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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선생이었다 그것만 기억하지, 뭐 가르쳤나 기억 못 해”당신의 삶이 역사다-당신의 자소서<4>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5.1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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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선

1939년생으로 홍성군 결성면 형산리 주교마을에서 태어났다. 61살에 교직에서 명예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와 그림을 그리며, 국악을 즐기고, 조개류 등을 수집하며 살고 있다.

기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 학교를 들어갔어. 그 때는 교육환경이 열악해 가마때기에 엎드려서 그 땐 책도 없었지. 책 한 권 나오면 그거 베껴서 그런 교육과정을 거치다가 6·25 사변을 만났지. 내 5학년 때. 맨날 북한 노래, 반공호 파는 게 일이었어. 6학년 때는 전쟁통에 선생님들도 어수선하고 거기서 6학년 졸업하고 갈산중학교 내가 2회로 들어갔지. 공부 해보니까 내가 공부 머리가 모잘라. 못 따라가. 부모님들은 기대 수준이 높거든. 그러니 난 갈등이 생기는 거야.

갈산중학교에서 서라벌예대를 졸업하고 갈산으로 피신 온 미술 선생을 만났어. 그 때 6·25 사변 끝나고 인재만 있으면 선생으로 썼지. 발령이 없었어. 그 선생님한테 그림을 배우는데 내가 다른 선생님한테는 다 못한다는 소리만 들었거든? 영어두 수학두. 근데 미술 선생님한테는 호감을 줬어. 옛날에는 뚜껑 같은데다 물감을 따라 썼는데 짜는 게 없고 거기다 물 한 방울 부어서 붓으로 이렇게 해서 그림을 그렸어. 그 때는 안료라고. 그 분이 이응노 화백의 제자야. 수덕사 수덕여관 하면서 개인전을 걸어놨더라구. 그걸 보구서 내가 감탄한거야. 그 그림 구경하고 이응노 선생님 술 잡숫는 거 구경하고 그 선생은 날 몰르지. 애들 왔다 갔다 하는 줄 알지. 갔다 오믄 그 선생이 그렸던 것을 또 내가 그려보는 거야. 그래가지구서 중학교 졸업하고 홍성고등학교를 들어갔는데 고등학교는 미술 선생이 읎어. 음악 선생이 2학년 땐가 한 번 있었지. 강사로.

내가 미술을 제일 좋아했는데 미술과목이 없으니까 딴 과목이 취미가 없는 거야. 부모님은 기대가 커서 대학 가야한다는 거야. 논 몇 마지기 짓구 그랬는데 녹록치는 않았지만 내가 독자야. 그래 내가 목표를 정하기를 중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 좋다 정했지. 근데 내가 헐 줄 아는 게 암것두 읎어. 난 거기 갈 실력이 못 돼. 서울사대, 부산사대, 광주사대 미술과 세 개였어. 광주사대를 가기로 하고 입시전과 안내서를 봤는데 과목이 나하고 맞어. 미술과 시험 보는데 수학은 필요 읎어. 국어, 국사, 정치사회, 과학도 안 보고 수학도 기하만 봤어. 대수도 안 보고. 기하는 조금 할 줄 알았거든. 미술과는 기하가 필요하지 대수 필요읎거든. 시험과목이 일단 마음에 들어. 근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지. 3년 안 배웠으니까.

데 내가 용기가 있었던 가 봐. 어머니한테 어디 간다고 하구서 용돈을 타서 기차를 타고 이틀에 걸쳐 광주 사범대를 가 본 거야. 지금은 사범대가 교육대로 바뀌었지. 거기 가서 창문에서 미술과를 기웃기웃하니까 휴일인데도 학생들이 실기 연습을 하더라구. 자네 어디서 왔느냐구, 그 얘기를 하니까 반갑다고 하면서 들어와서 해보라구 하더라구. 그리니 형편없지. 이럴 때 이렇게 해 봐라, 지울 땐 뭐로 지우고, 목탄 숯 검탱이로 그리는 거야. 비너스상. 그게 머릿속에 들어오더라구. 뎃생한 것을 나한테 하나 줬어. 그걸 방에다 붙여두고 그리는거야. 계속 1년 동안. 그러니까 비슷하게 되더라구. 시험보러 갔지. 과목이 맞지, 실기두 성적이 괜찮아서서 2대 1정도 됐는데 후미로 합격했을거야. 거기는 서양화, 유화, 수채화, 묵화, 조소 다 가르키는 거야. 그러니께 깊이는 읎어. 내가 다 헐 줄은 알아.

거기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와서 국립사대를 졸업하면 발령을 국가에서 책임져. 시험 보는 게 아니구. 충청남도로 도 배치를 받아서 이내 발령이 되더라구. 노력두 안 했는데. 갈산중학교 모교로 들어갔지. 25살 때. 미술과목은 예체능 기타 과목으로 쳐. 미술이나 체육은 별로 열심히 안 해. 그 시간은 쉬는 시간이야. 교실에 들어가면 수업 준비가 읎어. 난 연습장에 뭐라도 그려내면 점수를 줬어. 교육과정 읽어보니까 내가 가르치는 것이 어떤 화가를 양성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 아니고 일반 중등 보통 국민을 양성하는 교양이거든. 그런 쪽으로 하니까 애들도 수업이 쉬운 거지. 어렵지 않고 시험도 평이하게 내고 내 이름이 조운선인데, 애들이 선 자 하나를 빼버려. 조은 선생. 점수도 50점 이상 75점, 혼내지 않지, 맨날 웃지, 그러니 별명이 붙지.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되는 게 그 때 그림을 내가 먼저 그려가지구 칠판에 붙이고 이렇게 하는 거다, 수채화는 산을 이렇게 칠하는 거다 이렇게 하면 애들이 금방 따라 와. 근디 그걸 매번 못한 거 같아. 하긴 했어두. 그게 제일 후회가 돼. 내가 가르친 애들 가운데 전문화가, 교수 서너 사람 있어. 우리 집에 가끔 와서 나보구 잘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말로는 그래. 딴 학생들은 그저 조은 선생이었다 그것만 기억하지, 저 선생이 뭐 가르쳤나 기억 못 해.

산중 10년, 왔다갔다 5년 씩. 홍성여중에서 10년. 그 사이에 삽교중 근무하다가 45세인가 그 때 상담시대가 왔어. 교장 교감 선생이 조 선생이 상담 선생을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상담교육을 공주 사범대로 받으러 갔는데 그게 딱 귀에 들어와. 딱 마음에 맞어. 그래서 상담 교사가 된 거야. 미술은 내 대신 딴 선생이 와서 가르치고. 천안 성결고등학교였는데 방 하나 딱 주고. 첫 번은 애들이 뭔가 하구 구경하다가 나중에는 얘기해보니까 쪼끔 통하거든. 그러니께 줄을 서는 거야. 공부하다 골치 아픈 애들, 수업하기 싫어 오는 애들두 있구, 진짜 상담하러 오는 애도 있구. 기타 여러 호소하러 오는 애두 있구. 요즘 미투 얘기 많이 하더만 옛날에도 미투가 문제 많았어. 여학생들이 성폭력을 당하는 범위가 거의 다 가정이야.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있는데 절대 한 이불 속에서 자면 안 된다고. 그걸 잘 다독거리고 지금 같으면 경찰에 고발하면 금방 해결될 건데. 옛날부터 속담이 여자 비밀은 무덤까지 간다 그랬어. 묻어두는게 좋겄냐? 고발해서 너의 사촌오빠를 징역가는 게 좋겠냐? 물어보는 거야. 그러믄 그 대답을 지가 만드는 거야. 내가 강요는 않고. 글쎄유, 그냥 묻어두고 살아야겄네유. 그래, 지가. 그게 상담이야. 상담이라는 건 얘기를 잘 듣고 걔가 눈물 흘리면 나두 눈물 닦는 체 하고, 결론은 내가 안 내리고 지가 결론을 내리게 하고, 공감해주고, 경청해 주고. 담임 선생하구두 많이 싸웠어. 걔가 그런 문제를 안고 있으믄 상의를 좀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근데 말은 옳은 말이여. 근데 그건 걔 비밀 보장이 안 되는 거야. 상담을 하는데 아주 열 섰어. 딴 학교는 개점 휴업이야. 안 오니까 수업 시간에 불러내는 거야. 그러니까 선생님들하고 싸움하는 거여.

왜 수업시간에 애들 불러내냐구. 근데 또 일지를 써야 월급을 탈 거 아녀. 그런데 난 그렇게 애들이 많아. 이상하다 해서 도에서 장학사 오고 상담교사 오고 아주 관광하러 왔어. 2층 상담실 보니까 상담하고 나가거든. 또 오는 애도 있고. 그러니까 사실인거야. 거짓말이 아닌 거야. 일지 보면 적혀 있고.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느냐. 그래서 내가 상담 사례도 발표하구 상담교사 강의도 데니구 이렇게 한 게 좋았어. 상담교사는 체질이 있어. 냉정하고 무서운 사람은 체질이 아녀. 도에서 인정을 받으니까 유럽 여행도 시켜주더라구. 4개국. 어려운 교감 승진도 되구. 그림이 점수도 땄지. 출품하면 1점씩 주거든, 총 10점 되면 되는겨. 교감 자격증 따서 입장중학교를 거쳐서 예산중학교 교장으로 왔지. 보니까 그 때가 교원들 퇴임시킬 때야. 전교조 선생님들 막 득세할 때. 90년대 말. 전교조가 좀 인정될 때 에이, 퇴임하자, 2년 냄겨놓구 퇴임한 거야. 예순한 살에.

다음에 고향 와서 이렇게 집 짓구 살면서 그림 전시도 하구. 누가 생전 와보지도 않는데. 부락 회관 노인회 어른들하고 얘기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구. 봉사가 딴 거 아녀. 음식 하는 거야. 자취를 많이 해봐서, 요즘 텔레비 보면 남자 요리사 많이 나오잖어. 음식이라는 건 쪼끔만 생각하면 이치에만 맞으면 되는 거니까. 생선찌개, 카레라이스. 심지어는 김치도 담그구. 전번에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서 설거지 하면 좋지 않게 생각하는데 나중에는 자기네가 미안하니까 가지고 오고 그려. 넣다가 조금씩 하고. 해보니까 되거든. 우습지 않게 되거든. 지금들은 서로 헐러구 그래. 아침에 일어나면 대금 먼저 불고, 그림 그리고, 뒷산 갔다 오고, 텃밭 쪼끔 하고, 뭐 그러고 살지.

평생 교사로 살아오신 선생님은 퇴직 후 고향에서 자연과 예술을 벗 삼아 살고 계십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지식만이 아닌 인생을 가르쳐 준 위대한 스승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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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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