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광 이근주 선생 학술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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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광 이근주 선생 학술강연회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7.11.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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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광주·하남 연합회, 이근주 선생 묘소에 참배
이강세 광주·하남 연합회장이 청광 이근주 선생의 묘소에서 광복회 경기도지부 광주·하남 연합회 회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모습.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청광 이근주 선생의 공훈선양 학술강연회가 지난 22일 청운대학교에 열렸다. 이날 청운대 민황기 교수의 강연으로 진행된 학술회는 이근주 선생의 생애와 이근주의 절의정신, 항일의병운동과 순국, 이근주의 절의정신과 항일의병운동의 함의 등에 대해 설명했다.

민황기 교수는 “자료가 빈약해 그의 정신세계를 자세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가 선비의 본업인 의를 실천하며 평생을 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선비의 본업은 뜻을 지키는 것이며 뜻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도를 실현하겠다는 각오와 의지다. 국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선생은 자결로서 절의를 지키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청광 이근주는 1860년 충남 공주군 비룡동에서 현복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영조 초 당쟁이 심해지자 홍주의 작현리로 내려와 세거하기 시작했다. 1910년 한일합방의 비보를 듣고 부모 묘소 아래에 가서 ‘존화양이 척사부정’이라는 8자를 사방에 쓰고 자결했다. 청광 이근주 선생의 묘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낙상리에 위치해 있다.

한편, 이날 광복회 경기도지부 광주·하남연합회 35명의 회원도 참여했는데, 강연회에 앞서 예산에 있는 이근주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이응노기념관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청광 이근주 선생의 손자이기도 한 이강세 광주·하남연합회장은 “이번 참배는 유적지 순례 행사 중 일부다”라며 “이근주 열사가 당시 6살이었던 조카 이응노 화백에게 산소에 갈 테니 과일과 칼을 준비해 달라고 요구해 끝내 산소에 가서 자결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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