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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칠곡지명 천년, ‘고려사지리지’확인 ‘기념비’세운다지명역사 1000년 자치단체,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 <6>
  • 취재=한기원·김옥선 기자
  • 승인 2017.11.1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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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칠곡지구 전경. 1981년 대구시에 편입되면서 대구 칠곡과 경북 칠곡군으로 지명이 쓰여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1981년 칠곡읍 대구시 편입, 대구 칠곡·경북 칠곡 지명 함께 써
고려사지리지 ‘七谷’지명 확인… 조선시대 ‘柒谷→漆谷’ 변경
“팔거현 현종 9년(1018년) 성주에 소속, 달리 ‘칠곡’이라 불렸다”
칠곡향교, 칠곡향우회, 팔거역사문화연구회 민간단체 5곳 참여



대구시민들에게 “칠곡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일부는 ‘칠곡군’이라 답할 것이고, 일부는 ‘대구 팔달교 건너 북구의 읍내동 일대’를 말할 것이다. 이렇듯 ‘칠곡’이라는 지명을 두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일부 칠곡 토박이들은 자신들의 고장을 말할 때도 “대구 칠곡입니다” 혹은 “북구 칠곡입니다”라고 말한다.

팔거역사문화연구회가 ‘칠곡 이름 되찾기 운동’과 ‘칠곡지명 1000년 기념사업’에 나선 이유다. 현재 법률상으로는 ‘칠곡’이 경상북도의 군 이름으로 명명되면서 대구시 북구 읍내동 지역에서는 사실상 ‘칠곡’이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강북’ 혹은 예스럽게 칠곡의 한자 뜻을 풀어쓴 ‘옻골’이란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급격한 도시화를 겪으면서 외지에서 들어온 주민들이 늘어나며 지명도 자연스레 변하고 있는 것이다.

‘칠곡’이란 지명은 대구 북구의 칠곡과 경북 칠곡군의 지명이 같아서 외지인들에게 이만저만 혼란을 주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대구의 ‘칠곡’이란 지명이 생겨난 지 1000년이 됐다고 한다. 따라서 대구 칠곡지역의 주민들이 이름 지키기와 더불어 지명탄생 1000년을 맞이하면서 기념사업에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대구 칠곡 향교 전경(1950년대).

■‘칠곡’ 이름 찾기, 1000년 기념사업 실시
대구 북구의 ‘칠곡’과 경북 칠곡군이 ‘칠곡’이란 지명을 함께 쓰게 된 것은 지난 1981년 칠곡군 칠곡읍이 직할시로 승격된 대구시에 편입되면서 부터다. 현재 행정구역 명칭에서 대구 북구에 칠곡은 없지만 칠곡향교와 칠곡초등학교, 칠곡중학교, 칠곡경북대병원, 아파트 이름 등에 ‘칠곡’은 여전히 그대로 쓰이고 있다.

이에 대해 박성규 칠곡향교 전교는 “칠곡초등학교가 110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칠곡향교가 1642년에 설치됐습니다. 역사적으로 칠곡의 원조가 대구 북구에 있는 ‘칠곡’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한다.

팔거역사문화연구회 배석운 추진단장에 따르면 “어떠한 기록을 만들어야 하겠다. 어느 자리에 칠곡의 역사 유래를 알리는 비석을 만들든지 아니면 새로운 수천 년 역사의 장을 여는 비석을 어떻게든 만들어야 하겠다”고 밝히고 “경북 칠곡군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는 대구 칠곡지역 주민들의 칠곡 이름지키기와 지명 1000년 기념사업은 지난해부터 시작돼 다양한 형태로 내후년까지 이어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배석운(69) 단장은 잊혀져가는 ‘칠곡(대구 북구 읍내동 일대)’의 이름과 옛 역사를 되찾는 일에 팔을 걷은 사람이다. 개인적인 이득을 위한 일이 아님에도 날마다 지역의 역사를 단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고자 동분서주한다. 지난 2014년 7월에 팔거역사문화연구회가 문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연구회는 우선 ‘칠곡의 이름 찾는 일’에서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지명1000년 기념사업을 실시하면서 역사를 잊지 않는 민족이 정체성을 지키듯 지명찾기와 지명 1000년 기념사업을 통해 ‘칠곡’을 지키겠다는 생각이다. 배석운 단장은 1948년 대구시 북구 동천동에서 태어났다. 배 단장은 69년 동안 줄곧 대구 북구의 칠곡에서 생활하며 지역을 위해 힘써 왔다. 북구생활체육회장(1992년), 칠곡테니스연합회 초대회장(1994), 대구 북구 해병대전우회 초대 회장(1994) 등을 역임했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하고자 한민족문화교류협회 이사장을 맡아 문화교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현재는 팔거역사문화연구회에서 추진단장을 맡아 칠곡 역사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으며, ‘대구 칠곡 천년기념사업회’가 발족하면서 실무추진위원장을 함께 맡고 있다.

이름이 점점 잊혀지고 있는 만큼 ‘칠곡’지역의 역사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도 점점 흐려지는 것 같아 배 위원장은 더욱 안타깝다고 말한다. 배 위원장은 “칠곡을 ‘대구의 보물’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유서가 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전의 화려했던 역사에 대해 아는 사람은 이제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거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눈에 드러나는 옛 흔적이 사라지고 있어요. 이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나 부모들은 칠곡이 얼마나 대단한 역사를 가진 지역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라며 안타까워했다.

개교 110년이 넘은 대구 칠곡초등학교 전경.

■지역 정체성 찾기 위해 기념사업회 구성
이러한 가운데 대구 북구 칠곡지역 민간단체들이 ‘대구 칠곡 천년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천년기념비 건립’을 추진해 눈길을 끈다. 기념사업회는 지난 5월 24일 “내년이면 ‘칠곡(七谷)’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나온 지 1000년이 된다”고 밝히고 “우리고장의 정체성을 찾자는 의미에서 기념사업회를 구성했다”며 “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사업비 1억 원을 모금해 천년기념비 건립 등 관련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지난 5월 19일 사업 선포식을 가진 기념사업회에는 칠곡향교, 대구칠곡향우회, 대구칠곡발전협의회, 대구칠곡문화예술봉사회, 팔거역사문화연구회 등 민간단체 5곳이 참여했다.

‘칠곡’이라는 지명은 ‘고려사 지리지’ 경산부 조항에 “팔거현은 (중략) 현종 9년(서기 1018년) 성주에 소속됐다. 달리 ‘칠곡’이라고 불렸다”는 대목에서 처음 확인된다. 칠곡은 처음 칠곡(七谷)으로 적었는데 조선시대에는 일곱이라는 뜻은 같지만 표기가 다른 ‘칠(柒)’자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옻나무 ‘칠(漆)’로 고쳐 사용하고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하는 ‘칠곡’은 이두식 지명으로 2018년이면 1000년이 되면서 대구 칠곡지역 주민들이 이름지키기와 지명탄생 1000년 기념사업에 들어갔는데, 주민들의 모금운동으로 ‘칠곡 이름 기원비’를 세우고 칠곡도호부 200년이 되는 2019년까지 행사를 갖는 등 지역주민에게 칠곡 이름 알리기와 지명탄생 기념사업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천년기념비는 가로 4m, 세로 7m 크기로 만들어 대구 북구의 읍내동주민센터 자리에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읍내동주민센터는 과거 칠곡도호부 관아가 있던 자리로 알려졌다. 현재는 2020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사업비 92억 원을 들여 부지 1666㎡(500여 평)에 지상 5층 규모로 청사신축을 계획하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내년 초 신축 실시설계 때 기념비 조성 부지도 함께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칠곡천년기념사업회 실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배석운 팔거역사문화연구회 추진단장은 “대구 북구 읍내동 일대 칠곡은 조선 후기 칠곡도호부가 설치됐던 곳으로 대구와 대등하게 독자적 행정을 펼친 곳이지만 일제강점기 때 군청이 왜관으로 옮겨가고 1981년 대구시에 편입되면서 역사·문화·전통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며 “천년기념비 건립 외에 백일장, 타임캡슐 제작 등 여러 행사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구 북구청 관계자는 “경상북도에 같은 이름을 쓰는 지방자치단체가 있어 구청이 먼저 나서서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힘들다”면서도 “민간단체 차원에서 추진하는 여러 기념행사와 관련해 도움 요청이 있으면 검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구시 북구의 팔거역사문화연구회에는 시대별 칠곡지역 지도가 여러 종류 있다. 그 지도들 속에서 칠곡의 화려했던 옛 모습들을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아파트단지가 빼곡한 자리에는 지방사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주요 기관들이 들어서 있었다. 노동력과 조세를 걷던 권력기관인 관아를 비롯해 국왕의 위패를 모셔두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마다 의식을 거행했던 객사, 가뭄이 들거나 역병이 돌면 제사를 올리던 성황당, 곡물을 보관하던 사창 등이 옛 지도에 그려져 있다.

그랬던 칠곡이 지방사의 구심점 역할을 잃게 된 것은 일제의 손아귀에 나라가 휘둘리면서부터였다고 한다. 1914년 칠곡군청이 경북 왜관으로 옮겨지고 칠곡향교를 제외한 모든 기관들이 본래의 칠곡지역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이제 ‘칠곡’의 오래된 역사를 말해주는 것은 주요기관 뿐만이 아니다. 1990년대 도시개발 당시 청동기, 철기시대부터의 유적 유물들이 다량 발견됐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국이 왜적들에게 유린당할 때 명나라 지원군이 주둔한 경상감영이 설치된 곳도 ‘칠곡’이다. 그럼에도 어느 곳에서도 역사의 흔적들도 찾을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취재=한기원·김옥선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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