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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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
  • 한지윤
  • 승인 2016.04.1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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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기숙사 유리창에 상반신을 내밀고 있는 여자들의 호기심에 가득찬 시선과 미소가 패트롤카의 붉은 빛이 번쩍이는 현장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경찰관들은 얼굴이 굳어졌다. 이렇게 많은 풍만한 여자들의 눈빛에 위압을 당한 것일까. 아니면 사건이 의외라서 차라리 한바탕 웃어만 버릴 수도 없는 처지여서일까. 지금 이 현장은 마치 뮤지컬 무대의 한 장면과도 같다고 표현해야 옳은 것이다. 누군가 지금 당장 ‘레오나드 번스타인’처럼 유연하고 멋지게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들어 올려 경쾌하게 지휘를 하게 되면 8명의 경찰관들이 150여명의 아름다운 여대생들과 노래 부르면서 손을 잡고 팔짱을 서로 껴가면서 춤을 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는 누구나 선망하는 뮤지컬의 본고장인 브로드웨이는 아니었다.
현관에서는 연숙이가 아래로 내려와 현장을 보려고 몰려 내려오는 학생들을 그녀는 현관 당번답게 큰 소리로 제지하며 다시 올라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녀가 큰 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사투리가 섞여 나와 모두들 깔깔대고 웃어 댔지만 연숙이의 당번다운 위력은 제법 위엄이 있어 보였다.
“몰려들 가면 안돼요! 구경거리 좋아하는 그런 속물근성은 여대생답지 않게 보기 싫잖아요? 자, 이럴 때일수록 여성의 품위를 지킵시다!”
누군가 연숙이에게 질투 섞인 불평의 소리를 던져왔지만 현관에 몰려나왔던 학생들은 이내 자기들 방으로 돌아갔다.
소영이는 현관 쪽을 바라보다가 한 교수와 함께 있는 남성이 치한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연주 교수는 결혼 적령기를 훨씬 넘기고 있는 노처녀였다. 미인도 아닌데다가 통통하게 살이 쪄 날씬하지도 못했고 그 나이답지 않게 놀랍도록 순정파에 속하는 여자였다. 순진하다 못해 연애 따위의 사치스러운 일은 도저히 해 볼 수도 없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수줍어하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전공인 수학 실력은 대단하여 그 인기는 높았으며, 또한 정서적인 면에서도 한 교수는 학생들과 호흡을 잘 맞추었다.
이로 인해서 한연주 교수가 학생들로부터 사랑과 인기를 한 몸에 얻게 되었으며, 소영이는 이러한 한 교수가 설마 남자와 함께 ‘연인들의 오솔길’에 있을 턱이 없다고 순간적으로 생각해 버렸던 것이었다.
“학생의 이름은?”
경찰관이 물었다.
“김소영이라고 해요, 인문계열 1학년이어요.”
“어떤 상황이었길래 치한이라고 생각하게 된 겁니까?”
“글쎄……모르겠어요. 저 치한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그렇게 생각해 버렸는지도 모르겠군요. 다만 숲 속에서 귀에 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렸기 때문에 그만……”
“두 분이 어떤 상황에 있었길래 소리를 지르게 됐던가요?”
경찰관은 치한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개구리를 밟았던 겁니다. 어둠속에서……”
“당신이 밟았던가요? 아니면 교수님께서 밟으셨다가 그만 놀래서……”
치한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겸면 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바지의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을 한 장 경찰관에게 주었다. 명함에는 ‘원자력연구소 원자력공학부 금속연구실 공학박사 나현수’라고 새겨져 있었다.
“송구스럽게 돼 버리고 말았지만 이런 판국에 제 신분을 밝히지 않을 수 없군요. 전 여기에서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제 개인적인 일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저 한연주 교수와 결혼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치한이라고 불리우는 불명예를 얻고 말았지만 사실은 그런 관계입니다.”
소영이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반사적으로 한연주 교수의 얼굴을 살폈다. 노처녀 교수님은 감동한 나머지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연주 교수는 소영이에게 뜻밖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남들한테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음……처음이야. 이렇게 분명히 말하는 건…… 오랫동안 난 현수씨의 진의를 간파할 수가 없어서……”
“경찰관 앞에서 프로포즈를 한 사람도 아마 드물 거야. 저 남자도 나 못지않게 말주변이 없어서 늘……”
“선생님 미안하게 됐어요. 아까 그만……”
소영이는 새삼스레 한연주 교수와 연인인 치한씨에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사실 전 한연주 교수님을 바래다 드리려고 했던 겁니다. 그러고 보니 김소영 학생한테 호위를 부탁해야겠군요. 앞으로 안전하게 말입니다.”
“와이셔츠가 많이 찢어졌군요?”
경찰관이 옷을 쳐다보며 말했다.
“농담입니다만 찢어진 자리 꿰매려면 이 아가씨한테 한 번 더 던져달라고 부탁하시지요……, 아가씨 솜씨가 대단 합니다.”
경찰관은 씨익 웃었고, 나현수씨는 당황해 했다.
“어떤 솜씨를 부렸던가요? 아가씨.”
“네……합기도예요.”
소영이는 주저하면서 대답했다.
“우리 할아버지한테서 배웠어요. 그렇지만 실제로 사용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인 걸요. 이렇게 잘 되리라고는 솔찍이 말씀드려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죠.”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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