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본고장 자부, 중고제 복원 계승 위해 노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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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본고장 자부, 중고제 복원 계승 위해 노력 [2]
  • 글=전상진 전문기자/사진·자료=한기원 기자
  • 승인 2016.09.1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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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지역 중고제와 한성준의 맥, 그 소리와 가락의 복원 <3>
▲ 심화영 명인 명창.

 ■ 글 싣는 순서
 1. 홍주(홍성·결성)지역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현황
 2.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1 (서천)
 3.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2 (서산)
 4.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3 (공주)

 5. 판소리 동편제·서편제의 맥, 보존과 전승 현황 1 (전북 전주·익산·고창)
 6. 판소리 동편제·서편제의 맥, 보존과 전승 현황 2 (전남 구례·보성)
 7. 판소리 소리제(대가닥) 기록 자료를 찾아서 (서울, 경기도 양평)
 8. 전문가에게 듣는다 (중고제의 맥, 그 소리와 가락의 복원 가능성)





서산 심정순 가, 홍성출신 한성준 선생과 교유 속 내포지역 전통음악 지켜내
최선달의 초기 판소리, 전기 8명창 고수관 명창 활약 속 중고제로 명맥 이어
방만춘·방진관·김봉문·이동진 명창 등의 중고제 충청소리로 이어져 내려와
심팔록-심정순-심상건-심재덕-심매향-심화영 내포 전통음악 올곧이 지켜


 

■ 한성준 선생, 판소리 명고수로 전통음악 절대적 영향 끼쳐
“뼈 삼천마디를 움직여서 춤을 춰야 하느니라.”
우리 몸의 뼈 삼천마디가 움직여서 춤을 춰야 비로소 진정한 춤이 된다며 당시 떠돌이 춤이었던 조선의 전통춤을 반듯한 예술의 자리에 올려놓고 평생을 가락과 춤에 흠뻑 취해 살다간 우리 시대 최고의 예인이 있다. 명고명무名鼓名舞 한성준 선생(韓成俊, 1874년~1941년). 홍성군 갈산면 신안리 신촌마을에서 태어난 선생은 수덕사에 입산, 3년 간 독학으로 북장단을 연마하고, 여기서 예인의 기본기를 다지는 귀중한 체험을 하면서, “소리에는 장단이 그 생명일진대 장단을 낳은 춤은 모든 가락의 어머니”라는 장단과 소리의 조화에 대해, 춤이 모든 장단의 시작이라는 귀중한 원리를 깨닫는다.

특히 선생은 30대 중반 박순조에게 고법을 익히고 박기홍의 수행고수로 따라다니면서 서울무대에 등장, 당대 최고 판소리 명창들의 북장단을 도맡아 치면서 명고수의 반열에 오른다. 명고수로 참봉 벼슬을 하사받은 선생은 1934년 설립된 ‘조선성악연구회’의 일원으로 국악 대중화 운동(판소리 음반 취입 등)을 펼쳤고, 이후 명고수의 길을 넘어서 근대 전통춤 교육의 산실인 1938년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설립해 전통춤 창작하고 복원함은 물론 후진을 양성하는데 남은 여생을 바쳤다. 이에 대해 한국고음반연구회 이보형 회장은 ‘한성준 음악론’을 통해 “한성준 선생의 고법은 뒤를 잇는 고수들의 전범이 되었고, 음반 및 공연 기획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며 “선생은 한국 전통음악에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했다.


 

■서산 중고제 소리 맥, 심정순 가가 옹골지게 지켜내
홍주(지금의 홍성)의 한성준 선생과 더불어 당대 내포와 충청권의 전통예인들은 주로 서산·서천·공주·논산 등에서 활동을 하다가 서울 원각사·연흥사·협률사·광무대 등의 극장이 생겨나면서 명성을 쌓아간다. 서산지역에서 활동한 예인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서산 중고제를 지금까지도 지켜나가고 있는 심정순 가는 당대 한성준 선생과 함께 중고제 명인 일가(一家)를 이루며, 서산 중고제 판소리를 옹골지게 지켜내고 있다. 물론 심정순 가 이전에도 서산 중고제 판소리를 일으키고 지켜낸 명창들이 있다. 고수관·방만춘·방진관 명창 등이다. 하지만 서산 중고제 판소리의 못자리는 심정순 가다. 심정순 명창을 이어 심상건·심재덕·심매향·심화영에 이르기까지, 청송 심씨 일가에서 아직도 소리 맥을 이어가고 있기에, 충청소리인 중고제 소리 맥을 잇기 위한 노력이 홍성을 비롯한 서산, 서천, 공주, 논산 등에서 계속되고 있다.
 

▲ 심정순 명창 기념비.

■서산 고북 출신 전기 8명창 고수관, 목청 자유자재 구사한 ‘딴청일수’
서산지역에서 먼저 언급해야할 대표적인 중고제 명창은 고수관이다. 고수관(高壽寬, 1764~?) 명창은 서산시 고북면 출신으로,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에 활동한 전기 8명창의 한 사람이다. 만년에는 충남 공주 지역에 거주했다고 전하며,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그의 전승계보는 알려진 바 없으나, 중고제 판소리 시조로 불리는 염계달(廉季達)의 소리를 많이 계승했다고 한다. 그는 문식(文識)과 재주가 뛰어나, 소리판의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사설과 곡조를 지어 부를 줄 알았다. 대구감사의 부임 축하연에 참석한 그가 그날 잔치에 참여한 기생들의 이름에 멋진 시를 붙여 <춘향가春香歌〉의 ‘기생점고’를 바꾸어 불렀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신재효(申在孝)의 <광대가(廣大歌)>에서 그를 ‘고동지(高同知)’라고 지칭한 데서, 그가 동지 벼슬을 제수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성음이 매우 미려했을 뿐만 아니라, 목청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이 탁월해 ‘딴청일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판의 현장성을 살려 변화무쌍한 기교를 부릴 줄 알았다는 점에서, 그는 음악적 임기응변이 탁월한 인물로 평가된다. 중중모리로 부르는 <춘향가> 중 ‘자진사랑가’가 그의 더늠이다. 염계달의 소리제를 따른 추천목으로 되어 있어, 흥겨우면서도 흥청흥청하는 느낌을 준다. 공주시 무릉동에 있는 <박동진판소리전수관>에 가면 이를 증명하는 ‘명창 고수관 기념비’를 만나볼 수 있다.

 

■서산 해미 출신 명창 방만춘·방진관, 목청 젖혀 내는 ‘아귀성’ 일품
이 시기에 이름을 날렸던 또 한사람의 중고제 판소리 명창은 방만춘이다. 방만춘(方萬春, ?~?)은 서산시 해미면에서 태어나 19세기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이며,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세습예인 집안 출신으로, 판소리 명창 방진관의 조부이다. 그는 11세부터 해미의 일락사에 들어가 10년 동안 공부하고, 황해도 봉산의 어느 절에 가서 4년간 독공했다. 그는 목청을 젖혀가면서 힘차게 내는 소리인 ‘아귀성’, 아주 가늘게 그리고 미약하고도 분명히 내는 소리인 살쇄성을 잘 구사했다. <적벽가>를 장기로 삼았으며, 그 가운데 ‘적벽화전 대목’을 특히 잘 불렀다고 한다. 그가 이 대목을 부르면 소리판이 온통 불바다가 되는 듯했다고 전한다. 그의 소리는 손자 방진관이 계승했으나, 지금은 그 맥이 끊겼다. 그의 손자인 방진관(方進寬, 1860?~?) 명창은 본명은 방응교(方應敎)로,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조부 방만춘 명창의 소리 맥을 이었다. 일제강점기 퉁소 명인으로, 그가 가야금·퉁소·해금으로 취입한 ‘낭자출궁’, ‘녹음방초’, ‘삼고초려’ 등 여러 곡은 일본 빅타음반에 전한다.

이밖에 1875년 서산에서 출생한 김봉문 선생은 근대 5명창 반열에 들지 않았으나 당대 알아주는 명창으로 고종황제로부터 참봉벼슬을 제수받기도 했다. 또 생몰연대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이동진 명창은 위의 명창들보다 훨씬 앞선 17세기 초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며, 서산 중고제 판소리의 긴 역사와 명맥이 이때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 고수관 명창 기념비.

■서산 중고제 판소리·전통음악·승무 발전시켜온 심정순 가
서산 중고제 판소리 소리 맥은 고수관·방만춘·방진관·김봉문·이동진 명창 등이 있어 가능했지만, 무엇보다 최근까지 서산 중고제 판소리의 명맥이 유지되어온 것은 지난 2009년 작고한 ‘심화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명창 심정순의 딸이자 가수 심수봉의 고모로 예인 집안의 가통을 이어오면서 판소리뿐만 아니라 춤사위도 뛰어나 ‘심화영류 승무’로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심정순(沈正淳, 1873~1937)은 누구인가? 중고제 판소리 명창이요 가야금병창 및 산조 명인으로 널리 알려진 국악계의 거장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세습예인 집안 출신으로, 피리와 퉁소의 명인 심팔록(沈八綠, ?-1883)의 3남1녀 중 둘째 아들로 1873년 읍내동 학돌재에서 태어났다. 또 그는 가야금병창과 산조의 명인 심상건(沈相健, 1889~1965)의 숙부이자, 가야금풍류·단소풍류·가야금병창·판소리의 명인 심재덕(沈載德, 1899~1967)과 가야금병창·판소리·잡가·승무의 명인 심매향(沈梅香, 1907~1927),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 심화영(沈嬅英, 1913-2009) 남매의 부친이다. 이로써 심정순 가는 서산을 넘어 전국적으로 유명한 예술가 집안이라 할 수 있다.

심정순은 25세(1897) 무렵부터 판소리, 잡가, 재담과 가야금, 양금, 단소를 두루 익혔다고 전하는데 명확한 사승 관계는 알 수 없다. 그의 소리는 자녀들과 조카 심상건에게 전수되었으나, 심화영을 통해 극히 일부만 전승되었다. 심정순 일가의 소리는 심팔록-심정순-심상건, 심재덕, 심매향, 심화영으로 여러 대를 거치면서 내포 지역 특유의 음악 어법을 확립했다. 평조를 중심으로 한 악조의 사용이나 경기 어법이 녹아 있는 선율 진행 등에서 그 가계 소리의 특색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는 20세기 전반의 대표적인 중고제 판소리 명창으로, 홍성 출신 한성준 선생 등과 교유하면서 충청·경기지역의 향토 음악적 어법을 충실하게 구사했다고 평가된다. 평조를 많이 사용했으며, 계면조 대목에서도 평조적 진행을 보였다. 도약진행이나 장식음의 활용보다는 평탄하고 단조로운 선율을 지향했으며, 높은 음역에서 지속적으로 거뜬거뜬하게 들고 가며 소리를 했다. 이러한 왕성한 활동은 끝내 그의 건강을 해쳐 중풍으로 쓰러지게 되는데 풍으로 인해 활동이 어렵게 되자 고향 서산으로 돌아와 읍내동에서 아들 심재덕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며 지냈다. 그 식당은 ‘낙원식당’이었다.

 

■서산 2010년부터 중고제 판소리 연구사업 시작, 복원 노력 이어져
서산시에서는 지난 2010부터 서산 출신 중고제 판소리 명창들의 연구 사업을 본격 시작했다. 이해 11월 열린 ‘서산과 내포제 문화’ 학술대회에서는 ‘서산지역 내포제 문화의 영역과 역사적 의미’, ‘서산출신 명창 고수관의 생애와 예술연구’, ‘방만춘ㆍ방진관 명창의 활약상 검토’, ‘심정순 집안의 소리와 내포제 문화’, ‘서산지역 중고제 및 내포제 활용방안’, ‘서산지역 중고제, 내포제 복원기원 마련과 발전방안’ 등 서산 중고제 판소리의 학술연구 사업의 본격 시작을 알렸다. 서산 중고제판소리보존회 김기화 회장은 “서산의 많은 자원들 중 해미읍성 축제 등을 이용해 중고제 명창대회를 서산에서 개최하는 활성화 방안 등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이밖에 서산 중고제 판소리 명창 동상, 상징탑, 기념관 등 볼거리도 만들어 상징적으로 부각시키면 훨씬 의미가 살아날 수 있는 축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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