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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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83>
  • 한지윤
  • 승인 2017.11.08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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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삽화·신명환 작가

그러자 컵이 깨지는 따가운 소리가 났고 동시에 합판으로 된 뮤직홀의 벽에 무언가 쿵 하고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가 터졌다. 종려나무의 무성한 잎사귀는 폭풍을 만난 나무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벽에 기댄 채 쓰러져 있는 사람은 뜻밖에도 소영이가 아닌가. 소영의 표정은 난생 처음으로 수세미처럼 이그러져 있었다. 소영이는 냅다 던져지면서 벽에 이마를 부딪치고 말았다. 그러나 소영의 몸에는 합기도의 도장에서 수련되어 있는 낙법으로, 그녀는 떨어질 때 고양이처럼 떨어졌으므로 더 이상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남자는 소영이를 일으켜 세우려 하자,

“괜찮아요. 혼자 일어날 테니 염려 놓으세요.”
소영은 거절했다.

“용서하십시오! 이 여자는 저와 결혼할 아가씨입니다. 여자체육대학의 유도강사를 맡고 있습니다.”
소영은 이마에 생긴 혹으로 인해 눈을 뜨기가 거북했지만 이그러진 눈초리로 유도강사라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수진이, 화를 내면 안돼. 오늘은 내게 사립 탐정을 붙여놓은 날 아닌가. 수진이가 직접 사립 탐정에 가서 신청했으니까, 기억하고 있어야 하잖아? 그렇기 때문에 마음 놓고 아가씨와 차를 마시고 있었던 거야.”
남자는 약혼녀라는 여자에게 말했다.

“아! 그랬었지. 내가 왜 깜박 잊었었지! 정말 미안해요.”
유도강사는 당황해 하면서 소영의 얼굴을 걱정이 된다는 듯이 들여다보았다.

“괜찮아요. 그런데 실력이 대단하시군요.”
소영이는 솔직히 칭찬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유도 2단 이예요. 그보다도 당신의 낙법이 멋있었어요. 합기도 하신 모양이시죠.”
“독신자씨!”
소영이는 남자에게 말했다.

“독신자아파트에 살고 계신다니까 독신자씨라고 부르겠는데 정말 이 아가씨와 결혼하시나요? 이 정도의 여자라면 결혼해서 함께 살아도 거대한 도시의 고독감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그뿐 아니죠. 오히려 인생이 즐거워져서 허무적인 인생관이 될 여유도 없을 거예요.”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눈 위의 혹을 누르면서 뮤직홀을 나온 소영은 연숙이와 희영과 더불어 맥없이 축 늘어진 어깨로 전철역 광장으로 걸어갔다. 맥 빠진 세 여자는 그러나 어느덧 인파에 휩쓸려 꽤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인생무상이야!”
연숙이가 소영의 혹은 곁눈질로 보면서 말했다.
“난 오늘, 불경기였어. 따라 오던 녀석들 말야, 머저리처럼 어디로 사라져 버리다니……”
희영이가 인생무상을 긍정이나 하듯이 변명했다.
“학기말시험도 가까워졌으니까, 이런 장난 이젠 그만 두고 마음잡고 공부벌레나 되어야겠어.”
소영은 대단한 결심이나 하는 듯 아니면 선생이 훈시나 하는 듯 말했다.
“사실 말이다. 요즘 그런 생각 제법 좀 하고 있지. 머지않아 4학년이 될 거고…… 너희들도 숙녀 좀 되어야겠어. 아직 들 철이 덜 들었잖아?”

번화한 거리의 빌딩 숲 사이로 서편 하늘 저편에서부터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하늘에 가득, 거리에 가득 펼쳐지듯 번지면서 늦여름의 해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한없이 밝았고 신비스러울 정도로 찬란한 빛이었다.
마음속엔 평화스러움 그것으로 가득할 수 있었다. 행복이었다.<끝>

<이 연재소설과 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번 호로 청소년소설 ‘젊은 청춘들의 자화상-그래 젊음은 아름다운 거야’의 83회 연재를 마지막으로 마칩니다. 그동안 집필을 해준 홍주신문 주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한지윤 작가에게 감사를 전하며, 애독해준 홍주신문 독자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다음호부터는 청소년소설에서 한 단계를 뛰어 넘는 소설연재로 독자여러분과 만나겠습니다. 계속해서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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