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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이 애기 같더라니까. 난 다 컸지,열아홉이니”당신의 삶이 역사다-당신의 자소서<15>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10.1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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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연

1923년생으로 서산에서 태어나 19살에 갈산면 와리 목과동마을로 시집왔다. 아들 딸 6남매를 낳고 평생 뒷바라지를 하며 살았다.

리 목과동. 나 시집 올 때 여기는 모과가 얼매나 많아 목과동이라 그럴가 했는디 모과도 읎대? 열아홉 살에 가마 타고 시집 왔지. 우리 신랑은 열여덟 먹었어. 가마 타고 시집 오는데 신랑은 앞에 오잖어. 뒤에 오는 가마가 뭐라 하냐면 ‘방방이 돌뫼서 돌리면 방방이 돌려라 쉬이 신랑 젖 먹고 싶다 한다’ 그랬어. 어려서 장가 가니 신랑 젖 먹고 싶단 소리여. 가마 속에서 들었단께. 신랑도 못 보고 시집 왔어. 초례 치르느라고 저 짝에 있는 신랑 요리 봤지. 신랑 각시허구 만나보도 안 혀. 그냥 어른들이 초례 지낼때만 보지. 왔다갔다나 했깐. 말허면 그냥 와서 사는겨. 애기 같더라니께. 나는 그 때 다 컸지. 열아홉이니. 신랑은 어려빠져. 핵교도 안 다녔어. 그 때 핵교 다니면 춤 춘다고 안 보냈어. 한글은 성당 다니면서 쪼끔씩 뵜지. 책 보구 넘 허는 것 보구 국문은 알어. 성당 다니길 잘 했지. 주일마다 여기 다니는 차가 있어 다니고 했는디 이제 나이 먹어서 못 걸어다녀갔구 이제 신부님이 우리 집으로 오셔.

밑에 헌 집에 살다가 내가 제일 좋은 집에서 못 살아본 것이 원이다 그랬더니 애들이 돈 걷어서 져줬어. 5년 됐나? 아흔한 살 먹어 졌나보다. 한 달을 살아도 집 지면 좋겄다고, 그런데 이렇게 오래 살어. 우리 식구 많았어.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상 셋, 시누 둘, 일꾼까지 해서 열두 식구 방아쪄서 밥 해먹었어. 여남 마지기 졌지. 할아버지 땅을 아버님이 짓고 지금은 아들이 짓구, 내리내리. 돈 버는 사람이 있어야 늘지. 그냥 바작해서 그렇게 먹고 산 거지. 맨날 바작바작하게 살았지. 밭농사를 더 많이 졌어. 우리 영감 마흔아홉 살에 명 짧아서 죽었지. 맨날 앓았어. 군인도 일제 시대허구 6·25때 두 번이나 갔다 오고. 맨날 술 자시고 속 썩였어. 술 좀 그만 먹으라고 내가 그랬지. 우리 동네는 술 너 말 가져야 한 끼 먹어. 그러니까 맨날 그거 차려야지. 뭐라도 사서 지지고 그랬지. 근디 지금은 나도 술 먹어. 막걸리. 다른 술은 안 먹어. 목 마를 때 한 잔 씩 먹으면 좋아. 다리 아프지, 귀 먹어서 보청기 꼈지. 눈 어둡지. 고루고루 늙어갔구 나이 여간 많이 먹었어야지 100살 먹을라나 봐.

리 시아버지가 세상에 없는 며느리로 알고 얼매나 귀염 받고 살았는지 몰러. 시누들도 지금까지 잘 혀. 시집 가 다 늙었어두 난 시집살이 하나 안혔어. 맏며느리여. 우리집이서 지금까지 제사 지내지. 아들 둘, 딸 넷. 딸이 넷이나 돼서 좋아. 딸을 네 번째 나니께 날마다 술 췌하는겨. 그래 아들 어찌 생길라나 그래 낳아봤더니 생겼어. 마흔한 살에 낳으니 어거 낳아서 손주를 볼래나 어쩔래나 낳긴 했는디 그래도 그 아들 덕을 보네. 갸가 돈 주고 대전 유한킴벌리 공장장이여. 늦게 낳았어도 지금도 오기만 허면 나 붙들고 워디로 데니고 그래. 영감은 죽었응께 그런 것두 못 보잖어. 나도 일찍 죽었으믄 그 꼴 못 보잖어.

감이 군인 갔는디 그 때는 군인 가면 죽는다고 대막대 7개 기다란 놈을 벼가지고 석 자씩 끊어서 글씨를 써갔고 묶어서 식전이면 대문에 꽂아놨어. 저녁이면 이슬 안 맞게 들여놓고 그렇게 해야 산다고. 그렇게 지성을 들였어. 저녁이면 샘 가서 물 떠다 마당 가서 빌고 절하고 그랬어. 그래 죽지 않고 살아오기는 했어. 6·25때는 애지연이라는 데루 갔어. 상대방이 다 죽어 쓰러지더래. 자기가 보니께 자기가 죽으면 안 되겠더래. 그래 나가서 훈련 가르치는 데로 들어갔댜. 그래서 살아왔다고 하드라고. 그 때는 지성 안 들였어. 일허느라고 애썼어. 밭 매고 보리 방아 쪄서 밥 해대고 삼 삶고 명 잡고 누에 쳐서 명질허구 안 한게 워딨어? 쉴 날이 워딨어. 산에 커다랗게 건조장 해놓고 거기다 누에를 치는디 고치가 하얗게 지쳐서 따 놨는디 그거 누가 와서 가져갈까봐 내가 거기서 혼자 잤어. 산고랑에서. 무서운 것도 읎더라니께. 그러커구서 고치 따서 팔고 젊어서부터 지금까정 편케를 못해서 살어. 일해야 먹구 살어.

구 수도 많지 않았어. 지금은 다 죽고 이사 가서 사람이 더 읎어. 한 30명 될라나. 빨갱이들 들어와서 그런 사람들 피해 다니느라구 결성으로 갔지. 가니께 얼매 안 가서 총소리가 탕탕 나. 결성 핵교서 사람 다 죽인다고 얼른 돌아가라 그러대. 그래서 도루 집으로 왔어. 어린애만 업구 갔지. 만고풍상 다 겪었어.

홍성장도 가고 광천장도 가고. 가다가 넘의 마차 있으믄 태워달라고 하고 산길 저 솔길로 갔지. 그 때 차가 있깐? 걸어서 30리야. 돈 뫼느라고 뭐 많이 사가지고 오간? 돈 갖고 와야 집이서 애들이랑 쓰지. 지금 내가 생각하면 친정에 용돈 한 번 안 준 게 제일 서운혀. 그 때 돈 읎어가지구. 우리 어머니가 동상 시집 가고 나도 시집 왔어. 너는 애들허구 째니께 받어 나는 쟤가 또 줄겨. 그러는겨. 근디 난 용돈을 못 줘봤어. 지금은 돈 있응께 용돈도 주고 옷도 해주고 그럴텐데 지금 그게 그렇게 걸린다구.

단장사도 보따리 이고 다니며 했어. 장에서 장사꾼들헌테 조끔씩 떼다가 보따리 이고서 다니며 동네 다녔지. 친정 동네 가며 팔구. 그렇게 돈 묐지. 저고리 같은 거 한 감씩, 치마도 한 감씩. 지금 돈으로 하면 3000원이여. 한 감 팔으면 500원 남지. 우리 친정에 염판 하는 사람이 있었어. 소금 굽는 거. 메리야쓰 쓰고 갖다달라 해서 갔다줬는디 다 외상으로 해서 그 눔을 떼먹구서 섬으로 이사를 갔어. 거기 가 또 한댜. 거기를 찾느라고 한 보따리 해서 찾아가니께 간조하면 준다고 외상값을 안 주는겨. 거기 돌아다니며 갖고 간 걸 다 팔았어. 그이들이 가오리 같은 거 고기로 주는겨. 돈 읎응께. 그런 거 받아다가 광천 저 독배로 왔다가 그걸 다 냄겼어. 흉년 들면 논에 물이 읎어서 쌀이 읎어. 맨 저 보리만 있지. 비 안 온다고 새암 팔 줄이나 알어? 논이 다 묵어 갔구 메밀도 허구 콩도 갈구 그래 쌀이 읎었어. 배급 타서 먹구 그랬지. 아버님 밥 해드리고 반찬 해야지, 사람 일허믄 품값 줘야지, 내가 돌아다니며 일해갔구 댔지. 죽지 않을 만큼 일 허구 살았지. 옛날에 살은 건 살은 것이 아녀.

딸을 낳았는디 밥 해먹을 쌀도 읎어서 배급 타서 좀 먹다가 그 때가 5월이여. 보리 갈아서 밭에서 이삭 잘라다가 말려서 갈아서 그거를 먹었어. 근디 배고파. 애 낳았응께. 먹을 게 있어야지. 배고프니까 잠도 안 와. 그 때는 미역도 흔치 않았어. 김두 물에다 말아서 찬 거 마냥 타 먹었어.

집 와서 일 년 만에 친정들 가고 했어. 난 일찍 갔어. 우리 어머니가 아들만 다섯 낳았어. 막내를 뵜는데 어머니 이번에도 아들 낳으면 나 밥 안해줄텨 그랬는디 또 아들 난겨. 내가 10월에 시집 왔는디 그 때 어머니가 애를 뵜어. 4월에 딸 낳았다고 전화가 왔어. 우리 막내 동생이 나하고 20년 차이여. 그런데 지금 나하고 같이 늙어. 홍성 소향리 살어. 우리 어머니는 아흔 살에 돌아가셨어. 우리 아버진 일찍 돌아가시구. 속상헌 것두 읎구, 좋은 것두 읎구, 기억나는 것두 읎구 그래. 우리 아들 잘 된 거 외에는 다른 거 읎어. 우리 딸이 맨날 불러내. 무슨 일 있음 전화허구 다른 애들은 먼데 있으니까. 먹을 거 사다주고 아프면 병원 델고 가구. 그러커니께 여태 살지. 말년에는 호강허구 살어. 애들 잘 둬서.

열아홉 새색시는 가마를 타고 오면서도 신랑 얼굴 한 번 못 봤습니다. 초례를 치르면서 얼굴 위로 올린 손 너머로 살짝 신랑 얼굴을 처음 봤습니다. 어린애 같기만 하던 신랑과 그래도 아들 딸 낳고 오래오래 사나 했더니 혼자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그래도 자식들이 잘 되어 집도 지어 주고,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여행도 다닙니다. 이제는 나 혼자만 호강 받는 것 같아 먼저 떠난 남편에게 미안합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백 살이 됩니다. 그 때까지 사려나 봐 하시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리며 이렇게 말해봅니다. “어머니 백 살까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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