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 낡음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동네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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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수동, 낡음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동네재생
  • 취재=한기원/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9.0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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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빈집에서 도시재생의 길을 찾다 <6>
서울시 성수동의 대림창고는 1970년대 부터 정미소, 물류창고 등으로 사용 됐다. 비어있던 창고를 2011년 리모델링 해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거듭났다.

성수동 대림창고, 도심 속 공간재생과 관련한 모범적인 사례로 꼽혀
공장 리모델링한 카페와 스튜디오, 2011년부터 젊은 사람들 몰려와
성수동 2가 인근 노후건축물 68%, 1980년대 비해 인구 26% 줄어
주요 가로변 소규모 공방·서점 권장 등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


건물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다. 한 장소가 역사적인 보편성과 특수성을 얻는 데 걸린 시간에 비하면 너무 빠르다. 도시재생이 경계해야 할 건 속도다. 그리고 숙고해야 할 건 방향이다. 지역 자원에 대한 탐구와 도시재생에 대한 일관된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서울시 성수동은 빈집 재생을 통한 낡음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동네다. 성수역 3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600m 길이의 왕복 4차선 도로가 나온다. 도로 양쪽엔 크고 작은 카페가 나란히 줄지어 있다.

또한 성수동은 남성·여성용·아동용 완제품 수제화 매장뿐만 아니라 중간 가공, 원부자재 유통 매장까지 모인 수제화 산업의 메카다. 인쇄업 관련 공장도 즐비하다. 그러나 공장들이 서울 밖으로 이전하면서 빈 창고들이 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낡은 창고와 공장, 빈집인 주택이 핫한 공간으로 떠올랐다. 문화 공간과 카페, 식당 등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부터다. 이 가운데 성수동 대림창고는 도심 속 공간재생과 관련한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대림창고는 1970년대 정미소로 지어진 뒤 물류창고 등으로 사용됐다. 2011년 한 공연기획사가 대림창고의 내부를 리모델링만 한 채 패션쇼와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대림창고의 붉은 벽돌과 거대한 철제문은 옛 공업지대를 연상케 한다.

현재는 갤러리 카페와 음식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뚝도시장 방향으로 3분 정도 거리에 있는 카페 겸 조명갤러리 ‘자그마치’가 대표적이다. 인쇄소로 쓰던 공장 내부만 리모델링한 데다 같은 건물 3·4층엔 여전히 단추 등 패션액세서리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

 
■ 성수동 골목 상권 살리기 ‘보존과 관리’
길가의 가로수와 어우러진 커다란 붉은색 벽돌 건물이 눈에 띄는데, 이곳이 지난 2011년 성수동에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대림창고’다. 무거운 철제문을 밀고 들어가면 큰 조형물과 투명한 천정에서 떨어지는 자연관이 색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다. 하지만 공장을 리모델링한 건물의 단점은 시야인데 바깥을 볼 수 있는 창이 작거나 없기 때문이다.

대림창고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훔볼트는 이러한 아쉬움을 달래기 충분하다. 통유리창이라 커피 마시며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이나 거리를 빼곡하게 채운 가로수들을 볼 수 있다. 이런 광경이 낡고 투박한 구두공방과 오래된 공장이 있던 허름한 동네, 서울 성수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실제 성수동은 1960년대 공업단지로 조성돼 공장과 노후 주택이 혼재돼 있다. 하지만 입지조건만 보면 영동대교만 건너면 청담동인 데다 지하철 2호선과 분당선까지 있어 원래 발전 여지가 충분한 동네다. 그리고 실제로 2011년부터 이 동네에 젊은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공장을 리모델링한 카페와 스튜디오가 들어서면서부터다. 비슷한 시기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젊은 예술가들도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때마침 서울 숲 앞엔 고급 주상복합단지인 갤러리아 포레가 들어서 부촌 이미지까지 더해졌다. 이즈음 우후죽순 들어선 지식산업센터(아파트형 공장)도 젊은 직장인 유동인구를 늘리는 역할을 단단히 해냈다.

서울 성수동은 카페골목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는 낙후된 지역이었다. 아주 옛날에는 채소밭이었던 터라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다. 제조업 붐이 일었던 1970년대 땅값이 저렴했던 성수동2가 지역에는 공장들이 들어섰다. 그 당시 지어진 공장이 아직도 돌아가고 있는 터라 성수동2가 인근의 노후건축물은 68%에 달했다. 주거환경도 열악해지면서 성수동 황금기였던 1980년대에 비해 인구도 26%나 줄었다.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던 수제화 산업도 저가 제품에 밀려 인기가 수그러들면서 수제화 거리도 듬성듬성 빈 가게들이 생겨났다. 수제화 거리에 남아 공방을 이끄는 장인들도 노령 종사자가 대부분을 차지해 젊은 층의 유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성동구는 성수동의 낙후가 급속도로 진행되자 도심의 슬럼화를 막기 위해 성수동 일대를 서울시 도시재생시범사업에 신청했다. ‘성수동 골목 상권 살리기’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재개발 등 전면철거형 정비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지역 특성을 고려해 보존과 관리 위주의 지원사업이 진행됐다. 특히 성수동을 대표하는 수제화 거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수제화 산업 육성과 보호를 위한 디자인, 제작, 판매까지 전 분야를 지원했고, 수제화 장인을 꿈꾸는 청년들을 유치하기 위해 가게도 저렴한 가격에 임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성수동을 찾은 건 수제화 산업의 종사자들만이 아니었다. 비싼 땅값의 ‘문화의 성지’로 꼽히는 홍대, 대학로에서 밀려나 갈 곳을 잃은 젊은 예술가들이 성수동을 찾은 것이다.

 
■ 세월의 더께 켜켜이 쌓인 공간 매력적
하지만 성수동의 원주민들은 묵묵히 수십 년을 인쇄공장에서, 금속공장에서, 수제화 공방에서 일해 온 터줏대감들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월세를 견디지 못하고 내쫓기는 신세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장을 인더스트리얼 카페로 만들겠다는 건물 주인에게 내쫓긴 세입자도 상당하다고 한다. 성동구는 부랴부랴 프랜차이즈 가맹점 입점 불허, 주요 가로변 소규모 공방ㆍ서점 권장 용도계획 등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도 만들었지만, 돈의 힘을 버티기는 버거워 보이는 것은 개발이 최상이라는 주의가 옛것을 파괴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도시재생사업지역으로 묶이지 않은 성수동의 남쪽은 이미 브랜드 아파트와 새 건물들이 들어섰다.  수제화 거리와 카페 거리 중간 중간에 새 건물을 짓는 공사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낡고 허름한 그대로의 모습과 새것의 적절한 조화, 과거와 현재의 사이좋은 공존으로 사랑 받던 성수동의 모습을 잃어가는 듯한 아쉬움이다.

1970년대 지어진 이후 슈퍼와 식당, 가정집과 정비소, 공장이 차례로 들고나며 세월에 세월을 더해져 금속 부품공장이었던 건물이 카페로 변신한 것이다. ‘신일금속’이라는 상호가 새겨진 녹슨 철문을 그대로 사용한 점도 과거와 현재를 잇는 추억의 다리가 되고 있다. 낡은 건물 외관은 그대로 노출시키되, 의자와 테이블은 현대적인 소재를 사용한 점도 특징적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성수동의 카페 어니언이다.  낡은 건물 외관은 그대로 노출시키되, 의자와 테이블은 현대적인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백년 가까이 된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그럴까 커피 맛이 유난히 각별한 이유다. 공간에 스며있는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는 재미가 더해졌기 때문이리라.
 

최근 오래된 창고나 병원·공장 등을 개조해 카페 등 상업 공간으로 만드는 공간 재생 움직임이 활발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단 만들어놓으면 입소문을 타고 어김없이 사람이 몰리기 때문이다. 일부러 만들래야 만들 수 없는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있는 공간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성수역 인근 카페거리와 수제화거리를 지나 뚝섬역 쪽으로 이동하면 간장 양념의 돼지갈비, 수제맥주 거리가 있다. 성동구민종합체육센터 오른쪽 세 블록이 바로 뚝섬역 맛집의 메카로 꼽히는 지역이다. 대부분 주택이나 작은 상가를 리모델링해 성수역 가게들보다 훨씬 작은 게 특징적이다. 여기엔 성수동 3대 빵집으로 불리는 ‘밀도’와 ‘보난자베이커리’ 그리고 ‘빵의 정석’이 2분 거리에 모여 있다.

문재인 대통령 구두를 제작한 것으로 잘 알려진 수제화 명장 1호인 유홍식 대표는 “성수동 상권은 서울숲역에서 뚝섬역을 거쳐 성수역에 이르는 곳으로, 서울숲 뒷편과 성수역에서 수제화거리, 대림창고, 이마트로 이어지는 카페거리 등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하고 “과거 구두·원단·가죽을 다루는 공장과 창고가 밀집한 곳이었지만 기존 수제화 거리와 갈비 골목 외에 최근 개성 있는 카페들과 공방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고 밝혔다. 

성수동의 30대 청년사업가인 윤지훈 대표는 “이곳 성수동은 수제화 거리와 함께 낡은 공장과 창고의 기존 모습을 살린 갤러리·카페 등이 들어서며 옛 모습과 새로운 문화예술 복합공간·커피숍 등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며 “이는 뉴욕 브루클린의 공장들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을 연상시켜 성수동이 ‘서울의 브루클린’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기획기사는 충청남도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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