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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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
  • 한지윤
  • 승인 2016.04.1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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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연인들의 오솔길
“아가씨가 정말 이렇게 덩치 큰 남자를 저렇게 무참히 던질 수가 있었어요?”
“그렇게 의심스러우시다면 내 친구인 소영이한테 다시 한 번 재연해 보라고 해도 좋을 거예요.”
어느 사이엔가 소영이 곁에 와 있던 연숙이가 불쑥 큰 못소리로 말을 하며 나섰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다시.
“여러분!”
하며 손뼉을 세 번 치면서 조용히 해달라는 시늉을 했다.
“지금부터 소영이가 한연주 교수님의 신랑 후보감을 치한으로 착각하고 조약돌 던지듯 집어 던진 합기도 호신술을 다시 재연해 보여드리겠습니다.”
연숙이의 이 말에 일순간 기숙사 창문에선 환호성과 박수가 여름 하늘에 치솟았다.
“정말 다시 해보일 겁니까? 여기서……”
젊은 경찰관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듯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사실 할아버지께서 함부로 무술을 사용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시긴 했는데……정말 다시 재연해 보여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아무튼 좋습니다. 그럼 누군가 뒤에서 제게 겁탈해 오는 것처럼 해 보여 주시겠습니까?”
8명의 경찰관들 중에서 누군가 ‘해 봐, 해 보라구’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영이는 168센티의 훤칠한 키에 머리스타일은 남자처럼 짧은머리였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은 어떤 남자고간에 감히 접근하기 어려울만큼 우아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블루진에 티셔츠를 즐겨 입는 그녀는 오늘도 몸에 꼭 맞는 블루진차림에 하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는 소영이지만, 그러나 그녀는 50년 전에 여자대학을 설립한 호수돈여사의 염원을 적어도 어느 정도 당연한 것처럼 몸에 배어 활달하게 살아 가고 있는 여대생이었다. 호수돈여사는 영국 출신의 선교사로서 이나라에 입국한 뒤 대학교를 설립하고 여성해방의 교육이 이 땅에 결실 맺기를 간절히 염원했던 것이다. 호수돈 여사는 '대지(大地)는 어머니다. 그 어머니인 여자는 콘크리트보다도 단단한 남존여비의 풍토속에서 진정한 여성해방이 이루어져야 대지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라고 말해왔다고 전해오고있었다. 호수돈여사는 조국인 영국을 버리고 귀화하기까지 했다.
한국이 일본에 의해 강제 점령당했을 때, 여성해방은 독립군의 구둣발 소리와 함께 이 땅에 당당히 흘러들어왔다. 민주주의는 일본이 패전에 떨면서 어리벙벙해 있는 사이에 미군들에 의해 물이 창호지에 스미듯 스며들어온 것이었다. 혹은 츄잉껌처럼 이 땅에 떨어져 심어졌는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떻든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있어서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공기와 같은 것이었다. 공기처럼 친분이 두텁고 진실한 사람이면서도 그 본질은 여간해서 체득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하나하나 진심으로 생각해 보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자, 그럼……"
소영이는 재연해보겠다는 포즈를 취했다. 그녀는 짧은 머리 아래로 그녀의 희대 흰 목덜미를 드러내 놓고 뒤로 돌아섰다.
경찰관은 소영이의 몸에 손을 대는 걸 몹시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고 있었기에 주위 시선에 눌려, 그는 뒤쪽에서 소영이의 두 팔을 꽉 껴안았다.
소영이는 까딱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서있었다. 새장 속에 갇힌 새라고 해야할까.
순간이었다. 소영이가 어깨를 슬쩍 한번 흔들자 꽉 부둥켜 안고 있던 경찰관의 두 팔이 어느 새 벗겨졌고 그런가 싶더니, 그대로 그녀는 번개에 콩 튀기는 동작으로 그의 한쪽 팔을 잡아 어깨로 둘러메자 경찰관의 몸뚱어리는 돌멩이 날아가듯 3미터쯤 앞으로 날아가 나뒹굴어졌다. 패트롤 카의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경찰관은 곤두박질쳤다.
열광에 가까운 환호성이 캠퍼스에 울려퍼졌고, 소영이는 재빨리 달려가 그 경찰관을 부추겨 새웠다.
"윗저고리 팔꿈치가 찢겨졌군요, 아이, 미안해서……"
"아, 아니……뭐, 괜찮습니다."
정작 부끄러운 빛을 보이는 것은 나가 떨어진 경찰관이 아니라 오히려 소영이 자신이었다. 소영이는 셰익스피어 당시의 원형 극장같이 기숙사 창문마다에서 고개를 내밀고 내려다보고있는 학생들과 경찰들에게 머리를 숙여보였다.
"소란을 피워서 정말 죄송해요."
소영이는 그러나 자신의 무술에 스스로 다시한번 자신만만한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오만도 거만도 아닌 자신에 대한 겸손이라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시경찰국 본부로부터 588호 패트롤 카를 호출하는 무전 연락이왔다. 8명의 경찰관은 네 대의 패트롤 카로 갔다. 그리고 경성여자대학교에 나타난 치한은 신고자의 오보였다고 보고했다. 큰 사건이 아니긴 했지만 시경찰국 본부나 시내 전역을 누비고 있는 모든 패트롤 카에서 여자대학교에 나타난 치한이 오보 신고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은 한순간 긴장 속에서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8명의 경찰들은 모두 차에 올라탔고, 모든 학생들은 손을 흔들어주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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