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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낳을라구 자꾸 낳아 줄줄이 사탕이여당신의 삶이 역사다-당신의 자소서<19>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11.1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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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춘희

1936년생으로 광천에서 태어나 장곡면으로 시집갔다가 첫 아이를 낳고 다시 광천에 돌아와 살았다. 딸 일곱을 낳고 막내아들을 낳기까지 숱한 눈물을 흘렸다. 도시락 8개를 싸가며 8남매 뒷바라지를 했다.

결혼해 애기를 낳는데 에구 넘 부끄러워 말 안 할래. 첫 애 딸을 낳는디 그 뒤로 쭉 딸을 일곱 개 쭉 낳어. 벌어먹고 살 길은 읎구 재산도 읎구. 시대를 잘못 타고났어. 어려운 건 괜찮은디 왜정에서 인공 때 피난 다니느라 공부를 못 한거여. 거기에 원이 돼서 딸 일곱 가르치며 먹고 살려니 좀 어려워? 논 한 되지기, 땅 한 되지기 읎구 두 몸땡이 뿐이여. 날르고 뛸려니 비오는 날도 벌러 나가야써. 하두 살기가 힘들고 고달프기 땜에 세상일을 뭐를 몰르고 살은거여. 열심히 벌어 그것들 가르키느라.

때는 왜 그렇게 아들 아들 했나 몰라. 아들 낳을라구 자꾸 난겨. 줄줄이 사탕이여. 내가 말이고 얘기니까 이렇지 얼매나 무슨 고생 뭣헜겄어. 시어머니 시아버지는 너 딸 낳서 으떡헐래 한 마디 못 들어봤슈. 그렇게 호인이었어. 우리 시어머니가 무식허덜 않고 한문 공부 한 양반이라 그렇게 인자했어. 그래갔구 일곱째 낳을 때는 넘의 웃방 하나 셋방 얻어 이사 와서 살면서 으떻게 으떻게 장사도 허구 넘의 일도 댕기고 허면서 살았지. 일곱째 가져갔구 낳게 됐는디 시아버지가 요번에는 아들 낳으면 될 테지 이렇게 허셨는디 또 딸 낳네? 으떡혀? 그걸 나 혼자 낳는 건 아니잖아? 그래두 내가 죄 진 것 같고 말을 못 한겨. 우리 집 양반이 기별허기를 뭐라 했냐며 그 때 전화가 있나? 데니는 사람헌테 연락했는데 순산했다고 걱정허시지 말라고 넣는데 에구 또 딸 낳는가보다 허드랴. 노인네가 헐금실금 장곡이 시집이여. 여기서 25리여. 시어머니가 차를 못 타. 멀미 나서. 근디 온겨. 기집애 또 낳는디 할 말이 있나?

어머니 오시느라 고생허셨는디 뭣허러 오셨수? 그랬어. 넘의 셋방이니 쪼끄만 허지. 탄골 거기만 따뜻해. 거기 놓은 줄 알고 왔는데 애기가 있어야지? 얼라, 얘, 애기는? 뭘 그게 보고 싶유? 시어머니가 둘레둘레 하더니 그 전에는 네모진 책상이 있었어. 네 발 달린 거. 그 책상이 윗목에 가 있는디 거기 가 보니 시어머니가 꺼내드라구. 얼라 얘 좀 봐. 이렇커지 마. 이러커면 죄 받아. 못 쓴다. 생명인디 자식을 이렇게 헐 수가 있니, 그래 거기서 꺼내갔구 탄골에 갔다 뉘이더니 애기 이마빡을 요렇게 요렇게 쓰다듬으며 어이구 얘, 더 잘 생겼다, 더 이쁘다, 뭐가 걱정이냐? 그러대. 너는 후에 비행기 타겄다, 아들만 놓으면 리어카 탄다 하더라. 그러더라구. 그 소리 들으니 내 눈물이 안 나와? 딸 낳아놓구 맘 못 잡아서 뭣 허는디 애기 낳는다구 그거 낳구서 아들만 낳는다하면 또 낳겄어. 저희 아버지도 지지배 일곱인데 이년 소리 한 번 안 혀. 무슨 상관이냐구. 새끼들 다 똑같지. 그러면서 일곱 내 힘 닿는대로 하나도 안 남기고 다 여윈대. 일곱 중 제일 못 살고 빠지는 놈 하나 있을 거 아니냐 그러걸랑 그 놈 내 데리고 살다가 죽으면 된다구 뭐 걱정이냐구, 그렇게 나를 위로시키더라구. 그렇게 그렇게 허면서 둘이 몸땡이로 벌어 가르치구 사는거여.

디 내가 우연히 어질병이 들어. 화장실에 가서 볼 일 보구 나올래두 어지러서 못 나오고, 자꾸 일어날래도 어지러서 못 일어나고 워떻게 할라믄 어지러 죽겄어. 근디 그게 애여. 어지럼 난 게 저 머슴애 있었던 가 봐. 그런지 또 낳는디 지지배면 넘 부끄러워 으떻게 산댜? 그 생각에 읎앨라구 병원마다 다 가봤슈. 가니까 보호자 델고 오래. 신랑더러 그런 소리 하믄 안 가는겨. 생명을 왜 읎앨라구 그러냐구. 그러구 안 가. 대천으로 홍성으로 가찬데는 다 갔는디 안 시켜줘. 그러다 보니께 배가 달싹달싹허네. 으떡혀? 배가 부르니께 남 부끄러 에구 아무개네 그 아주머니 또 임신인가 봐 배 부르데. 남자고 여자고 그 소리가 귀에 쟁쟁해. 넘 부끄러 환장해. 옹통바구니가 있어. 대바구니 끈 달린 거. 그걸 들고 시장 갈라믄 그걸루 배를 이렇게 가리구 갔어. 시장을 가야 애들 도시락을 싸주지. 아침에 세시 반이나 네 시 일어나서 정신없이 밥 해서 도시락 8개 쌀라믄 장난 아니지. 이거는 헐 일이 아녀. 그래도 어려운 줄 몰르고 애들 가르친거여. 학교서도 김병철 씨 이게 보통 아들이 아닌디 선생들도 그랬어. 넘의 애들은 지들이 연애도 걸고 둘이 나가 살림도 살고 그러더만 우리 애들은 그걸 몰러. 맨 공부만 허느라구. 연애 걸어서 나가 살믄 좋겄는디 그렇게 안 나가. 그 때 내가 마흔한 살이었지.

향은 광천이고 저기 철도 건너 살았고 시집은 장곡이야. 그 때 난리 터져서 과년한 아가씨 있음 공출해갔어. 그래서 시집을 일찍 보낸겨. 스무 살에 갔어. 스무 살 먹은 어린애 같은 거 일찍 보낸 걸 항상 원망했었거든. 그래도 베 같은 거 삶고 째고 해서 길쌈허구 명주 저고리 치마 바느질 허구 다 했어. 이웃 사람들이 친정 가고 워데 갈라믄 저고리 갖다 주면서 꼬매달라구 사정해싸구 그랬어. 나무에서 나뭇잎 제일 이쁘고 잘 생긴 나뭇잎 하나 똑 따놓은 것 같다 했었어, 이 섶하고 깃이. 그렇게 이쁘게 바느질 했어. 큰 동서에 시어머니 시아버지 다 명주 바지저고리 두루매기 다 꼬매댔어. 등잔불 켜 놓구. 하루도 쉰 날이 읎지. 우리 집 양반은 장사두 허다가 트럭 큰 거 거기다 시골서 물건해서 서울로 올리는거 그거 했지. 시골서 물건해서 한 차 싣고 가서 아다리가 잘 되면 돈이 왕창 남고 그렇지 않으면 밑지기도 했어. 그러다가 중간에 한전에 취직했어. 그러다가 정년퇴직허구 뭐 해 먹고 살어? 내가 장사도 숱하게 했지. 처음 장사 시작할 때는 콩 사다가 콩나물 장사를 했어. 집에서 길러서 다라이에 싣고 가서 시장 가서 채소전에 내려놓고 팔았어. 집에서 길른 놈이라 약을 헐 줄 아나, 물 줘서 길른 거 그거 먹어보고 맛있어서 저녁 때 되면 막 오는겨. 식전에도 대문을 일찍 열어놔야 혀. 콩나물 사러 와서. 아침 하는 사람들이 콩나물 달라고. 늦잠도 못 자. 그렇게 허다가 콩나물만 팔아서 애들 뒷받침을 헐 수가 있남? 그래서 대천 오뎅공장을 찾아가서 하루 1박스씩 부쳐주기로 했어. 기차로 부쳐주면 역전에서 리어카 가지고 옮겨주는 사람이 갔다 줘. 그러믄 팔구. 처음 오뎅 와서 팔라믄 오뎅이 구스럼허니 맛있어. 사서 날루다 먹는 사람도 있어 나도 배고프면 먹구. 그러믄 오뎅공장서 잘못된 거 파지라는 거 있었어. 그 눔을 이만치해서 구텡이에다 넣어 줘. 이웃 장 보는 사람 한주먹씩 주고 나두 먹구. 소금장사, 멸치, 별 거 다 팔았지. 터 앉는데두 300주고 산겨. 나올 적에는 누구한테 받어? 그 때 거기가 읍 땅이었어.

리 큰 딸도 고생 많이 했어. 쟤랑 나랑 숱하게 울었네. 갠신히 차 삯 해서 집으로 오네. 집에 가믄 좀 나서서 돈 좀 줄라나 하고 오나 봐. 그 밑으로 줄줄이 중핵교 고등핵교인디 지 돈 줄새 있나? 읎지. 둘이 벌어갔고 날르고 뛰어도 안 돼, 어떤 때는. 그냥 가면 으떡한댜? 그냥 가야쥬, 뭐라도 해야지 그래. 그래도 그 놈의 공부를 할라해. 환장할 뻔 했어. 공부한다고 악 쓰고 데들어서. 큰 딸이 그러커구 갈라믄 역전서 저도 울구 나두 울구. 동생들이 줄줄이니 먹을 거 봐도 제 입에 들어가남? 그러니 얻어먹지도 못했어. 생선 장사 할 때 다라이에 생선 이고 다니면서 어린애를 포데기 둘러 짊어지고 다라니 지고 가는 겨. 걸음이 걸리나? 어린애는 졸린가 봐. 다리는 근덩거리고 모가지는 뒤로 덜렁거리고. 그렇게 여섯째가 고생했어. 언니들이 핵교 갈라믄 세 네 살 먹은 동생을 델고 가는겨. 핵교 델고 가서 교실에 들어가서 집에서 애 볼 사람 읎어 델고 왔다 하믄 선생이 아무 소리 안 한댜. 맨 뒤에 앉아 놓고 놀라 하믄 가만히 있드래. 그러커구 공부 다하믄 책가방을 땅에 질질 끌리고 애를 짊어지고 집으로 오고 그랬어. 그 때는 애들이 많으니까 산아제한 하라고 데니면서 사람들이 그랬어. 저 집에는 가지 말유, 그 집은 더 낳아야 혀. 그런 얘기 허지 말유. 그랬어. 내 소원이 한 가지 있어. 아들이 장가를 안 갔어. 나는 속 타 죽겄어. 장가 드는 거 보구 내가 죽어야 할 거 아녀.

딸 일곱을 낳고 막내아들을 다시 또 낳아 가르치고 키우느라 몸 고생 마음고생하신 어머니는 이제 온 몸이 다 아프십니다. 여덟 남매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어머니, 이제 마음 편하게 경로당에서 한글도 배우시고 맛난 것도 드시고 놀러도 다니세요.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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