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는 것을 두려워하는 M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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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는 것을 두려워하는 M씨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8.03.2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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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은 1년 이상 교제한 남친과 헤어진 후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술로 생활하다 자살을 시도했다. 부모님에 의해 응급실에 실려간 그는 입원치료를 받았다. M의 남친은 동갑내기로 얘기가 잘 통했고, 모든 것을 잘 수용해줘 매우 가까워졌다. M에게 남친은 ‘첫사랑’이었고, ‘이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남친의 태도가 형식적이고 열정이 식어간다고 느꼈다. 그런 감정이 들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전화 및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카톡을 보낸 후 읽었지만 답장이 없거나 ‘읽지 않음’으로 표기되면 안절부절 했고, 불안한 마음에 몇 번씩이나 전화와 문자를 남겼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던 어느 날 M은 무작정 남친의 집으로 향했다. 동성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던 남친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양 팔을 붙잡고 애원했다. 그러자 남친은 M의 얼굴과 목 등을 때렸고, 언어폭력도 가했다.

M은 중소도시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부모님의 막내로 태어났다. M의 아버지는 성격이 급한 반면, 어머니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는 소심한 분이었다. 부모님이 늘 바쁘셨기에 과수원 그늘에 돗자리를 깔아주면 혼자서 놀고 자고를 반복했다. 유치원 시절 소풍을 갔을 때 친구들은 엄마와 함께 맛있는 도시락을 먹었지만, 자신은 가게에서 구입해 준 단팥빵을 혼자 먹으면서 외롭고 슬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청소년기 때 친구들은 한두 2명에 불과했고, 대학시절도 다르지 않았다.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유방 종양 제거 수술도 받아 이직했는데, 새로운 직장에서 남친을 만난 것이다. 부모님은 M에게 ‘게으르다’고 자주 꾸중했고, 갖고 싶은 것은 눈물로 호소해야 소유할 수 있었지만, 남친은 ‘이쁘다’,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삶의 원동력이었고 그녀의 모든 것이었다.

인지치료에서는 M의 감정이나 행동이 사건에 대한 M의 지각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한다. 곧 M의 느낌을 결정하는 것은 상황이 아니고 그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고 본 것이다. M이 남친에게 전화했을 때 연결되지 않거나 문자를 읽고 답변하지 않을 때 떠오르는 생각에 따라서 M의 감정은 달라진다. 이 때 떠오르는 생각은 자동적 사고이며, 이는 믿음(belief)과 매우 연관성이 높다.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가장 중심적인 핵심 믿음(core belief)을 형성한다. 이 핵심 믿음은 아주 근원적이고 절대적 진리로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며, 핵심 믿음과 자동적 사고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믿음(intermediate belief; 태도, 규칙, 가정들)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M은 ‘세상에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내 인생은 실패작이다’라는 핵심 믿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애인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태도), ‘눈물을 흘려야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규칙/기대), ‘나는 노력해도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할 것이다’(가정)라는 중간 믿음을 갖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남친이 헤어지자고 요구했을 때 ‘이 남자랑 헤어지면 다른 사람을 못 만날 거야’라는 자동적 사고로 이어졌고, ‘혼자 남는 것에 대한 두려운 감정’을 강화시켜 더욱 울부짖으며 매달리는 행동을 하게 했다. 또한 20대에 유방 종양 제거수술을 3회나 실시하면서 여자로서 느끼는 우울함이 더 깊어졌기에 ‘어떤 남자를 만나더라도 헤어짐이 반복될 것 같다’는 예기불안이 자살을 시도하게 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신의 욕구로부터 시작된다. ‘나’ 아닌 대상에 의존하고 싶은 욕구와 독립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한다. 두 개의 팽팽한 밧줄 위에는 두려움과 재결합에 대한 열망도 같이 춤을 춘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M의 눈으로 M의 춤사위를 바라보면서 회복의 여행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고, 원래의 계획을 바꿔서 우회해야 할 때도 있지만 상담자와 M이 여행의 인지모델을 잘 개념화해서 간다면 여행의 효과성은 증진된다. M은 과수원에서 혼자 있었지만 사실은 부모님이 있었다. M의 눈에 부모님이 안 보였지만 부모님 소유의 과수원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면 된다. 또한 상담실에서 상담자가 M 앞에 있어서 안심되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도 M을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곧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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