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개똥’ 같은 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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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개똥’ 같은 법이네!…
  • 한기원 기자
  • 승인 2019.06.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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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 보훈의 달
한국전쟁유족회는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대전과 홍성에서 발굴된 유해를 가지고 진화위법 개정안 등 과거사법 개정을 촉구하며 상경투쟁을 벌였다.

피해 유가족들 ‘과거사법’ 개정 촉구 상경 투쟁
대전·홍성에서 발굴된 학살 피해자 유해도 공개


“이게 우리나라 법이여? 개똥같은 법이네.”
6·25 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이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터트린 울분의 목소리다. 억울한 전쟁 피해자를 구제해 줄 과거사 정리법 통과가 미뤄졌기 때문에 울부짖는 백성의 소리다. 70년의 세월인데도 여전히 눈물이다. 한국전쟁 전후의 100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 학살의 참상. 왜 이렇게 많은 민간인들이 죽어야만 했는지, 한국전쟁 전후로 왜 이렇게 많은 민간인들이 죽었을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은 다시 생각하면 당시의 권력자에게 그토록 적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당시의 이승만 정부와 미국은 대체 무엇이 두려워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야만 했을까? 한국전쟁기 남한지역의 민간인학살은 국민들 속에 뿌리내리지 못한 이승만 정부와 동아시아 전략에 입각해 이승만 정부를 주무르고 있던 미국의 정략적 판단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기회를 엿보던 친일파들은 미군정과 이승만에 의해 일제하의 지위와 재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대한민국에서도 지배세력이 됐다.

친일파들에게 자신들의 전력을 잘 아는 독립운동가들은 눈엣가시였다. 전쟁이 일어나자 친일파들은 구세주로 등장한 ‘반공’을 기치로 내세우며 좌익계는 물론 우익계 독립운동가들까지도 ‘빨갱이’로 몰아 학살했다. 전쟁이 끝나면서 친일파들은 남한의 강력한 기득권층을 형성했고, 그 흐름은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최고위층은 대부분 친미파였고, 남한의 최고위층에서 학살 지시가 내려졌다는 증거는 적지 않다. 그뿐 아니라 미군은 직접 학살에 가담하기도 했다. 잘 알려진 노근리 사건이나 곡계굴 사건 말고도 미군의 폭격에 의한 집단학살 사례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어졌다.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과 ‘경기 고양 금정굴사건’ 등 보도연맹 사건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민간인 집단학살이 자행됐다. 특히 민간인학살과 관련 부산·대구·대전형무소 재소자 학살에 미군이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들도 확인됐다.

체제에 순응할 것 같지 않거나 이질적인 존재들 중 일부를 제거하고, 남은 이들에겐 재갈을 물렸던 것이다. 살아남은 국민들은 최소한 겉으로는 모두 맹목적인 반공주의자, 맹목적인 반공국가의 신민이 됐다. 한국전쟁기의 민간인학살은 이처럼 정치적 학살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고, 전쟁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극우반공체제는 든든한 반석 위에 놓여졌다. 요컨대, 한국전쟁전후의 100만 민간인학살은 대한민국이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극우반공체제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이질적인 존재의 일부를 걸러내고 남은 국민들을 체제에 순치시켜가는 절차였다고 할 수 있다. 학살의 일차적 책임은 당시 대한민국 정부에 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했고, 국민의 군대와 경찰, 그리고 위임을 받은 우익단체가 오히려 국민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3년간의 미군정 기간과 이후 미 군사고문단의 개입, 그리고 1950년 7월 초 작전지휘권이 미군에 넘어간 상황 등을 감안할 때, 미군의 직접 학살은 물론 이 기간에 자행된 모든 학살사건에 대해서도 미국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민간인학살은 제네바협약에 반하는 전쟁범죄이며, 국제법상으로도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 전쟁은 없던 틈도 벌려놓는 속성이 있어서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고, 그 배후에는 어김없이 이성을 잃은 국가권력이 있었다.

■ 노무현 대통령 ‘국가권력에 의한 희생’ 사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은 그동안 군사독재시절과 권위주의적 정부에서 거의 감추어져 왔다. 1946년 대구 10·1항쟁부터 시작된 민간인학살은 제주도 4·3 민중항쟁과 여순항쟁으로 이어졌다. 전쟁전후 국가는 보도연맹 가입자와 ‘부역혐의자들을 재판절차 없이 집단 처형’했던 것이다.

4·19혁명 이후 제4대 국회에서 진상조사를 실시해 피해자 접수를 받고 희생자가 114만여 명으로 추산된다고 발표됐으나 5·16 군사쿠데타로 중단됐다. 그동안 유족들과 후손들은 ‘좌익’ 즉, 공산당 빨갱이로 내몰리며 연좌제에 의해 공무원과 장교임용, 취업 등에 절대적 불이익을 받아오며 눈물겨운 삶을 이어왔다.

제주 4·3항쟁을 위시한 국가폭력에 대해 학살피해자 가족과 시민단체에서 줄곧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했으나, 역대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금기시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1998년 11월 23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제주 4·3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는 발언이 미국에 알려졌다. 이어 1999년 12월 26일 국회에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고, 2000년 1월 12일 제정 공포되면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에 착수하게 됐다. 조사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정부차원에서 최초로 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2005년 12월 ‘대한민국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국가기관으로 발족해 4년 2개월 간 1만1172건 조사를 마무리하고 집단매장지로 알려진 수백 군데 가운데 도시개발과 공장건설 등으로 발굴이 불가능한 곳을 제외한 168개 장소 중 11곳의 유해발굴을 완료했다. 이후 미진한 유해발굴 등으로 위원회 활동기간 연장 필요성이 절실했으나 이명박 정부 당시 2010년 6월 30일 기한종료로 막을 내렸다. 현재 전국유족회는 정부와 국회에 과거사위원회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거나 나서야만 꿈틀거리는 것이 대한민국이고, 우리나라의 법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진짜 개똥같은 법이 아닐까.

■ 문재인 정부 3년째 표류 논의만 진행 중
‘한국전쟁유족회 국회 특별법추진위원회’(추진위원회)는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개정안 등 ‘과거사법’ 개정을 촉구하며 상경 투쟁을 벌였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족들이 조속한 과거사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고령의 유족들은 대전과 홍성에서 발굴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해 40여구를 상자에 담아와 상복을 입고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전국의 민간인 학살 유족회 회원 300여명이 참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전국에서 최소한 10만 명이 넘는 국민의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날 참석자들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지만, 문재인 정권 3년차에 들어서면서 또 다시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진화위법 개정안 등 과거사법 7개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도 되지 못했다. 과거사법을 개정해 활동을 종료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를 재개하고,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을 비롯해 각종 간첩조작, 의문사 사건 등 국가폭력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유해를 발굴하는 등 명예회복조치를 해달라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기인 2005년 과거사법이 제정됐고, 해당 법에 근거해 2006~2010년 과거사위가 활동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동안에도 과거사법 개정을 통해 진상규명을 이어가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유족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대 국회에서는 진척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현재 진선미 의원 안 등 7개 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돼 있지만 3년째 논의만 진행 중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이다.

이날 참석자들은 정부와 국회에 △과거사법 개정을 통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후속 조치 실시 △전국적 유해발굴과 추모 위령사업 실시 △민간인학살과 국가폭력사건에 대한 기록과 연구사업을 위한 진실화해재단 설립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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