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룡동 사람들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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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룡동 사람들과 집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8.03.2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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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자료로 살펴보는 수룡동 마을 <3>
1960년대 수룡동 마을사람들. 한 아이가 집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 무료해 보인다. 반면 새암에서 물을 떠 쌀을 씻고 있는 듯 한 아낙네의 모습은 저녁나절 굴뚝에서 뭉게뭉게 오르는 하얀 연기를 생각나게 한다.

강경애 할머니가 유모차를 밀고 힘겹게 깔끄막을 오른다. 마을회관 앞에서 빠곰허니 들여다보니 신발이 없다. 한번 숨을 내쉬고 허리를 편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
‘예전에는 저 국화밭 있는 곳까지 갯바닥이었는디 시방은 국화만 지천이당게. 그만큼 이 동네가 먹고 살기는 어려워졌단 얘기여. 괴기를 잡으러 멀리 나가야하고 요 지척에서 굴이나 조개나 바지락도 쉽게 캘 수가 없응게. 개발이 되니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있어. 어려울 땐 서로 돕고 의지하고 나누고 그랐는디 시방 지금은 사람 인심이 옛날 같지 않아. 그래도 길이 훤하니 뚫리고 커피도 쉽게 타서 마시니 편키는 허지.’

홍주신문을 보고있는 마을주민들.

돌아서 나오려 하는데 저 멀리 샥시가 한 명 걸어오면서 손을 흔든다. 지난 번 왔던 홍주신문 기자다. 유모차를 돌려 회관으로 같이 간다.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디 신발이 두 켤레 있네 그려. 아깐 왜 안 보였남? 알다가도 모를 일이세. 방에 드가니 조경선, 이희분 둘이 머리 베개를 하고 모로 누워 텔레비를 보고 있네 그려.’
잠시 후 임순애 할머니가 지팡이를 탁탁거리며 두부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꼬부랑길을 걸어 회관으로 온다.

“거 뭐여?”
“우리 며눌이가 경로당 간다 하니 두부 지져 먹으라고 줬어.”
“근댜 오늘은 왜 다 안 온다냐?”
“오늘이 광천 장날 아녀?”
“뭐 장에 가도 살 거도  읎어.
사람들이 모이는 4월까지 회관에서 가장 음식을 많이 하는 조경선 씨가 운을 뗀다.

김관용 씨 집 전과 후. 사진 맨 왼쪽이 김관용 씨다.

“오늘 점심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그랴. 다른 사람 올 거도 없는디 간단하게 혀.”
김관진 이장이 보관하고 있던 옛날 집 사진들을 기자가 다시 들고 왔다. 앨범을 들추니 기억도 가물한 옛날 일들이 선반에 살포시 앉은 먼지를 거두어내듯 아련해진다.
“이거 용배네 아녀.”
“몰러. 뭐 뵈야 말이지. 은정 어머네, 이 집 맞어유?”
“어데?”
임순애 할머니가 앨범 앞에 바짝 붙어 앉아 코를 박고 살핀다.

이광수 씨 집 전과 후 사진.

“어, 맞어. 근댜 모과나무가 어딨다냐? 요거이 모과나무인가 본디? 어, 맞는가벼.”
박명희 씨가 들어오며 같이 앨범에 얼굴을 박는다.
“우리가 뭐 아남? 이따가 이장 오면 물어봐.”
12시가 넘어도 더 오는 사람이 없자 조경선 씨가 후딱 일어나 라면을 끓인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면 거의 대부분은 각자 집에서 반찬을 조금씩 해온다. 그도 아니면 바지락이나 굴을 회관 앞에 한보따리씩 두고 가기도 한다. 겨울이니 특별한 반찬은 없다. 밥에 김장김치 말랑하게 푹 지져 먹거나 찬물에 말아 한 그릇 대충 때우면 그만이다. 오늘은 마침 비도 살랑거리고 오니 라면 국물이 딱이다.
라면 그릇을 치우고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그제야 이장이 들어온다.

“밥 먹었수?”
“먹었슈.”
다시한번 이야기꽃이 피는 수룡동 마을회관이다.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 마을은 서부면의 가장 서쪽에 위치하며 천수만에 접해있는 어촌 마을이다. 옛날부터 서해의 풍부한 수산자원으로 어촌이 발전했으나 2001년 홍보지구 사업으로 앞바다가 막혀 예전의 어촌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다.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도 시나브로 줄어 현재 어업에 종사는 어가는 40호 중 13호에 불과하다. 수룡동이라는 지명은 선소(船所)가 생기면서 명명된 추측 지명으로 이후 수룡동으로 바뀌었다. 당산이 있는 서쪽이 용의 머리고 마을회관이 있는 곳이 용의 꼬리와 같은 모습이라 하여 수룡동이라 명명했다. <끝>

2018년 3월 19일 마을회관에 모인 수룡동 사람들. 왼쪽부터 조경선, 박명희, 김관진, 임순애, 강경애, 이희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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