉우리를 등정하는데 8000만원에서 2억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이 국장은 1995년 당시 안국정 KBS 본부장을 설득했다. “산악인들의 희망을 찾았습니다. 선진국은 탐험과 도전의 문화가 있잖습니까. 탐험은 국력입니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 투자하는 가치가 진정한 가치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히말라야 14좌 등반 추진위원회’가 설립되고 1995년 KBS촬영팀과 엄 대장 일행은 마나슬루로 떠났다. 카메라에 등정 인물을 담으려면 그들보다 먼저 산에 올라가고 먼저 내려와야 제대로 담을 수 있었다. 전문 산악인도 힘들어하는 히말라야 등정을 이 국장은 카메라를 짊어지고 해냈다. 이 국장은 낮에는 38도까지 올라가고 밤에는 영하 15도로 떨어지는 날씨를 견뎌야 하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눈사태 등으로 일행이 목숨을 잃었을 때다. 

“사고 후 공항에 도착했는데 까만 옷을 입은 미망인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죄책감으로 힘든 날을 보냈었습니다.” 이 국장은 이 일로 공황장애에 시달리기도 했다. 2000년 K2를 끝으로 엄 대장은 14좌를 완등했다. 이 국장은 엄 대장뿐만 아니라 2010년까지 14좌 등반에 성공한 한왕용, 박영석, 오은선과 함께 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산악인들 사이에서 이 국장은 회자되고있다.

▲ 가셔브롬 원정 중인 이거종 감독(2003), 엄홍길 대장과 마나슬루 원정(1996).

이 국장은 한국전쟁 당시 갈산면 운곡리에서 태어나 4살 이후 줄곧 서울에 살았지만 고향이 홍성이라며 홍성에 애정을 보였다. 방학 때면 친척들이 있는 홍성에 내려와 직접 살조개를 캔 추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이 국장은 1991년도에 ‘세계의 농업-농업이 가는 길’ 농업 다큐를 취재해 미국,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 스위스, 이스라엘, 일본, 대만 8개국을 다녀와 선직국의 농업을 전파를 통해 널리 알렸다. 농업다큐는 사람들의 관심이 별로 없을 때였는데 우루과이라운드 배경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이 프로그램으로 이 감독은 서울언론인클럽 언론상을 수상했다. 

▲ 국민체위향상 국가발전 기여 훈장을 수상한 이거종 감독(2002).

그는 축사와 해산물이 많은 홍성에 따뜻한 조언의 말도 건넸다.
“홍성한우라고 하면 횡성 아니냐고 말하잖아요. 홍성 최고가 아니라 세계 최고를 만들겠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최고인 이유를 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합니다. 일본에 갔을 때 우리 쌀이 최고라고 말하는 지역에 간 적이 있는데요. 도정했을 때 한 가마에 돌 하나 안 나온다는 근거였습니다. 세계최고는 비등비등한데 차이는 손톱만합니다. 홍주는 목사가 있었던 큰 곳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국장은 1978년도에 KBS에 입사해 32년 동안 KBS에 몸을 담으면서 영상제작의 한 획을 그었다. 어렵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져 본적이 없는 이 감독은 1등을 놓쳐 본적이 없는 승부사다. 재직 당시 남들이 힘들어서 못하는 일은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하며 먼저 나서 궂은일을 맡아 최고로 승진했다. KBS는 상행평가와 하행평가를 함께 실시하는데 두 평가 모두 전국에서 1등을 2번한 특이한 기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 국장은 2014년 채널A 뉴스네트워크 대표이사직을 끝으로 현재 어머니 고향인 여주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터를 잡고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는 가끔 후배들과 교류하면서 평화롭게 지내는 생활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고 하면 성에 안 찰 정도로, 무모할 정도로 죽기 살기로 살아왔었는데요. 앞으로 무엇을 더 한다면 그건 과욕이지요. 이제는 고마운 사람들을 잊지 않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싶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평화롭게 자연에 동화되는 삶을 사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 독도 365일을 촬영 중인 이거종 감독(1991).

이거종 전 KBS영상제작 국장은...
갈산면 운곡리에서 태어나 4살 때부터 서울에서 거주한 이거종 전 KBS영상제작국장은 한양공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 후 1978년 KBS에 입사했다. 2010년 TV제작본부 영상제작국장으로 정년을 마치고 2011년 KBS아트비전 고문, 2014년 채널A 뉴스네트워크 대표이사를 지냈다. 주요 제작 프로그램으로는 1987년 첫 해외탐사보도인‘ 중앙아시아를 가다’, 1991년 세계 각국의 농업현장을 취재한 ‘세계의 농업-농업이 가는 길’, 1992년 독도의 365일을 기록한 ‘독도 365일’, 1996년 엄홍길 대장의 히말라야 등정을 방영한‘ 마나슬루에 서다’가 있다. 수상내역으로는 1991년 서울언론인클럽 언론상 기획취재상(서울언론인 클럽), 1993년 공사창립 20주년 기념유공(KBS), 우수프로평가 기획상(KBS), 1996년 일요스페셜 히말라야 신들의 성지 촬영 유공(KBS), 1996년 한국방송대상 촬영상(한국방송협회), 2000년 캉첸중가 등정 단체상(KBS), 2002년 국민체위향상 국가발전 기여(훈장), 2003년 우수프로평가 촬영상(KBS)이 있다.

글=장나현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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