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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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14>
  • 한지윤
  • 승인 2016.06.23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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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그래? 그렇다면 좋지, 내 하숙집으로 가자!”
나교수는 웨이터를 불러 계산을 치뤘다, 그의 주머니 속에는 이제 동전 몇 개밖에는 남지 않았다, 정말 돈이 없는지 어떤지는 의문이라고 소영이는 생각했다, 어쩐지 이런 남자라면 자신의 봉급을 겨드랑이 밑에 숨겨 두고 다니기 때문에 여자가 돈을 우려낼 수도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비는 이미 그쳐 있었고 거리는 인파로 한창 북적거리고 있었다.
“전 함께 가지 않겠어요.”
소영이가 말을 했다,
“그 앨 돌려 보내요! 나 혼자가 아니면 같이 안 가겠어요.”
“넌 돌아가!”
사나이는 아방가르드에게 명령했다,
“오늘은 이미 선약이 되어 있어.”
“난 돌아가라는 거예요?”
아방가르드는 찢어지는 소리를 질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재미있다는 듯이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래, 그래요, 자기 좋은 대로만 행동해 봐요! 어디 누가 듣나……”
“전 가겠어요.”
소영이는 차분하게 담담히 말했다.
“어떻든 전 돌아가겠어요,”
“어이, 좀 기다려!”
나교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저 앨 보낼 테니까 기다려줘.”
“돌아가지 않겠어요! 무슨 소릴 해도 돌아서지 않을 테니까요!”
아방가르드가 울부짖듯이 소리를 지르자, 야생마가 된 나교수는 즐겁다는 듯 웃어댔다.
“그래. 그렇다면 하는 수 없군. 이 아인 내팽개치고 가는 수밖에.
자, 둘이서 가자고,“
야생마는 소영이의 손을 움켜 잡았다,
“싫어요!”
“그런 소린 내겐 매력없지……”
이번에는 두 손으로 소영이의 팔을 붙잡았다, 그 순간 소영이는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내 던지고 재빨리 허리를 뒤로 빼냈다. 합기도의 손목 비틀기로 나대수 교수의 손을 비틀어 올리자 그는 공중제비를 하며 큰 대자로 벌렁 나자빠졌다, 야생마의 몸뚱어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길가의 빗물로 생긴 물구덩 속으로 얼굴을 쳐 박으면서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야생마는 간신히 기운을 차려 흙탕물을 뒤집어 쓴 얼굴을 비쭉이 쳐들고, 사나운 얼굴로 협박했다,
“넌 도대체 날 누구로 보고 이렇게 버르장머리 없이 까불어 대는 거야?”
소영이는 신중히 다음 자세를 취하면서 대답했다.
“네에, 잘 알고 있죠, 미국문학을 전공한 대학의 교수이시고, 번역인가 뭔가도 하시는……”
“뭐라구?”
나대수 교수는 안색이 싹 변해 있었다, 비록 흙탕물을 뒤집어 쓰고 있어 잘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전 당신에게서 영문학을 배우고 있는 학생인걸요?”
별안간 웃음소리가 온 길바닥에 넘쳐 흘렀다. 나대수 교수는 그대로 털썩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믿음직한 사람이군요.”
 이렇게 말하면서 소영이의 가방을 주워 준 여자는 바로 아방가르드였다. 그녀의 볼에도 나교수가 나동그라지면서 튕긴 흙탕물 몇 방울이 붙어 있어서 마치 저 유명한 영화 속의 젤 소미나에게 노래를 가르쳐 준 연인의 바이올리니스트 볼에 분장으로 그려진 눈물과도 같았다.
당신이야말로 기찬 여자군요. 나대수 교수한테는 창피한 일이 되었지만……이젠 뭔가 넌더리가 나겠죠.“
“만일 좋으시다면 헤어지지 말아 주셨으면……교수님이 적적해 하시니까요.”
소영이의 손을 잡은 아방가르드의 손은 따스했다. 그것은 뜻밖에도 모성의 뜨거움과 관대함을 지닌 손바닥처럼 소영이 에게는 느껴졌다.
그러자 갑자기 소영이는 자기 주위에 울타리를 친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소영이는 가방을 거머쥐고는  급히 그 자리를 빠져 나와 어둠이 깔린 인파 속으로 잽싸게 몸을 감춰 버렸다.

키스라는 건 두 사람이 존재해야만 이루어져……

소영이가 머리를 길렀을 때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은 친구인 연숙이었다.
“얘, 더 빨리 기르고 싶은 심정인 걸.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소영이는 명랑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조롱에 맥주를 넣어 화분에 물 주듯 머리에 뿌려 햇볕을 쬐게 해 봐라. 아니면 맥시칸사라다를 으깨서 문질러 보는게 좋을지 모르지……”
연숙이는 웃지도 않은 채 응수했다.
“사실 말이야. 고백 한 가지 할까? 내게 머리를 기르라고 요구를 해 온 사람이 있어.”
“남자? 아니, 여자니?”
“나암자……”
“뭐! 정말이야?”
연숙이는 놀랐다는 표정으로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너 심야 방송의 신청곡처럼 요구에 의해 머리를 기른다는 거야? 얘, 긴 머리카락이 좋다는 녀석, 어디에 숨겨둔 돈많은 유부남이냐?”
누구든 사나이라는 명칭을 붙은 인간으로부터 머리를 길러 달라고 요청을 받고, 희희낙낙 그 요청에 응하다니, 연숙이에게 비밀을 털어 놓지 않았다고 하더래도 밉살스러운 일임에 틀림없지 않는가, 남자가 머리를 기르라고 했다고 여자가 주책없이 순순히 머리를 길러 가는 때는 어지간히 상대에게 깊숙이 빠져 있는 때가 아닌가,
연숙이에게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소영이에게 머리를 기르게 하고 있는 존재는 돈투성이 머저리 유부남은 아니었다, 젊은 사나이, 그것도 고교시절의 동급반 동창생이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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