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떨어져 별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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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떨어져 별이 되다
  • 윤여문<청운대 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6.09.3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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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둥이인 나에게는 네 명의 누이가 있다. 53년생 큰 누이와 나이 차이는 21살이고 제일 막내 누이와는 6살 차이다. 재미난 것은 어린 시절 앞집에 살았던 친구 방선배의 어머니와 우리 큰 누이가 동갑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은 네 명의 누이를 갖는다는 것은 네 명의 인자한 어머니를 갖는 것과 같은 엄청난 행운이고 항상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누이들이 나를 키워주었으니 내 유년시절의 추억 대부분은 그녀들과 연관된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녔던 셋째 누이는 주말마다 집에 내려왔다. 어린 내가 주말을 기다렸던 이유 중 절반은 누이와 함께 며칠을 지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주일 만에 만난 누이에게 껌딱지처럼 딱 붙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지난 한 주의 일을 가지고 계집아이처럼 수다를 떨곤 했다. 누이와 함께 있을 때면 나는 온전히 순한 아이가 됐다. 일요일 저녁, 수업 때문에 서울로 떠나려는 누이에게 월요일 아침에 학교 가라며 자주 떼를 쓰곤 했다. 그러면 누이는 슬며시 짐가방을 풀고 월요일에 집을 떠났지만,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 누이가 이미 학교에 가고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마음이 울적해지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누이는 글씨도 참 예쁘게 썼다. 예쁜 글씨체는 분명히 새로 산 샤프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해 “이 샤프 나 줘”하면 피식 웃으며 말없이 건네준 것도 몇 번이었다. 누이는 어린 나를 데리고 남산 타워에 갔고, 성룡 영화를 함께 보았고, 남자친구와 데이트 할 때 내 손을 잡고 나가기도 했다. 내가 중학생 때는 직장 근처의 유명한 치과에서 치아교정을 시켜주었다. 교정 치료가 있는 날은 압구정역 1번 출구에 있는 웬디스에서 이른 저녁으로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것만 알았지 교정 비용이 누이의 몇 달치 월급에 해당된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누이는 좋은 남자와 결혼을 했고 귀여운 아들을 낳았다. 그렇게 한동안 행복했다. 내가 군대를 제대했을 무렵, 어느 날부턴가 소화가 안 되고 항상 더부룩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병원 검사에서 암을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고 매형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병간호에 전념했다. 권위 있는 의사들을 찾아다녔고 효능 있다는 음식은 모두 먹었다. 몇 번의 수술과 견디기 힘든 항암치료를 받았고, 일본을 왕래하며 의사를 만났고, 강원도에서 요양을 했지만 어느 것도 누이의 병을 당해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이는 야위어 갔고 잃어버린 체중만큼 진통제는 강해졌다. 그 작고 마른 몸으로 극한의 고통을 겪어내면서도 나에게만큼은 따뜻한 웃음과 인자함을 잃지 않았다. 어느 맑은 아침, 누이는 끝내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꽃 같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했고 아버지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고 나는 도망치듯 유학을 떠났다. 매형은 한 참 후에 큰 누나의 주선으로 재혼 했다. 우리는 누이를 위해 자신의 젊음을 병원에서 보낸 매형을 감사하며 보내주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얼마 전, 집안 결혼식이 있었다. 나는 모처럼 면도를 했고 칼같이 다려진 양복을 입었고 잘 닦여진 구두를 신었다.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과 악수하며 지나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다. “여문아.” 예식장 자리를 찾다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셋째 매형이 예전의 누이처럼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다. 근 이십 년만이다. 나는 깜짝 놀라 매형의 손을 잡고 놓을 줄 몰랐다. 너무 만나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우리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내 중학교 시절의 까까머리와 누이를 위해 만들었던 황토방 그리고 사골 국물로 라면을 끓여 소주를 마셨던 이야기로 지난 세월을 더듬었다. 간간히 매형의 얼굴에서 누이에 대한 그리움이 떠올랐지만 그때마다 나는 더욱 밝고 명랑한 목소리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울적한 마음으로 아파트 일 층 장미 넝쿨이 울창한 나만의 흡연구역으로 갔다. 해가 거의 떨어져 마지막 남은 노을 위로 몇 개의 별이 반짝인다. 착잡함에 세 번째 담배를 피우는데 마침 매형에게서 휴대폰 문자가 왔다. “여문아.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좋았어. 더군다나 네가 좋은 모습으로 자랐으니 하늘에 있는 누나도 분명히 행복해 할거야. 고맙다”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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