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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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68>
  • 한지윤
  • 승인 2019.03.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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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그 아이 어머니가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더니 상대는 최근 그 시설에 수용되어 온 사람으로 이 남자는 구개파열로 발음도 똑똑치 못하고 또 상당히 중증의 간질병 환자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벌써 8개월에 접어들었다고 듣고 있습니다.”
“중절은 할 수가 없겠는데요.”
“그렇다고 듣고 있습니다만, 큰일입니다. 몸이 성하지 못해 무척 애먹고 있지요. ‘이 아이가 살아 있는 한은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다’고 제 누이는 늘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이가 늘 그렇게 생각하고 염려하고 있다면  그 아이는 오래 살 수가 있다고 위로의 말은 했지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앞날까지 생각하면 나로서도 할 말이 없는 상황입니다.”
“너무 염려할 것 없습니다.”
한 박사는 무책임한 말을 했다.
“우선 해산을 시켜야 할 것 같은데 이 병원에서 수고를 해 주십사고 이렇게 찾아뵙게 된 겁니다.”
“그건 상관없지만, 해산 날 돌연히 데리고 오면 곤란하니까 미리 산모를 데려와 줄 수 없겠습니까?”
“데리고 오겠지만, 문제는 태어나는 아이가 문젠데……”
“…………?”
“유전적으로 좋지 못한 요소를 지녔을 것이고… 이런 경우 어떻게 할 수가 없겠습니까?”

잠시 동안 생각을 하다가 한 박사는,
“낳은 어머니가 아이를 양육할 수가 없다면 양자라도 주시겠어요?”
하고 물었다. 조금은 냉정한 어조였으나 상구 씨라는 시의원은 ‘어떻게 할 수가 없을까?’라고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 한 박사가 대답한 것 같이 누군가가 키워 줄 사람이 없는가라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혹은 국가적인 시설에서 이런 아이를 받아 수용할 곳은 없는가라는 뜻으로도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점에 대해서는 개인병원 의사에 불과한 한 박사 보다는 이 의원이 더 자세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의원도 체통상 용의주도해 하고 있고 한 박사도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있었다. 이 의원이 비친 뜻은 아마 이런 해결책만은 아닐 것이다. 좋지 못한 유전적인 요소를 그 것도 한 가지가 아닌 복합적인 것으로 태어날 아이는 개인이나 사회적으로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니 그 이상구가 한 박사에게 부탁한 것은 적당한 처리를 해 줄 수가 없는가 하고 떠 본 것이다.
물론 한 박사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가 바라는 대로 해 줄수도 없거니와 할 생각도 없었다.
“양자로 받아 줄 사람이 있을까요?”
상구는 한 박사가 센스가 좀 나쁘다고 다소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지금 곧 있다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가 양육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양자라도 줄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그럴 때는 선생님이 이 모든 내막을 숨기는 것도 알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낳은 부모가 누구라는 것은 말 안 할 수가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전적으로 숨길 수는 없는 일이지요.”
“전부를 이해하고 이런 아이를 얻어갈 사람이 이 세상이 과연 있겠습니까?”
“글쎄요. 나도 꼭 보증할 수야 없지만, 없다고 단정해 버릴 것도 아닌 일이지요.”
“사정을 알고도 얻어 갈 부인이 있다면 그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만…… 누이동생의 아이라면 나도 내 누이를 설득해서라도 키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손자이고 누이도 벌써 나이가 쉰하나입니다. 손자의 일생까지 책임을 지라고는 도저히 나도 누이에게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겠지요. 나 같은 사람은 내 일조차 책임을 못 진다고 할 정도이니까요. 의사로서 무책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외조모가 외손자의 책임까지 질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핸디캡을 가지고 나오는 아이는 가령 이 세상에 나와서 스무 살까지 국가의 보호를 받고 양육된다고 해도 1억만 원 정도 들게 됩니다. 시설에 보내는 일에 대해 주저하고 있는 것은 그런 실태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구 씨가 돌아간 후에도 한 박사는 언짢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상구는 여러 가지 망설이는 태도를 보였으나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반드시 의논드리겠다는 말을 하고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한 박사의 이 의원에 대한 언짢은 기분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아내인 윤미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오니 유리가,
“아빠, 저녁식사 어떻게 하지?”
“글쎄, 밥을 지어야지.”
“밥은 있잖아. 반찬이 없어.”
“음식점에 배달을 시킬까?”차라리 밖에 나가 외식이라도 해?“
“지난번에 갔던 ‘일미’에 가요. 네, 아빠.”
외식하자는 말에 유리는 좋아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없으면 아이가 가엾다고 하거나 가정이 썰렁해서 아이들이 기가 죽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마 드문 일이 아닐까 하고 한 박사는 생각해 보았다. 대다수의 가정은 아이가 비뚤어지거나 쓸쓸해할지는 모르지만 아이란 제 나름대로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유리는 어머니가 자주 집을 비우기 때문에 바닷가에 있는 대중식당에서 쇠고기가 들어있지 않은 덮밥이나 생선튀김 먹기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럼, 그렇게 하지.”
한 박사는 딸과 약속을 해두고
“조금만 기다려. 아빠 전화 한 통화하고.”
하고는 전화기 앞으로 갔다. 그는 박 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요일 밤이고 해서 집에 없을 줄 생각했으나 곧 박 여사가 전화를 받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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