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와 정절 지킨 변씨 열행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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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와 정절 지킨 변씨 열행 기리다
  • 장윤수 기자
  • 승인 2016.07.1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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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문화재 -광천읍 오서길 ‘원주 변씨 정려’

【광천】 광천읍 오서길에는 효와 정절을 지킨 원주 변씨의 열행을 기리는 현판과 정려각이 세워져 있다. 원주 변씨는 길주목사였던 변성화의 맏딸로 전라좌수사 이유수와 결혼해 1남 2녀를 뒀다. 자녀 중 큰딸은 안동 김안근과 결혼해 병하, 병연 형제를 뒀으니 원주 변씨는 김병연, 즉 김삿갓의 외조모가 된다.
원주 변씨는 1787년(정조 11) 여름에 길주목사로 근무하던 부친 성화의 병이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게 해 생명을 3일간 연장시켰다. 부친이 사망하자 변씨는 3년 상을 지낼 장성한 아들이 없어 맏딸로 시댁의 허락을 받아 묘 앞에 초가를 짓고 3년 상을 지냈다.
1811년(순조 11) 겨울에는 남편 이유수를 따라 평안남도 숙천에 있을 때 홍경래의 봉기로 주변 여러 고을이 함락됐으나 상경 중인 남편을 대신해 관군을 이끌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남편이 신병의 악화로 고향에 돌아오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피와 살을 고아 먹이는 등 지극한 간호를 했으나 끝내 운명하고 말았다. 이에 변씨는 지니고 있던 비상을 마시고 남편을 따라 사망했으며 장례를 함께 거행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러한 변씨의 열행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특히 정려각 인근에 위치한 절에서는 시시때때로 공양을 하며 원주 변씨의 열행을 추모하고 있다. 마을주민 강 모(70) 씨는 “이전에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노숙자들이 정려각 속에 들어가 잠을 자기도 했다”며 “최근에는 이장이 손질과 관리를 해 불미스러운 일이 없다”고 말했다.
마을에서는 원주 변씨 정려각 옆에 팔각정을 세워 마을 주민들의 쉼터를 만들 계획을 구상 중이기도 하다. 원주 변씨 현판과 정려각은 주민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관리와 보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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