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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서 다 탄광으로 다녔슈”당신의 삶이 역사다-당신의 자소서<6>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6.1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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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순

1936년생으로 홍성에서 태어나 장곡면 산성리로 시집 왔다. 3남매를 모두 여의고 산성저수지 마지막 집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물두 살에 왔응께 60년 살았쥬. 그 때는 집이 이렇게 좋지 않구 초가집 흙안케 동안케 하구 살았쥬. 여기 탄광이 크게 있어서 한참 때는 살기 좋았었슈. 먹고 살 사람들이 탄광에만 다녔응께. 석탄 많이 나왔쥬. 우리 집 양반 쉰다섯 살 그때쯤 그만 뒀슈. 이 동네서 다 탄광으로 다녔응께 큰 트럭에 탄 실고 길도 크고 좋았었슈. 인저 자꾸 무너지고 그러니께 그렇게 되더라구.

여기서 밥 장사 했슈. 열다섯, 열일곱 명까지 했쥬. 조 방이 하꼬방 마냥 지었던 방이유. 지방 사람들하구 딴데서 온 사람들하구 저 방에서 잤다닝께. 그 때는 방값은 안 받구 밥값만 받았지. 우리 집 양반이 자기도 다니닝께 힘들게 일하는데 뭐하러 방값까지 받느냐구.

여기가 가까우니께 딱 한 시간 점심시간 주거든유. 도시락 갖고 가믄 암케도 차잖유. 12시 땡하면 점심 먹고 올라가믄 1시 되지. 와서 먹었지. 여기선 국허구 뜨끈뜨끈허게 먹구. 그 때는 어린애들 국민핵교 다니구 헐 때유.

밥값을 싸게 받아서 그런지 돈 안 모여지대유. 그 눔 받아서 시장 봐다 반찬 해주고 그러믄 뭐 그렇지. 그 땐 농사 안 지었는데 난중에 쪼끔 지었쥬.

리집 양반이 탄광 그만뒀잖유. 그 양반도 직업이 떨어졌잖어. 그러닝께 장사 시작했쥬. 문고리 장사, 이고 다니는 잡화 장사 했슈. 실이니 뭐니 지금은 설탕이지만 옛날에는 사카랑 먹었잖유. 촌에서 겉보리나 그런 거 샀쥬. 내가 갖고 간 거 있지, 그거 있지, 그렇게 무겁게 해서 데니면서 해서 애들은 공부 갈켜놔서 성공은 시켜놨슈.

그 양반 건강원 차려서 했슈. 장곡서. 허시다 돌아가셨거든. 그래 내가 그걸 한 10년 했지. 장곡서 거기 하나라 잘 됐었슈. 시방 이발소 자리. 그 집 터 빌려 했는디 주인네가 서울서 내려왔지.
건강원 허기 전에는 보따리 장사하다 반찬 했지. 갈치, 조기 그런 것들 떼갖고 다니며 팔구. 동네서는 챙피해서 저 등배실, 횡경리, 청양, 목련, 꼬챙이, 안심리 그런데루 먼 길로 나가구 단골 심어 다녔슈. 버스 탈라믄 겁나게 힘들고 새벽밥 먹어야 하고 아는 사람 하나 새겨놓고 정 급하면 그 집에서 자구.

겨울에는 김 장사 했슈. 서울 가면 1000원 씩 남았어. 한 회사랑 손잡아 가지구서 아는 사람 하나 있어갔구 친척이 거기 살아서 날 믿구서 사드라구. 사람은 신용이 있어야 혀. 집으로 다니구, 회사로 다니구. 회사 가믄 여러 사람이 사닝께 많이는 50톳 씩, 30톳, 기차가 완행이라 겁나게 걸렸지. 열 톳 팔믄 돈 만 원 떨어졌응께. 먹고 살라구 하늘이 봐 줬는지, 수완이 좋았는지 그건 잘 모르겄슈. 살아온 게 참 지지라게도 살았슈.

사하러 디닝께 아들 유유 사다 놓구서 시어머니 보구 맥이라고 했는데 우리 시어머니가 그걸 바로바로 끓여서 맥여야 하는디 그렇게 헐 줄 모르셔서 그걸 식지 말라고 이불 속에다 푸~욱 넣어놨다가 맥였어. 그래서 탈 나가지구 아들 하나 잘난 거 잃었슈. 시방은 병원에 다닝께 일찍 고치잖아유? 옛날에는 병원에 안 가구서 뽕나무 구데기 그걸 들기름에 달여서 맥였슈. 그걸 시어머니가 맥이더라구. 그라믄 기침 가라앉는다구. 그렇게 해구서 애들이 백일기침 할 수 있는데, 백일동안 기침해야 낫는다구, 옛날엔 그랬슈.

리집 양반이 먹구 살아야 하니까 트럭 조수를 다녔슈. 이 밑에 가면 다 쓰러져가는 다리 있는데께 차고 하나 있슈. 거기 정부미 쌓는디 기사들은 술집으로 점심 먹으러 들어가구 조수가 남았었는디 조수가 인저 지가 그동안 시간 줄인다고 차를 돌려서 잘 넣어둔다고 한 게 잘못 밟아가지구, 사람들이 창고 앞에 쭉 섰었는데 그 차가 창고를 처박아서. 그 날 장 섰었슈. 장 서는디 장에 갔다 오다 잠깐 뭐 물어보니라고 그 양반한테 갔다가 막 올라와서 그 때 임신했었는디 이 밑에 사돈댁 처녀가 쫒아왔더라구. 저기 외삼촌 다쳤으니 빨리 광천 가 보라구. 부들부들해서 갈 수가 있슈? 갠신히 내려갔지. 광천 가는 딴 트럭에 실어다주더라구. 그 때 시방 광천 고려병원 거기가 위생병원이었슈. 거기로 갔는디 그 날 저녁 돌아가신다구 방 비지 말라구 그러더라구 의사가. 근디 본인이 답답하다구 안 드러누울라 그러더라구. 가슴에서 낙숫물 떨어지듯 똑똑똑 소리가 나구 말도 두서없이 하구.

그러는 바람에 애들 남매 백일기침으로 죽는 것두 몰랐슈. 죽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갔다 묻구서 와서 얘기하더라구. 같이 다친 이 그이가 와서 그 이튿날 얘기를 하더라구. 난 애들 묻는 것두 못 봤슈. 자기들끼리 쑥덕쑥덕거리고 말더라구. 말할 것두 읎쥬. 저 길로 안 다니구 요 너머 다니는 길 있슈. 넘 부끄러워서 글루 다녔슈. 저 여편네가 젊디 젊은 것이 얼매나 팔자가 사납길래 사내 그렇게 되구 애들 둘 그렇게 됐나,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것 같아서, 내 자격지심에. 그네들은 날 볼 때 딱하게 볼 텐데 나는 자격지심으로 그렇게 넘 부끄럽더라구. 팔자가 세서 그렇게 생긴 것 같아서.

시방 정신이 읎어서 그렇지 정신 차리고 얘기하믄 한두 끝두 읎슈. 울기 숱하게 울고 다녔슈. 넘 보는데서는 울지도 못허구 산길 다니면서. 걸어서 다니다 차 오면 타구. 그 다음에 뱃속에 있는 애도 가드라구. 그 담에 있어갔구 딸 낳슈. 걔가 지금 쉰 살이 넘었어 시방. 4살 터울로 아들 낳고 다음에 아들 낳구. 그러구서 암것두 읎는 집 자꾸 낳아서 뭐 하느냐구 유산시켰어. 셋이나 유산시켰어. 내가 맥여 살릴 수가 읎잖유.

고 다닝께 힘들었쥬. 다 아파유. 머리두 빠지구. 나 그래서 키가 줄었슈. 그런 걸 걔가 봐놔서 공부를 잘 했슈. 걔는 핵교 갔다오믄 숙제부터 해놓구 나가 노는 애유. 백점 맞으면 접어서두 안 들고 이렇게 들고 와. “엄마, 나 백점 맞았다.” 나두 그 기쁨으루다 뼈가 빠지도록 일하구. 어느 날 내 일하고 있응께 지가 와서 한댜. 아, 요맨한게 뭘 해유? 맴이 이쁘지. “권 둬. 니가 아니어도 엄마 실컷 혀.” 그러믄 “엄마 힘들잖어.” 그래 내가 “너 쳐다보면 엄마 힘 하나 안 들어.” 그랬슈.

옛날에 공부할 때는 수,우,미로 했는디 걔가 꼭 수, 제일 못해야 우, 어쩌다 하나씩 들고 왔슈. 근디 어느 날 성적이 떨어진겨. 그 때 한 대 종아리 때렸네, 큰 아들. “니 동상은 이렇게 잘했는디 점수가 왜 떨어졌냐구.” 그런디 그 뒤로 점수가 쑥쑥 올라갔구 범계국민핵교 다녔는디 애들 점수 매길라믄 보호자가 필요하잖어, 걔를 꼭 델고 다니더라구. 지 누나가 여상 다니다가 미용 뵌다고 빚 얻어주고 미장원 차려줬지. 지 동상을 글루 옮기라구 해서, 누나 공이 컸지. 지금두 누나에게 겁나게 잘허유. 며느리두 형님하구 상의해야 한다구 그려.

본시대가 내가 여덟 살 때였거든. 야학에 다녔지. 야학 다니는데 어른들이 못 대니게 하드라구. 거기 다니면 못 쓴다구. 어디로 잽혀간다구. 얼마 안 있다가 6·25나구. 야학 다녀서 국문 깨트려서 내 이름자는 알유. 친정어머니가 겁나 까탈스러워서 버선 볼 대잖어. 올이 조금만 비뚤어져도 다시 하라고 했슈. 그래 꼼꼼하게 배웠지. 두루마기며 저고리며 내가 내 손으로 다 가위질했지. 손바느질로 그렇게 안 가르쳐줬음 못했지. 우리 오빠는 군인 가서 죽고 언니는 옘병 앓다 죽었슈. 외딸이유. 사촌들도 다 죽고 읎슈. 나 여섯 살 먹었나, 나도 앓고. 나는 살라 그랬는지 물 떠주면 받아먹는디 언니는 영 안 먹더랴. 그때는 열이 40도 넘어도 병원 가나? 홍주 월계 거기 올라가믄 거기 딱 하나 있었슈. 나 아홉 살 먹어 아버지가 무릎에 앉혀놓구 밥 잡숫고 그러셨슈. 막내딸이라구. 생각하면 까마득하지.

산성저수지 맨 끝자락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살고 계시는 어머니는 자식들의 권유에도 아파트는 답답하다며 집을 지키고 살아가십니다. 자식들은 어머니 고향살이 시키는 것 같다면 마음 아파합니다. 다리가 불편하셔서 마을까지 내려오시기 힘드신데 혹여 혼자 계실 때 편찮으시기라도 할까 괜히 마음 졸여집니다. 어머니 아프지 말고 건강하십시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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