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의 가치, 동네주민들 40년 사랑방 ‘삼화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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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의 가치, 동네주민들 40년 사랑방 ‘삼화서점’
  • 글=한관우/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6.09.1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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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네책방의 희망과 전략

공동체문화예술 소통공간을 꿈꾸다<8>
▲ 동네책방에서 실시하는 지역작가의 초청 강연은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은 김용택 시인 초청강연 모습.

책만 파는 서점이 아니라 지역주민들 문화공간 역할도 함께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마을사람들 책을 통해 행복해 져야
동네서점이 마치 도서관과 같은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어야
지역의 문화거점 동네책방 사라지는 현상 해결할 당면 과제


 

지역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동네서점을 활용하는 것, 이것이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드는 것 그 이상으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러니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놓치지 말자. 결국 이것이 지역의 가치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책을 파는 것은 물론이요,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에, 다양한 강연회까지 열리는 재미난 서점이 있다. 전북 김제시에 있는 ‘삼화서점’이 그곳이다. 삼화서점은 김제시 요촌동 후미진 곳에 지난 1975년 문을 열었으니, 4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책방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김제지역에는 10곳 가까운 서점이 있었지만 거의 문을 닫고 지금은 동네 서점이라고는 딱 두 곳만 남아 있다고 한다. 삼화서점이 위기를 딛고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무료 독서실을 만들어서 운영하거나 경찰서 유치장 내 수감자들을 위한 교화문고를 설치하는 등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삼화서점은 개업 이래 줄곧 향토서점으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도시 개발과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수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펼치면서 자생력을 키워왔던 것이다.

 

■책방, 문화적 가치를 놓치지 말아야
김제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삼화서점’을 40여 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주인공 정봉남 대표(68). 이 서점 역시 기울어가는 지역서점을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 사랑방’으로 만들어 지역의 명소가 되고 있다. 삼화서점의 변신은 단순히 책만 파는 서점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는데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서점 안에 원목 탁자를 놓고 누구든 앉아서 책을 보고 쉬어갈 수 있는 북 카페를 만들었으며, 지역주민들과 함께 근대역사 문학기행을 실시하는 등 지역의 명소로 뜨면서 위기의 시골서점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비결이다. 무료 독서실을 열어 학생 후원활동을 하고 ‘책 보내기 운동’ 등을 통해 김제 시민들과 함께 소통하는 공간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서점이 문화공간으로 바뀌자 지역주민들의 발걸음도 한결 늘어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삼화서점을 중심으로 지역에 문화 붐이 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역 작가들은 재능기부를 하는가 하면, 무료 독서실도 생겼다. 삼화서점은 틈틈이 경찰서와 학교 등에 무료로 책을 기부하며 책 읽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하지만 자금난으로 꾸준한 실천이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김제시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마을 사람들이 책을 통해 행복해지는 노하우가 이 서점의 성공비결이며 농촌서점의 희망인 것이다. 한편 정 대표는 김제의 자생 봉사단체인 청진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김제출신 벽천 나상목(1924~1999)화백과 강암 송성용(1913~1999)서예가의 작품을 기증받아 전시회를 열고, 그 기금으로 무료 독서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환경이 열악해 집에서 공부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면서 “참고서 한 권도 사보기 어려울 때 책을 구비해놓고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고 떠올렸다. 정 대표는 새마을운동 일환으로 새마을문고 김제지부장을 맡으면서 김제경찰서 유치장에 ‘교화문고’를 설치하는 등 독서운동을 주도했을 만큼 지역의 다양한 활동에 매진해왔던 것이다. 이 같은 활동 덕분일까. 삼화서점은 지난 2013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역서점 문화활동 운영지원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동네서점 진흥을 위해 시작한 이 사업을 등에 업고 정 대표는 김제시립도서관과 함께 ‘탁류’와 함께하는 채만식 문학기행, 김용택 시인 초청강연 등을 열기도 했다. 그런데 주민들과 독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고 전한다.

한편 10여 년 동안 김제시새마을문고지부장을 맡아 책 읽는 문화를 만든 것도 그가 이끌었다. 김제시내의 마을끼리 서로 책을 주고받는 ‘책 보내기 운동’을 했던 것. 주민들과 함께 추천 도서를 선정해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앞에서 무료로 책을 나눠주기도 했다. 이러한 묵묵한 나눔 정신의 실천을 지켜본 김제 시민들은 지난 1988년 정 대표에게 공로상인 ‘김제 시민의 장(章)’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삼화서점’의 변화와 도전은 지역서점이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면서 하나의 새로운 생존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혹자는 동네서점이 마치 도서관과 같은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는 문화적 가치에 의문을 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지역에 얼마나 많은 도서관이 있으며, 또 얼마나 다양한 문화공간이 존재하는지를 생각해보면 김제 삼화서점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지역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동네서점을 활용하는 것, 이것이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드는 것 그 이상으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다. 결국 이것이 지역의 가치가 될 테니까 말이다.

▲ 동네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김제 삼화서점.

■마을사람들 책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면
지난 40여 년간 주민들과 소통하며 명맥을 유지해온 삼화서점 역시 사정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30~4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학교 수가 절반, 학생 수는 십분의 일로 줄었고, 매출도 그에 비례하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터넷 서점이 발달하면서 동네서점이 설 곳이 없어진다는 안타까움이 오히려 동네책방을 살려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변하고 있다. 김제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지난 40여 년간 책과 삶을 함께 나눈 정 대표와 삼화서점의 희망사항은 딱 한 가지. 마을 사람들이 책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실천해 보이겠다는 의지가 그것이다.

이렇듯 서점 곳곳에는 긴 세월의 흔적과 사연들이 남아 있다. 너무도 빠르게 새것이 낡은 것을 대체하는 이런 시대에 시간의 더께가 내려앉은 것들은 변함이 없으므로 깊은 울림을 준다. 꾸미지 않아서 더 좋은 곳, 변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소중한 곳. 그런 마음 씀씀이가 담긴 오래된 책들이 지금도 서가 꼭대기에 차곡차곡 쌓여 책방의 연륜을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책 향내 가득하던 이러한 ‘동네책방’들이 하나둘 스러져가고 있다.

출판 르네상스니 인문의 부활이니 하며 많은 사람들이 책 살리기에 열심이지만 고사 위기의 동네서점을 구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1994년 전국 5600여개에 달하던 동네서점은 2003년 2247개로, 현재 1700여개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식 및 문화 향유의 매개 역할을 수행하던 서점의 몰락은 단순히 사업자의 폐업 문제, 즉 시장 논리만으로 볼 수 없다. 산업의 변화 속에서 인문과 지식의 질곡이 시작된 것에 다름 아니다. 동네서점 종사자들은 몰락 원인을 치열한 가격 경쟁, 독과점적 폐해에서 찾는다. 이들은 멸종의 위기 속에서도 동네서점을 지키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선 동네서점들이 문화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이 편하게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며 토론도 즐기는 지식충전소이자 휴식처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형서점이나 인터넷 서점들이 줄 수 없는 장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물결이 점점 거세지고 있는 것은 희망적이다. 동네책방이 되살아나고 독립출판서점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책방의 부활과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더한다. 지역의 문화거점인 동네책방이 사라지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진작 해결했어야 할 당면 과제의 하나다. 특히 농촌지역이나 시골에서의 책방 감소 추세도 특정 자치단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기류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독서문화의 풀뿌리인 지역서점, 동네책방은 동네 주민들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며 긴 시간 사람들과 함께 해 왔다.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에 밀려 우후죽순 문을 닫는 위기에 처한 지역서점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지원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서점이 지역사회와 연계한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됨으로써 지역서점을 활성화하고, 지역사회의 독서 인구 확대를 위해서도 동네책방이 필요한 이유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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