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꽃이 핀다’는 전설이 있는 영험한 봉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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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도 꽃이 핀다’는 전설이 있는 영험한 봉지마을
  • 글=송신용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7.07.3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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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 있는 농촌마을사람들 구항면 봉지마을을 찾아서
홍주의병장 이설의 묘.

비가 오던 어느날 구항면 봉지마을을 찾았다. 빗줄기는 그리 거세지 않았으나 안개가 자욱했다. 봉지마을로 들어가는 다리가 보였다. 다리 건너에는 굴삭기가 무언가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가까이 보이는 봉지마을노인회관에 차를 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차 없이는 구경하기 힘들만치 넓은 마을이었다. 마을을 돌아보며 느낀 것은 최근에 건축한 건물이 많으며 꽃이 많다는 것. 또 마을 사람들이 활기차다는 것이었다.

구항면에 속한 봉지마을은 본래 토박이 위주로 살던 마을이었으나 홍북면에 충남도청 이전이 이뤄지면서 영향을 받아 다른 지역 출신이 70% 가까이로, 총 130여 가구에 육박하게 됐다. 급작스럽게 늘어난 타지출신과 토박이의 대립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날 마을을 소개해준 이중복(82) 전 노인회장은 “토박이와 타지역 출신이 화합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봉지마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골과 다른 점이 많았다. 어딜 둘러보나 최근에 건축한 건물이 많다는 것, 타지출신이 토박이보다 배로 많다는 설명이다. 집집마다 무선송수신기가 설치돼 있어 이장이 소지한 휴대폰으로 방송을 시작하면 해외에서도 방송안내를 할 수 있다는 것 등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구항면 봉지마을 노인회관.
마을주민들의 놀이터.


그러나 마을의 역사와 유물, 정신을 중요시 한다는 것은 여느 시골과 같았다. 봉지마을에는 일명 산제당산이라 불리는 곳의 아랫자락에 홍주의병 활동으로 이름난 이설(李偰)의 묘와 집이 있다. 이설은 항일민족운동으로 홍주지역에서 의병활동에 기여한 인물이다. 한편 이설의 후대손이 이설의 집을 재건축해 이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이 집터는 겨울에도 꽃이 피는 영험한 터라고 한다.

봉지마을이 위치한 백월산은 홍성의 진산(鎭山)으로 일반 등산객은 물론이요, 무속인들도 자주 찾는 산이다. 그런 까닭에 봉지마을에는 석련사를 비롯해 단군을 모시는 대각선원이 있다. 대각선원은 천지인 문화예술원이라고도 부르는데, 대법당에는 단군과 환웅, 환인을 모시고 제를 지낸다.

또한 용신각에는 우물제를 담당하는 할머니신을 모시고, 국조전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에서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을 위해 제를 지낸다. 매달 세시풍속 날짜에 맞춰 제를 지내며, 특히 단오절과 개천절에 가장 크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주요 신도들은 외지인들이며 우연히 백월산에 왔던 대각선원 도사가 정기를 느껴 지난 2000년에 설립했다고 전한다. 또한 대각선원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 대한예수교 장로회인 ‘하동교회’가 있다. 하동교회는 2002년 6월에 세워진 교회로 구항지역아동센터라 해서 피아노, 미술 등 방과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대각선원에 있는 솟대.
대각선원에 있는 조그마한 불상.


봉지마을에는 선사시대 유적들도 다수 발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 석기가 발견됐고 시대를 알 수 없는 고분군도 다수 발견됐다. 이처럼 선사시대 유적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봐서 봉지마을 일대가 선사시대에도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지역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봉지마을과 오봉마을의 경계지역에 해당하는 산막골에 1960년대 ‘재건국민운동’ 실시로 건립된 ‘재건중학교’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학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펼친 지청천 장군의 미망인 신주성 여사가 세운 학교이다.

신 여사는 서해가 바라다 보이는 백월산 자락에 육영사업소를 설치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인근지역의 땅을 매입해 학교를 세웠다. 건립당시 교실은 총 4개로 교무실 1개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각 1개반씩 운영됐으며, 총 8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교직원은 총 13명이었으며, 태봉리에 사는 편무영씨가 교장이 됐고, 후배양성을 위해 함께 힘써달라고 해 당시 봉지마을 이장이었던 이중복(전 노인회장)씨가 교감이 돼 학교를 운영했으며, 또 종합교사라 해서 일반 교사처럼 담임도 맡았다고 한다.

그러나 재건중학교는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개교한지 9년만에 폐교되고 말았다. 중학교 과정의 정부지원이 점차 늘고 무상교육화 되면서 입학하려는 학생이 줄어 학교운영이 어려워지면서 결국에는 폐교가 된 것이다. 봉지마을은 현재 공사가 한창이다. 마을에 있는 하천을 따라 둘레길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둘레길의 길이는 마을의 3분의 1가량을 가로지를 정도로, 몹시 크다.

앞서 언급했듯이 봉지마을에는 다수의 타지출신이 삶터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공무원이기에 낮에는 비는 집들이 많은 편이다. 토박이들은 대다수가 농사를 짓는다. 이날 우연히 만난 이설의 후손도 농업용 4륜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모습이었다. 앞으로 봉지마을이 화합으로 끈끈해지길 기대해본다.

 

대각선원에 있는 석상들.
대각선원에 있는 장승들.


 

이중복(82) 전 노인회장.

김흥수(69) 이장
김흥수 이장은 요즘 기분이 좋다. 둘레길 조성으로 인해 마을경관이 아름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봉지마을은 땅이 넓기에 공사해야 할 곳이 많다는 설명이다. 김 이장은 “군에서 앞으로 많은 협조를 통해 봉지마을의 공사에 협력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밝혔다. “얼마 전 신청한 도로재포장공사도 승인됐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숨기지 않았다.

 

 

김흥수(69) 이장.

이중복(82) 전 노인회장
이중복 전 노인회장은 마을의 작고 큰일을 모두 겪으며 자라왔다고 한다. 그는 이장, 재건중학교 교감, 노인회장등을 거치며 마을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는데 힘써왔다. 요즘 가장 걱정되는 일에 관해 이중복 전 노인회장은 “마을에 타지출신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전처럼 마을기입대장에 거주민의 정보를 적어두는 것도 아니기에 대소사를 함께 논의하고 참여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 화합을 통해 토박이와 타지출신이 뭉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하동교회.
석련사 대웅전.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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