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듯,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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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듯,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가다
  • 글=장나현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6.11.1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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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희망이다>홍성의 인맥-홍성출향인을 찾아서 <19>

윤주민 서양화가
▲ 논산여자상업고등학교에 재직중인 윤주민 서양화가가 안회당 전시장 입구에 앉아있다.

안회당 초대전 ‘홍주천년의 나무, 소나무’ 전 성료 
서양화 재료로 수묵화의 멋 살려 한국의 정신 담다
철거 예정지 찾아다니면서 사라져가는 옛모습 그려 
작품에만 매진할 수 없는 예술인들의 딜레마 깊어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홍성군청 후정의 안회당에서 서양화가이자 한국미협 충남지회장인 윤주민(52) 작가의 ‘홍주천년의 나무, 소나무’ 전이 열렸다. 조선 숙종 때 처음 지어진 고즈넉한 목조 기와집인 안회당 내부는 나무숨결이 그대로 전해지는 곳이다. 그의 소나무 작품이 안회당의 일부인 듯 전체가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졌다. 작품은 얼핏 보기에 먹으로 그린 수묵화 인듯 보였으나 자세히 보니 캔버스에 유화나 아크릭으로 그린 서양화였다. 그림에는 한국화처럼 붉은 낙관이 찍힌 작품도 있었다. 서양의 재료로 한국의 정신을 표현하는 윤주민 작가를 지난 15일 전시가 열리는 안회당에서 만났다. 

“제가 살고 있는 논산에서 아침마다 운동을 하는데요. 운동할 때 지나쳐 가는 정원의 소나무는 반듯하게 자라도록 잘라놓았는데 건양대나 관촉사 주변에 있는 소나무는 그렇지 않아요.  아무렇게나 자라는 듯 보이는 소나무의 모습이 우직하고 자유롭고 정도를 가는 것 같아 저 자신처럼 느껴졌습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듯 주변상황에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려 삐뚤빼뚤 지나왔어도, 결국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소나무는 저의 이번 전시 소재이면서 제 자신을 투영한 것이죠.”

▲ 윤주민 작가 작품. 터-소외공간1997(40F,유화)
▲ 윤주민 작가 작품. 터-소외공간2001(60F,유화)

윤 작가가 선보인 첫 번째 개인전은 재개발에 놓인 철거예정지를 찾아다녀서 얻은 소재를 그린 작품이었다. 광천 읍내가 고향인 그가 다 쓰러져 가는 개발예정지를 찾아다닌 이유는 과거 화려했던 광천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독배(광천 옹암포구)로 시집 못간 요 내 팔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광천은 흥청거렸던 번성기를 누린 지역이다. 소년 시절 독배로 소풍을 가기도 했던 윤 작가는 정작 갖고 있는 독배 사진이 없었다. 

화려했다고 하나 자료가 많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머무르는 독배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윤 작가는 이러한 모습을 작품에 담기로 했다. 곧 철거돼 흔적 없이 사라질 지역을 담기 위해 대전과 삼척 등의 재개발 예정 지역을 찾아다닌 그는 사람이 모두 떠나고 세월의 흔적이 배인 건물을 사진으로 담아왔다. 오래된 흑백 사진의 느낌을 담아 단색 유화로 묵직한 질감을 캔버스에 표현했다. 이 작품으로 충남미술대전 대상을 타기도 하면서 조명을 받았다.

▲ 윤주민 작가 작품. 소나무 2012-3(20P,-아크릴)

“저뿐만이 아니라 작품하는 사람은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새로운 작품을 담으려는 시도를 하죠. 기존의 작업에서 탈피하고 새로움을 찾고 싶었는데 선뜻 내려놓기가 어렵기도 했습니다. 작품으로 큰 상을 받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하고 작품 좋다고 초대하니 기존의 방식을 내려놓기가 두렵기도 했지요. 그럴 때 소나무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도부터 소나무 작업을 했으니 벌써 7년째가 되었네요. 이번 개인전을 끝으로 이제는 재료에 국한되지 않고 원숙미와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새로운 작업을 하려합니다.”

‘예술로 밥 벌어 먹기 어렵다’는 인식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윤 작가가 학창시절일 때는 그런 인식이 더욱 강했다. 학업 성적이 우수했던 그에게 부모님은 법조인이나 안정된 길의 직업을 선택하길 바랐다. 중학교 때 미술에 뜻을 비치자 “미술한다고 고집부리면 집에서 내친다. 너는 버린 자식”이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집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천안의 중앙고를 다니던 시절 싸움도 많이 하고 소위 ‘깡패짓’도 하며 방황을 하자 그의 부모님은 집에서 다닐 수 있게 홍성고등학교로 전학을 보낸다. 여기서 그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은사를 만난다. 당시 홍성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던 이태창 선생이다. 

불량학생으로 통해 교사들조차도 피했던 그는 어느 날 큰 사고를 쳐서 교무실로 끌려온다. 여러 선생에게 매를 맞고 있는데 이 선생이 매를 뺏더니 윤 작가의 등짝을 마구 후려치고는 미술실로 데려갔다. 이 선생은 상처로 얼룩진 몸에 손수 연고를 발라주며 그의 마음도 어루만졌다.

▲ 윤주민 작가 작품. 소나무2012-4(10F,+아크릴)

“‘선생님이 날 이렇게 생각하는 구나’하고 그때부터 이태창 선생님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그림도 열심히 그렸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저를 알아본 선생님께서는 부모님을 만나 설득을 하셨어요. 특별히 배우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그릴 정도면 서울대도 갈 수 있다고 설득을 하셨죠. 결국 부모님은 선생님께 저를 온전히 맡기셨습니다. 선생님한테 배운 그대로 저도 제자들이 바른길로 가지 않을 때는 무섭게 혼내고 정을 줄때는 따뜻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그때 선생님이 저를 바로잡아 주셨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산여상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윤 작가는 재능있는 제자들을 미술로 이끌면서 여자들도 자신만의 직업이 있어야 한다며 미술로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의 제자 중에는 유명의류회사의 디자인팀장인 제자도 있고 공주사대를 졸업하고 미술교사로 재직 중인 제자도 있다. 

작가만의 위치가 아닌 한국미협 충남지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윤 작가가 바라보는 작가들과 협회는 어떨까. 학벌과 파벌이 여전히 중요시되는 미술계에서 충남에서는 최근 기존의 미협에 반발해 새로운 협회를 창립한 일도 있다. 다소 껄끄러운 질문일 수도 있으나 그러한 폐단에 대해 윤 작가는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 윤주민 작가 작품. 소나무2012-2(20P,+아크릴)
▲ 윤주민 작가 작품. 솔바람2015(아크릴,10호+변형)

“미협 지부가 충남에 15개가 있고 각 지부마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를 때 회장은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저는 사람이 우선이지 제도가 우선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품활동에만 매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소모적인 분쟁을 할 때는 힘들 때가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그런 것을 신경 안 쓰고 작품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예술하는 사람의 딜레마가 있죠. 중앙에 미협 이사장이 있고 지방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딘가에 줄이 있어야 하는데 저 역시 그랬던 부분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나 여기에 속했다고 해서 다른 단체에 등을 지는 것이 아닌 얼마든지 서로 교류하면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어가 고향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윤 작가 역시 퇴직 후 고향에 스며 문화예술쪽에서 재능을 나누고 봉사를 하고자 소망한다. 

“살아가면서 부족한 부분은 배우고 서로 으르렁 거릴 것 없이 사랑해야 하죠. 제 좌우명이기도 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를 살아가면서 실천하고 제가 받은 사랑을 고향의 문화예술쪽에 돌려주는 것이 앞으로의 바람입니다. 우리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구석에서 묵묵히 작업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홍주신문에서 이런 분들께 힘을 북돋워주시길 바랍니다.”

▲ 윤주민 작가가 작업하는 모습.

윤주민 작가는…
윤주민 서양화가는 광천읍 출신으로 광동초, 광천중, 홍성고(38회)를 졸업했으며 목원대학교 미술대학 미술교육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수상내역으로는 전국대학미전 은상, 충청남도 미술대전 대상 및 특선 3회, 대전광역시 미술대전 특선 2회, 한국교원미술전 최우수상, 충남교육감표창 22회, 교육장상 8회, 충남예총문화상 미술부문 대상,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미술분야 공로표창, 충청남도문화상, 논산시 예술문화대상 등이 있다. 개인전으로는 2001년 자연미술관 개관기념 초대전(대전 자연미술관)과 대전시립미술관 초대 ‘삶터-어울림’전, 2012년 SAF 서해아트페어 초대 개인전(팽택호 예술관), 2016년 윤주민 초대전 홍주천년의 나무, 소나무 전을 열었으며 단체전으로는 2009년 광주비엔날레 기념전, 2016년 역사의 숨결전 등 320회 참여한 바 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충남미술대전, 서해미술대전, 소사벌미술대전, 도솔미술대전, 안견미술대전의 심사위원을 맡았으며 한국미협 충남지회장, 한국미협 서양화분과 이사, 충남·대전미술대전 초대작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논산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 안회당 전시장 내부에서 윤주민 작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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