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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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54>
  • 한지윤
  • 승인 2018.12.0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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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이런 것은 참 좋은 일이라 생각되는데…… 그녀 자신이 얼마 안 있어 엄마가 될 때 서툴지 않게 미리 훈련을 쌓는 것이거든요.
식료품 저장실에는 오렌지, 수박 등의 과일들이 넘칠 만큼 있었고, 세탁실도 완비되어 있고, 솜씨 좋은 임신부들이 모여서 재봉일이나, 편물을 하는 작업실도 있었어요. 침실은 검소했지만 깨끗하고 예쁜 장난감도 장식되어 있더군요. 창피스럽다고 가족이나 이웃에서 손가락질 받던, 배가 불룩한 아가씨들도 여기서라면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가 있지요. 또 이곳에서는 부설된 탁아소가 있어 아이를 낳은 뒤에도 갈 곳이 없는 엄마들은 일정한 기간 내에서는 모자가 모두 여기 살면서 다음 생활 준비를 할 수 있다고 해요.
인종들의 도가니라고 하고 있는 브라질답게 백, 흑, 황의 여러 피부색을 한 아이들과 그들의 혼혈아도 있었지요. 우리들이 견학하고 있을 때 벽 쪽에 앉아 있는 사내아이가 벽에 기댄 채로 졸고 있었고 그 아이는 깨어 앉아 있고 싶어도 잠을 이길 수가 없다는 태도로 넘어질 때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었어요. 아직 두 살 정도나 됐을까, 어리지만 다른 아이들이 일어나 있을 때는 저도 눈을 뜨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자기 자신에게 타이르고 있는 것 같더군요.
우리나라 아이들이라면 이럴 때는 예사로 큰 대자를 하고 자버리고 말거나 그걸 옆에서 본 어른들도 뉘어 잠재울 거예요. 그러나 그 아이는 아직 어리지만 이미 이 세상을 견디며 살아야 한다고 버티는 데는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더군요.
아이를 키우려면 양친이 다 있고 또 물질적으로도 풍족한 상태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크는 아이들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될 견딘다는 자세를 일찍부터 몸에 익혀야 하는가 봐요.
어떤 부류의 아가씨가 미혼모가 되는가를 동행한 분들이 물어보았더니 가정부로서 남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아가씨가 많다고 해요. 그 집 주인에게 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딴 곳에서 남자를 만난 것인지…… 인간이라는 남녀가 어떻게 해서 무책임한 성적관계를 가졌거나 낳은 아기는 어른들의 신에게서 받은 최대의 질책이라고 느껴집니다.─

한 박사는 박 여사의 편지를 읽으면서 두 손가락으로 귓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는 또 한 곳의 가톨릭에서 경영하고 있는 ‘미혼모의 집’을 견학했습니다. 가톨릭의 신부님이 같이 가 주었어요. 브라질 사람이지만 우리나라에도 한 3년가량 와 있었다고 하면서 아주 유창한 우리나라 말을 하고 있더군요. 여기서는 300명가량 수용하고 있는 꽤 큰 시설 이예요. 원장은 수녀로 국적을 초월해 훌륭한 여성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아주 당당하고 조용한분 이었어요.
여기서는 2개의 문제가 항상 미해결로 남는다고 얘기하더군요. 그 하나는 미혼모가 상대의 남성을 알고 있고 또 그 아이를 남자 쪽에서 인정해 주어도 경제력이 없는 경우예요. 여기서도 열네 살의 앳띤 미혼모가 있었어요. 그 상대가 열다섯 살의 소년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는 거예요. 또 하나는 여자가 정신박약자라든지 혹은 정신병자일 경우예요. 이런 여자들이 엄마가 될 경우 장래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예요. 이 문제는 정부의 사회복지부서에서도 손은 못 대고 있는 형편인가 봐요. 교회에서 돌볼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임신을 할 수 없도록 수술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는 허락지 않고 있대요. 일부에서는 몰래 수술하는 일도 있지만 발각되면 큰일 이래요. 이러한 브라질의 사회적, 종교적 제도를 이용해서 300중에 60침대가 외부에서 온 비합법적인 유산의 후유증 치료에 쓰이고 있었어요.
미혼모의 집에 수용된 환자의 대부분은 배가 불룩한 아가씨들 이예요. 임신이란 병이 아니잖아요. 터질 듯한 배를 드레스 아래 숨기고 있는 아가씨가 또 다른 임신한 아가씨들과 어울려 마치 여학생들처럼 팔을 흔들고 웃으면서 복도를 걷고 있었어요. 함께 간 신부님과 서로 알고있는 사이인지 서로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더군요. 내가 ‘언제쯤 낳아요?’ 하고 물으니까 신부님은 통역을 하면서 그 아가씨의 배를 쓰다듬기도 해요. 나는 그 아가씨가 쑥스러워하지 않나하고 걱정을 했지요.
그러나 아가씨도 거리낌 없이 두 손으로 자기 배를 쓰다듬으면서 대답을 하데요. 아무것도 아니예요. 마치 서로가 수박이 익거든 먹자고 하는 의논이라도 하는 것 같았어요. 명랑하고 건강한 모습이었지요. 3주후쯤 낳는다고 그 아가씨는 내 쪽을 바라보면서 천진스럽게 말하더군요.
그러나 비합법적으로 중절을 한 여자들이 수용된 병동은 비참했어요.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모두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그 중에는 성병, 영양실조, 결핵, 암이 있는 환자들도 섞여있는 것 같았어요.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설명 들었습니다. 시와 정부가 식비, 약품, 혈액과 수술비용등을 부담하고 있다지만 이 병동에 수용된 환자들은 일체 그 혜택이 없대요. 어떤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무지가 비극을 가지고 오지 않았나 싶어요.

─신부님과 우리들은 조용하고 당당한 원장님에게 안내되어 어느 큰 방으로 갔었습니다. 이 방은 해산이 끝나고 곧 퇴원할 산모 아가씨들만 30여명 가량모여 있는 곳이었어요. 방의 입구 쪽에 네모진 얼굴을 한 살갗이 지저분하고 나이 든 여자 한 사람이 눈에 띄었어요. 젊은 아가씨들 중에서 좀 이색적으로 보였지요.
한 박사, 우리나라 사람 역시 생활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는 아직 이 여자와 같이 거칠고 피곤한 표정을 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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