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이사를 왔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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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이사를 왔을 뿐입니다”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6.0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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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10>

금마면 월암리 문성휘
금마면에서 ‘밭에 감추인 보화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문성휘 씨.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에게는 로망이 있다. 그림 같은 풍경을 배경삼아 멋진 집을 짓고 살고 싶은 꿈 말이다. 물론 풍경을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뻐꾸기가 울고 밤에는 소쩍새가 ‘솟적다’라고 울며 올해의 풍년을 알린다. 사계절을 지나며 온갖 꽃들을 지천에서 보고 느끼며, 자연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다. 내가 무엇을 해 준 것도 없는데 자연은 우리에게 풍요로운 혜택을 준다.

지난 2012년 금마면 월암리에 귀농한 문성휘(58)씨는 “아침에 일어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스팔트 위에서 태어난 문 씨는 시골생활에 대한 로망으로 45살에 명예퇴직을 했다. 아내 복명순 씨와는 상의도 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내려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7년을 아내에게 졸랐다. 물론 그 때는 애들이 학생이었으니 걱정도 됐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부인 복 씨는 “미련이 생기지 않게 아예 홀딱 정리하고 내려왔다. 변화된 삶을 선택했으니 나 스스로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2의 인생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한다.

문 씨는 딸기 농사를 지은 지 5년 차에 들어선다. 처음에는 고추 농사를 짓다가 딸기로 품목을 바꿨다. 또 토경재배를 하다가 수경재배로 바꿨다. 토경재배를 하다 보니 쪼그려 앉아 해야 하니 무릎과 허리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고, 수경재배한 딸기가 좀 더 높은 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락시장과 금마면 하나로마트 로컬푸드에 납품하고 있다.

지금의 땅을 산 것은 마을에 들어온 지 1년이 지나서다. 주민들이 이 땅을 사라고 추천해줬다. 처음에는 거의 폐가에 가까운 빈 집에서 2년을 살았다. 귀농 초기에는 교회를 가야 해서 주말마다 서울에 갔다. 그래도 폐가라 하지만 내 집이라고 돌아올 집이 있음에 감사했다. 땅을 구입하고 비닐하우스 옆에 살아갈 집도 지었다.

귀농 선배이기도 한 문 씨는 귀농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농업기술센터나 귀농·귀촌지원센터 등 귀농과 관계된 사람들에게 수없이 얘기했다. 제발 귀농하려는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지 말라고 말이다. 현실성 있게 얘기해줘야 한다. 농사를 지으려면 돈도 있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한다. 지금은 과학적 영농기술을 접목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는 몸이 버티지 못한다. 또 이웃 간의 갈등이나 정서적 차이 등에 대해 본인이 철저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준비를 해서 내려와야 한다. 최소한 3년 동안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귀농을 생각했다면 젊은 나이에 오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30대에 귀농해라.” 옆에서 딸기를 포장하느라 정신이 없는 복 씨가 살며시 덧붙인다. “귀농을 했다기보다 그저 이사를 왔을 뿐이다. 송파구에서 은평구로 이사한 것처럼 말이다.”

이사는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물리적 행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경제적, 육체적인 수고로움이 뒤따른다. 이사를 하면 그 지역에 정서적으로도 적응해야 하고, 물리적 환경에도 시간이 필요하며, 특히 이웃의 관계에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물며 농부로 직업도 바뀌었다. 이래저래 적응할 일 투성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간이라는 약이 있다. 어쩌면 인생은 그리고 삶이란 버티고 견디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곳이 도시이건 시골이든 말이다.

도시에서의 삶의 시간이 오후 3시라면 시골에서는 오전 6시,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부서지듯 스며들고 먹이를 쫓아 마당을 기웃거리는 새를 만나는 시간쯤이 되지 않을까. 그 시간과 자연이 주는 혜택을 그저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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