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지진 위기대응, 재난보도 언론에서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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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지진 위기대응, 재난보도 언론에서 배워야
  • 취재=한기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8.11.2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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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9>
구마모토 지진으로 붕괴된 구마모토성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만든 포토존.

일본 언론 재난보도, 포토라인 지키고 통곡·오열 장면 내지 않아
한국 언론 재난보도, 너무 보도경쟁 의식한 자극적인 내용 많아
고베 대지진 당시 NHK와 일본 언론이 보인 차분한 보도에 찬사
고베신문사, “피해 주민들은 지역 언론에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대형 재난이나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언론의 무책임한 인권침해 현상은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의 신문과 방송은 아직까지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내새워 속보 경쟁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형국이다. 사고 당사자들의 인권에는 안중에도 없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을 생산해 내기에 급급하다. 이러한 언론의 보도 태도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사고 현장이나 피해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피해 당사자들은 물론 가족에게도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건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주된 임무이지만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사람들에게는 잔인하기까지 하다. 실제 외국에서는 참사를 당한 피해자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잔혹한 사진이나 동영상은 보도하지 않는다. 법리적인 측면에서도 유족들이 통곡하는 장면을 클로즈업하거나 피해자들의 훼손된 신체 등을 그대로 방영하는 것은 초상권 침해에 해당한다. 초상권 침해로 인한 법적 소송의 가능성이 있음을 원칙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본 언론의 재난보도 태도는 우리나라처럼 무슨 사건이 나면 일단은 누가 잘못했고, 소홀한 부분이 없었는지 책임론을 몰고 가지도 않고, 가족들의 오열하거나 통곡하는 감정적인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화면이 나가는 점을 고려하는 등 철저히 국민들의 질서 있는 재난 대응자세와 같은 화면들을 내 보낸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같은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9·11테러 당시 수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음에도 끔찍했던 사고현장을 원거리에서 찍은 화면만 내보내는 등 포토라인을 지켰고, 어느 누구하나 통곡하거나 오열하는 장면을 내보내지 않았다. 최근 우리의 언론이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 보도경쟁을 의식한 자극적인 내용이 많을 뿐만 아니라 국익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고베 대 지진때 무너진 도로 및 교각 모습.

■ 일본 언론, 재난보도 방식과 태도 주목
일본 고베 대지진의 경우는 지진의 강도가 예상외로 큰데다가 도시지역에 매우 불리한 직하형 이었다. 피난길에 오른 지역주민들이 주로 자가용차를 이용한 탓에 도로가 막혔는가 하면 화재를 진압할 물이 없어서 거의 속수무책이었다. 일본도 지진이 발생하면 초동대응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 다만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있는데 비해 지역주민들과 이른바 볼런티어라 불리는 자원봉사자들의 활약과 각급 학교와 교육자들이 보인 위기대처는 주목할 만 점으로 꼽힌다. 긴급복구와 피난생활 과정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갖가지 문제들이 등장했다. 지방정부의 권위주의는 일사불란한 복구에 장애요인이 됐고 권위주의의 폐해는 피난소 생활에서 물품 보급관리, 의료·위생 등의 일상적인 삶의 질을 최소한도로 유지하는 데에서도 나타나 이재민들의 공무원에 대한 원성은 매우 높았다. 또 자원봉사자들의 직장복귀가 시작되면서 피난소의 자생적 비공식 지도자들의 공백이 생겨 조직적인 생활안정과 복구사업 추진에 지장이 초래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NHK방송이 보여준 지진발생 직후의 모습은 주로 부서진 고속도로, 타오르는 불꽃, 무너진 건물 등이었고 시민들의 아비규환 현장이나 유족들의 통곡장면 등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일본 언론의 보도 자세는 언론도 재해 시에는 보도기관인 동시에 방재기관(실제로 NHK는 법률에 의한 방재기관이라 함)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이들에게 필요한 생활정보를 중점적으로 취급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최대한 고려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대재앙 앞에서 일본 국민이 보여준 시민의식, 질서의식, 절제된 슬픔과 침착함은 놀라울 정도였다는 평가다. 일본 언론의 재난보도 방식과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지진 발생 직후부터 계속해 재난방송을 했던 NHK는 사망자 유족의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고, 시신 수습 장면도 멀리서 잡았다. 신문도 비슷하다. 참혹함을 강조하는 자극적인 사진을 거의 쓰지 않았던 것이다. 국내외 언론은 NHK를 비롯한 일본 언론이 보인 차분한 보도에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매뉴얼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일본 재난보도의 장단점을 취사선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 기능이 미흡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의 재난보도가 쓸데없는 불안과 동요를 줄여 제2의 혼란을 막았지만 정부의 무대책, 현장 구호활동의 미진함 등을 제대로 비판하지 않았다는 비난도 받았다. 특히 원전 폭발 가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정부 중심의 공식 취재원에만 의존하는 일본 언론의 뉴스 생산과 보도 관행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또 언론사간·매체 간 철저한 협력과 역할분담체제를 보도자와 보도대상자간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보도의 내용에 있어서는 시간적 우선순위를 철저히 지켜 문제의 심각성에 비춰 당장에 필요한 재해 상황보도·생활정보 제공 등에 시간과 지면을 최대한 할애하다가 최소한 1주일이 지난 후에야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에 대한 비판과 기타 현장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을 보도하거나 사설에서 취급하기 시작했다.

일본 NHK의 재난방송이 돋보이는 것은 그동안 크고 작은 재해를 겪으며 마련한 대응 시스템과 세심한 보도매뉴얼 준비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NHK는 예산의 3%에 해당하는 3000억 원을 재난방송에 투입하고 있다고 한다. 24시간 재난방송만 전담하는 조직을 꾸려 재해 상황에 대비하지만 우리나라 KBS의 경우 따로 전담팀을 꾸리지 않는 것과는 대비되는 점이다.

고베신문사 와다나베 편집차장이 고베지진 당시 멈춘 시계를 들어보이고 있다.

■ 한국 언론, 과장보도나 선정성 보도 논란
일본 언론의 성숙한 보도 태도는 재난 발생 때면 어김없이 과장 보도나 선정성 보도 논란에 휩싸였던 한국의 언론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한국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정부는 왜 빠른 지원을 하지 않는지, 정치 지도자는 왜 현장지휘를 하지 않는지 등을 조목조목 비판했을 것이다. 이런 식의 보도가 국민에게 유익한지 않은지를 떠나 정부를 움직이게 하고 시스템을 돌아가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언론의 보도 관행이 즉흥적이지만 국민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하는 것 역시 언론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지난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지역신문 고베신문사도 피해를 입었다. 고베신문사 와다나베 편집차장은 “당시 고베신문사도 파괴되고 자료도 분실됐지만 인쇄기능은 일부 파손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문을 발행하지 못할 상황이었으나 지진발생 1년 전에 교토신문과 협정을 맺어 정전이나 시스템다운 등의 경우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해 지진발생 이후 2주일 동안은 편집국 직원이 헬기를 타고 교토신문사에 가서 신문을 제작해 고베신문 기자들이 피해주민들에게 배포했다”는 설명이다.

한편 대지진 당시 시민들은 미디어에 기대하는 게 많아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는 어디서 물을 구할 수 있고, 구호품을 어디서 받을 수 있으며, 사망자 명단 등을 확인해 보도하는 일이 취재활동의 주목적이었다고 전했다. 취재헬기 소리 때문에 구조를 요청하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 구조에 방해되는 상황도 벌어지기도 하고, 의사나 자원봉사자 보다 기자의 취재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외국인을 위한 외국어 자막방송도 병행했고 전국지 신문의 역할도 컸다고 전한다. 전국 및 세계에서 구호품이 들어왔고 피해 주민들은 지역 언론에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고베대지진의 경우 행정기관이나 고베신문도 그렇지만 행정조직원들도 일종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재난보도에 대한 철저한 기자정신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일본 언론은 소홀한 방재대책 비판보다는 다음의 재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보도하는데 반해 한국 언론은 우선 희생양을 선정해 발견되면 사건을 흐지부지 종료시킨다는 점이다. 일본 언론의 재난보도 방식은 우리보다 훨씬 체계화돼 있다. 재난보도는 속보보다 정확성이 중요하다는 신념도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태도는 구마모토지진 발생 당시 보도방식이나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에서 우리가 주목할 일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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