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 인터뷰 - 사람이 희망이다<8>
부천시의회 김문호 의원
상태바
출향인 인터뷰 - 사람이 희망이다<8>
부천시의회 김문호 의원
  • 취재=허성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7.08.25 12: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천시의회 김문호 의원

“홍성군수보다 부천시장 되는 것이 더 쉬워요”

김문호 의원은 가능하면 의원 연구실에 있기 보다 주민들을 만나러 현장에 나가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것이 3선 비결이라고 했다.


 

홍성 출신으로 경기도 부천에서 촉망받는 차세대 정치지도자로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문호 부천시의원이다. 김문호(52)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부천시의원으로 처음 당선된 뒤 지금까지 의정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제7대 부천시의회 전반기에는 의장을 맡아 지난해 6월말까지 2년 임기를 채우고 물러났다. 본지는 8월 중순 부천시의회를 찾아 김문호 의원과 마주했다.
 


-태어나서 자란 고향에 대해 소개한다면?
“홍성군 서부면 거차리가 고향입니다. 그때는 걸어서 산 넘고 물 건너 학교를 다녔습니다. 장마 때 불어난 냇물을 부모님 등에 업혀 건너간 적도 있고, 우산 살 형편이 안 돼 비를 맞고 학교를 다니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고향에서도 버스로 태워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니 그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결성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버스통학을 했습니다. 홍성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났죠. 홍성읍에 있는 친척집에 얹혀 학교를 다녔습니다. 학창시절 부모님 슬하를 빨리 떠나고 싶은 독립 욕구가 강하다고 하는데 저는 고교시절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무척 힘들었습니다.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부천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는지?
“당시 부천에 형이 먼저 가 있어서 올라가 같이 지냈습니다. 지금은 3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정든 제2의 고향이 됐습니다.”
 


-부천시의회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저는 초교시절 꿈이 정치가였습니다. 그러나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다보니 정치와 거리가 먼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정치가적인 기질을 알아본 사람들이 많이 권유하기도 했으나 저는 기회를 봐서 할 생각으로 일찍부터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 8년간 월급쟁이 노릇을 하다가 돈을 벌어 보려고 직장을 사직하고 나와서 개인사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실패하고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아내가 운영하는 학원을 돕게 되었지만 엄청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지역에서 지방의원 후보로 계속 물망에 오르내리며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권유를 했습니다. 그 얘기를 자꾸 들으니까 바람이 든 거죠. 2000년도에 부천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었는데 그때 선거운동을 처음 해봤습니다. 이상수 전 노동부장관이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그분의 선거운동을 도운 것입니다. 그때 그분이 저에게 정치를 해보라고 권유를 했습니다. 그래서 2004년부터 지방의회 진출을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상수 의원이 공천장을 주던가요?
“아닙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부천시의원으로 도전장을 던졌는데 같은 당 예비후보자들끼리 경선을 했습니다. 결국 부천시의원후보가 됐고, 운 좋게 당선됐습니다. 조상님을 잘 둔 덕을 본 셈이죠. 그때 기초의원 중선거구제를 처음 실시할 때라 같은 당에서 한 선거구에 복수후보를 공천했는데 가·나·다 순으로 기호를 줬어요. 저는 성이 김 씨니까 기호 가번을 받았어요. 당시 가번을 받은 기초의원 후보들은 전부 당선됐습니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여론이 상당히 악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여당 후보로서 쉽지 않은 선거였습니다. 그런데 운좋게 당선된 것입니다. 그때는 같은 숫자의 정당 기호로 나가면서 첫 순서로 부여되는 가번의 위력이 상당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3선 의원으로 의정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김문호 의원이 부천시의회 의장시절이었던 2014년 9월 인천아시안게임 성화봉송을 하고 있다.


-당시 기초의원선거가 중선거구제로 개편해 처음 실시하면서 복수후보를 낸 정당에서 성씨를 가나다순으로 기호를 배정했지만 일반 유권자들은 후보를 잘 모르니까 무조건 선호하는 정당의 후보중 첫 번째 인물을 찍었던 거죠.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가번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기호로 위력이 여전합니다. 저에게는 재선, 3선도 어려운 선거였습니다. 재선 때는 경선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결국 가번을 받아내고 본선에 나가 당선됐습니다. 그러나 정말 어려웠던 선거는 3선에 출마할 때였습니다. 같은 당에서 출마한 여성후보가 여성우선공천을 주장해 가번을 양보하고 나번을 받아 선거에 나갔습니다. 지역구 의원 2명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였기 때문에 같은 당에서 나번을 받고 나가는 것은 당선될 확률이 그만큼 낮았습니다. 저는 무척 어려운 선거를 해야 했지만 유권자들이 똘똘 뭉쳤습니다. ‘김문호를 다시 한번 밀어주자’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강력한 지지를 받고 결국 당선됐습니다. 하지만 유리한 기호인 가번을 받고 나간 여성후보는 떨어졌습니다. 아마 2명의 기초의원을 선출하는 지역구에서 나번을 받고 나가 당선된 후보는 전국적으로 저밖에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3선의원이 되고 나서 이번 7대 의회 전반기에 의장을 지내셨는데 동료의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저는 2014년 6월 4일 당선되고 나서 바로 그날부터 의장선거를 준비했습니다. 동료의원들이 제가 나번을 받고 당선된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의장을 시켜도 무난하겠다는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한 달 내내 의원들을 만나며 지지를 부탁했습니다. 결국 그분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의장에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기억나는 업적이 있다면?
“심곡천이 시책사업이긴 하지만 복개천을 허물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했습니다. 환경부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국·시비 420억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초기에는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엄청나게 심했습니다. 제가 의장을 맡고 있을 때였는데, 주민들은 교통문제를 이유로 피켓을 들고 와서 거의 매일 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5월 완공 후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환경이 개선되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많은 주민들이 ‘이렇게 좋은 생태하천 복원사업이 어디 있나’하면서 좋아합니다. 도심 속 개울이 시민들에게 산책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면서 대단한 역할을 합니다. 물론 제가 제안한 사업은 아니었지만 주민들은 처음에 강력하게 반대하며 ‘김문호 의장 사퇴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랬던 분들이 지난 6월 저한테 찾아와서 ‘우리가 무식해서 반대한 일에 대해 사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엎드려 오히려 감사하다고 인사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설득하느라 상당히 힘들었지만 주민들이 나중에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만큼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또 하나 자랑거리가 있습니다. 2016년 몽골 다르한 시의 초청을 받아 시·도의원들이 함께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6시간 동안 차를 타고 유목민 마을에 가서 식사를 하는데 한국사람들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어떤 여인이 찾아와 딸을 살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여인은 13살, 12살 된 두 딸이 어려서 소독약을 잘못 알고 먹어 청각장애가 있다며 수술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저는 당황했지만 고민해 보겠다는 말을 하고 여인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래도 너무 좋아하며 크게 기대하는 여인을 실망시킬 수 없어 부천에 돌아와서 성모병원에 이 사연을 전했습니다. 원장님이 1억4000만원의 수술비가 소요된다고 하면서 5200만원을 자체적으로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숙박과 체제비, 항공료 등은 KT의 지원을 받기로 하고 부천시의원들이 모두 10만원씩 내고 모금해 마련한 5200만원으로 20일간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결국 그 여인의 두 딸은 청각장애를 치료받고 몽골로 돌아갔습니다. 저에게는 그들이 소리를 되찾고 기뻐하던 모습이 굉장히 보람 있었던 일로 기억됩니다.”


 

부천시의회 김문호 의원.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더 큰 꿈을 펼칠 계획이 없습니까?
“지금 그런 질문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도의원과 시장에 도전하고 싶지만 같은 당 동료로서 현재 하시는 분들이 잘 하기 때문에 저에게는 꿈일 뿐입니다. 현재 김만수 시장이 3선을 하겠다고 밝히면 도전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그분이 안 나간다면 도전할 수도 있습니다. 도의원도 마찬가집니다. 현직에 계시는 분이 문제가 없는 한 아직은 도전하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올 추석이 지나고 정치적인 상황이 정리되면 저의 입장을 밝힐 것입니다. 또 지금 제가 있는 자리에 올라오려고 하는 신인정치인들도 있습니다. 어디 가야 좋을지 모르겠으나 정치적인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좀 더 관망하다가 결정하겠습니다. 아마도 도전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가 와야 도의원이든 시장이든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3년 후 국회의원에 도전할 꿈은 없습니까?
“지방의원으로 의정활동 12년간 하면서 지역주민들에게 실망감을 준 적이 없어 기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시기가 와서 제가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야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의원이 롤모델로 삼는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 그의 서민적인 인품에 감화를 받고 열린우리당을 택해 입당했고, 지금까지 민주당의 노선을 걸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고향에 돌아와 홍성군수로 출마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홍성군수 되는 것보다 부천시장이 되는 것이 더 쉽다”고 웃으면서 일축했다. 고향에는 연로한 부모님이 계시고 절친한 고향친구로는 결성면 원천마을에서 한우사육을 하는 송천균 씨와 서부면을 지키고 있는 엄희섭 씨를 꼽았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