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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광천천 물길 바꾸며 형성된 ‘광천쪽다리’ 마을희망을 일구는 색깔 있는 농촌마을사람들
<27> 광천읍 소암리 소용골
  • 취재=허성수/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7.11.2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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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천 맞은 편에서 바라본 소용마을 전경. 소용마을 3개반 중 3반에 속하며 마을회관이 다리 건너 바로 입구에 있다.

일제 강점기 10여 가구 살던 한적한 외딴 마을로 역사 짧아
잦은 홍수로 버려진 땅에 광복 후 광천천 물길 바꾸며 변화
방둑길 따라 광천장 보러다니기 수월하고 농사짓기도 좋아
어르신들뿐 특화사업 엄두도 못내 돈벌 수 있는 일거리 필요


올해 10월말 홍성군 광천읍 인구가 9454명으로 나타나 한 달 전 9491명이었던 9월보다 18세대 37명의 인구가 줄었다. 9년 전인 2008년 광천읍 인구는 1만1986명이었으나 2016년 6월말 9983명으로 집계되면서 1만 명 선이 붕괴됐다. 그 후 1년 4개월 동안 529명이 줄어드는 등 갈수록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광천읍 소암리 소용골마을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우리 마을은 52가구 70~80명의 인구가 사는데 혼자 사는 노인 분도 많습니다.” 소용골마을 총무를 맡고 있는 이계헌(65) 씨의 말이다. 소용골마을은 7년 전인 2010년도만 해도 120명의 인구가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반토막 난 것이다. 경로당에 등록한 노인회원만 45명, 젊은 사람이 거의 없어 초고령화된 농촌마을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하천정비 후 마을에 사람 몰려와
소용골마을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자연부락이다. 일제 강점기에 10여 가구가 살 정도로 매우 작고 한적한 외딴마을이었다.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광천천과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담산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소용마을은 여름철 장마 때마다 물이 범람해 사람이 살 수 없었고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 위치보다 약간 북쪽의 민가가 밀집한 지역이 옛날에는 하천이었다. 소용마을회관이 있는 곳도 원래 광천천이었다. 잦은 홍수가 나서 버려진 땅이었지만 광복 후 광천천의 물길을 바꾸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했다.

정부가 하천을 정비하면서 물길을 돌리자 홍수는 더 이상 불청객 노릇을 할 수 없게 됐다. 그 후 아무리 비가 와도 물은 튼튼하게 쌓인 제방을 넘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은 새로 정비된 농토에서 농사를 안심하고 지을 수 있었다. 그러자 광천읍의 발전과 함께 외지에서 이사오는 주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해방 직후만 해도 소용과 소암이 같은 마을을 이뤄 한 명의 이장을 선출했으나 두 개의 행정리로 나눠지게 됐다.

소암리 소용골은 나지막한 야산 아래 볕이 잘 드는 남향에 자리잡고 있어서 겨울에 따뜻하고 포근하다. 광천읍 도심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광천천의 방둑길을 따라 도보로 장을 보러 다니기 편하고 오서산에서 마을 곁으로 사시사철 물이 흘러내려가 농사하기도 좋다. 광천읍에 직장을 두거나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다. 또 광천읍내에 나가면 장항선 열차로 전국 어디든 여행하기도 좋다.

■벼농사 위주에서 대파도 큰 수입원
현재 소용골은 광천천을 따라 3개 반으로 나눠져 있다. 광천읍 도심과 가까운 쪽의 마을회관이 있는 곳이 3반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산다.

소용골은 ‘광천쪽다리마을’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홍성지역에서는 예로부터 동네에 장난끼가 있고 심술 많은 아이들을 야단치며 “저 애는 광천쪽다리 아래에서 주워왔다”, “저 애 어미는 광천쪽다리 밑에서 떡장수를 하는데 데려다 줘라”고 하는 말이 성행했다. 그러나 광천쪽다리가 마을의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이 없다. 다만 홍주향토문화연구회의 최종돈 고문이 ‘홍주향토문화’(22집)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소용 왕배나무에서 동쪽으로 50m 지점이라고 짐작했다. 그곳이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1960년대에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그 이전에 널빤지를 이어붙여 만든 쪽다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소용골 주민들은 주로 벼농사를 짓고 있으나 대파도 많이 재배한다. 가까운 광천장에 싣고 나가 팔기도 좋아 주 수입원으로 각광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무·배추·감자·고구마 등의 밭작물도 고루 재배한다.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서 즐겁게 노래하고 있다.

■어르신들 소득 없어 부업거리 절실
마을의 역사가 짧아 전통적으로 계승되고 있는 민속문화는 없다. 노인들이 많아 노인회가 1년에 한 차례 정도 하루 일정으로 가까운 곳에 나들이를 나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돌아오는 정도다. 부녀회에서 정성껏 대접하지만 사실 부녀회원들조차도 거의가 노인회원들이다.

“노인회 45명중 할아버지는 10명 정도 됩니다. 나머지는 할머니들이고 혼자 사시는 분이 많아요.”
이개필(85) 노인회장의 말이다. 그러나 경로당에 나오는 대부분의 노인들은 5000원의 회비조차 못 낼 정도로 어렵다고 했다. 정부가 매달 지원하는 30만원의 운영비는 냉난방비로 거의 충당되기 때문에 좀 더 지원이 필요하다고 이 회장은 말했다.

“회비 5000원도 부담스러워 못 내는 노인들이 많아요. 시골에서 홀로 사는 분들이 소득이 있어야죠. 방이 따뜻해야 모이는데…, 경로당에서 한겨울에 할 수 있는 부업거리라도 주면 좋겠어요.”
이 회장은 어르신들이 직접 돈을 벌 수 있는 일거리가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마을 만들기나 특화사업도 어르신들뿐이라 무슨 아이디어를 내기도 힘들고 군에서 어떤 사업을 지정받더라도 힘이 부쳐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젊은이가 있어야 뭘 하지요. 우리 마을은 학생도 없습니다.”
이계헌 마을총무의 대꾸다. 젊은 사람이 일부 있어도 광천읍에 출퇴근하거나 홍성읍내에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어르신들과 어울릴 시간도 없고 마을 공동체 문화나 사업에 대해 무관심하다.

주민들은 군에 특별히 바라는 것도 없었다. 자식들 다 떠나가고 속절없이 늙어가는 주민들이 경로당에 자주 모여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부담 없이 해먹고 서로 안부를 나누며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최고의 소원이다.

■소용골마을 사람들

도심까지 방둑길 확포장 필요
강석민 이장
“옛날 광천읍이 번성할 때는 소용골마을이 부촌이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이 시장에 가서 장사를 하며 돈을 벌었죠.”

강석민 소용마을 이장은 소용골이 광천장과 가깝고 시장 규모도 커서 그때는 벌이가 좋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광천읍의 쇠퇴와 함께 상업을 하던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고, 그마저 남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고령화되면서 장사를 손에서 놓게 돼 지금은 어렵게 노후를 보내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마을의 현안으로 광천읍 북쪽 도심의 끝자락인 현대예식장 앞에서 광천천을 따라 마을 입구까지 1km의 방둑길을 왕복 2차선으로 확포장하는 사업이 절실하다고 꼽았다. 지금 차 한 대 겨우 다닐 수 있는 시멘트 포장 농로길이어서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차들끼리 교행이 어렵다.


뭐든 있어야 하지 없으면 못해
이개필 노인회장
“서로 정을 나눠야 하는데 뭐든 있어야 하지. 없으면 하고 싶어도 못해. 회비 거둬야 하는데 노인들이 어려워서 힘들어. 여유가 없으니 노인회도 잘 안돼. 국가가 원조를 더 해줬으면 해.”
이개필 노인회장은 체구가 작았지만 여든 중반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건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전거로 경로당에도 오시고 읍내도 나가신다.


열대식물 파파야 재배
이계헌 마을총무
“노인 소득을 위한 일자리가 필요합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다 함께 계절이 바뀌어도 할 수 있는 소일거리가 필요합니다.”
이계헌 총무는 열대식물 파파야를 재배한다.




어르신들 자주 대접하고 싶어
김계숙 부녀회장
“부녀회가 모든 회원들이 잘 협조해 주셔서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 자주 대접하고 싶어도 재정이 없어 안타까워요.”
김계숙 부녀회장은 젊은 여성들이 없어 노인회원들이 거의 중복돼 있다며 대접을 받아야 할 분들이 같이 식사를 준비해서 드셔야 할 만큼 고령화된 단체의 현실을 토로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취재=허성수/사진·자료=김경미 기자  sungshu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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