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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헤 어허요 행차마다 대만선이로다~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 풍어제역사자료로 살펴보는 수룡동 마을 <1>
마을회관에서 출발해 당집으로 이동하는 마을사람들

지난 2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 마을 풍어제가 열렸다. 풍어제는 정월 보름날 서해 바다를 지키는 용왕산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당제다. 풍어제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마을에 사람들이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당제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수룡동 마을은 한국전쟁 시 황해도 옹진으로부터 들어온 이주민들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황해도식 당제가 자연스럽게 전해져, 충청도식 당제를 기본으로 배치기 노래의 리듬 등 황해도 지역의 독특한 문화현상을 조금씩 보태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당제를 치르고 있다.

마을부녀자들이 당제에 사용될 음식을 머리에 이고 나르고 있다.(왼쪽)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만든 봉죽.(오른쪽)
당집에 놓아 둔 부정풀이 제물.

수룡동 당제는 서해의 용왕신에게 당제를 지내는데 용(龍)은 한국의 대표적 수신으로 용의 보살핌으로 마을이 보다 평안하다고 믿었다. 또한 당의 신격에서 주신(主神)으로 여신(女神)을 모신다. 서해의 용왕신이며 주신인 당각시를 비롯해 당할아버지, 당할머니, 산신·지신 등 오당을 모시고 있다. 당제를 지낼 때는 다섯 신에게 바칠 다섯 몫의 제물을 준비한다.

1969년 당제를 맞이해 뱃기를 배에 달고 있는 선주들.

제의과정은 물 달아오기, 상당제, 뱃고사, 거리굿, 음복 및 결산, 삼일당제 등으로 나눈다. 물 달아오기는 풍부한 물을 기원하는 의례며, 삼일당제는 당제의 흠향 (신명<神明>이 제물을 받아서 먹음)정도를 가늠하는 절차다. 또한 상당제는 선주를 중심으로 한 남성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지만 거리굿은 아낙네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가정의 안녕을 기원한다. 반면 뱃고사는 선주 가족이 중심이 되어 개별적으로 이뤄진다.

1980년 상당제 후 뱃기를 단 어선에서 뱃고사를 지내고 있는 모습.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풍어제 모습 역시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마을 사람들은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백설기와 팥시루떡을 만들고, 동태전과 꼬지, 두부, 산적, 홍어찜 등과 술, 소머리 등을 준비한다. 풍어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소품도 필요하다. 봉죽과 서리화, 오방기, 금줄, 횃대, 사살막이용 활과 화살, 양판판, 물 다루기 병 등을 준비한다. 봉죽과 서리화는 수룡동 풍어제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면서 새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1982년 상당제 후 뱃고사를 지내고 앞바다를 돌며 풍어를 기원하는 어선 모습.

봉죽은 남자를 상징하고 서리화는 여자를 가리킨다고 한다. 한편 배를 부리는 선주들은 각자 자기집에 열사흗날 아침이 되기 전에 오방기를 만들어 대문에 세워놓았다. 오방기는 녹색,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흰색으로 구성된다. 횃대는 출발시점인 마을회관에서 불을 붙여 당집으로 들고 간 다음 당집에 도착해 모닥불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또한 마을회관에서 이동해 제당으로 이동하는 동안 잡귀나 부정한 것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제물로 사용했던 소머리뼈를 당산 아래 바닷가 나무에 매다는 모습.

한편 1965년부터 기록되어온 당제 물목기(物目記)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고 있다. 지난 1999년 물목기를 살펴보면 백미 50kg 9만 5000원, 새우젓, 명태 3만 9000원, 잡곡 6000원, 무당 수고비 25만 원, 자동차 사용료 3만 원 등 모든 경비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수룡동 김관진 이장은 “아마 마을에 이런 자료들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 흔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잘 보존해 후세에도 우리 마을 기록이 영원히 남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1965년 당제 물목기.

<참고문헌: 홍성 수룡동 당재, 민속원 발행>

김옥선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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