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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조선 500년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3대 읍성역사문화 콘텐츠가 미래의 답이다<3>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6.1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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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

1973~81년까지 읍성 안의 학교와 민가들을 철거하고 성곽을 보수
해미읍성, 순천 낙안읍성, 고창 고창읍성과 조선시대 3대 읍성 꼽혀
성벽축성 고을별로 일정구간 나눠 쌓고 책임지는 ‘공사실명제’ 눈길
성벽과 해자까지 5m 공간 적의 방책으로 가시 많은 탱자나무 심어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해미읍성은 1491년 해미현 읍성으로 새로 쌓은 석성이다. 현재 사적 제116호로 지정돼 있으며, 남아있는 읍성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 본래 이름은 해미내상성(海美內廂城)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579년 10월 병영군관으로 부임해 열 달 동안 근무한 곳이기도 하다. 효종 때에 북벌책을 내세우면서 전국의 병영이 강화되자 충청도에도 호서병영이 다섯 곳으로 늘어났는데, 그 가운데 선임 병영인 호서좌영을 해미읍성에 뒀다. 그래서 해미읍성에는 동헌과 객사 중심인 다른 읍성들과 달리 병영이 설치됐다. 1847년 현감 겸 영장이던 박민환이 성곽을 크게 개축했는데, 지금 남아있는 성곽이 바로 이 때 고쳐 쌓은 것이다. 해미읍성이 역사적으로 크게 의미를 갖는 것은 흥선대원군 때 천주교 신자를 박해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충청도 바닷가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 일대에서 붙잡힌 천주교 신자들은 모두 호서좌영이 있던 해미읍성으로 끌려와 심문을 받다가 처형됐으므로, 해미읍성은 천주교의 순교성지이기도 하다.

해미읍성은 성곽이 완전하게 남아 있는 대표적인 읍성이다. 1973년부터 1981년까지 읍성 안에 무질서하게 들어섰던 학교와 민가들을 철거하고 성곽을 보수했으며, 1997년부터 객사와 관아 건물들을 복원했다. 지금은 공원같이 돼 있는데, 앞으로 민가마저 복원한다면 낙안읍성과 같이 살아있는 민속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해미에 도절제사영 새로 설치 기록
조선 초기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은 원래 덕산(德山)에 설치됐다가,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한 방비와 서해안의 수호가 중요시되면서 1417년(태종 17) 이후 해미로 이설됐다. 해미로 옮겨진 이후, 충청병마절도사영으로 개칭됐고 1652년(효종 3)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약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는 거점이 됐다. 이후 호서좌영성으로 축소되면서 해미읍성으로 불리게 됐고, 본래 이름은 해미내상성(內廂城)이다.

‘세종실록지리지’ 충청도 해미현조에 보면 해미현은 태종 7년에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으로 태종 13년에 감무(監務)를 뒀다. 이와 같이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병합한 이유에 대해 ‘태종실록’ 7년 9월 을미조 의정부계에 ‘충청도관찰사에 의하면 정해년은 비록 인물이 조잔(凋殘; 말라서 쇠약하여 시들다)하며 산망(散亡; 흩어져 없어짐)하였지만 이산(伊山;덕산(德山), 부성(泰安), 남포(藍浦) 3진의 대령(大領) 아래 중앙으로서 사람이 없는 광활한 요충지에 해당하고 경고한 석성(石城)이 현이 몽웅역(夢熊驛)에 속하여 왕래하는 사객(使客)을 맞고 보내는데 가장 긴요한 곳입니다. 만일 우환이 있을 때에는 정해현(貞海縣)의 연경지역 뿐만 아니라 홍주(洪州)의 고구(古丘), 운주(運州), 서주(瑞州)의 동촌(東村)에 사는 백성들이 모두 석성(石城)에 들어가 난을 피할 수 있습니다.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병합하여 다시 감무(監務)을 두고 해미현(海美縣 )이라 부르소서’라 하니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해미읍성에 대한 기록으로는 ‘세종실록’ 3년 1월 을유조에 도절제사영(都節制使營)을 해미에 새로 설치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태종 18년(1418)에 덕산으로부터 병마절도사영(兵馬節制使營)을 해미로 옮기게 됨에 따라 영성(營城)을 축조하게 된 것으로 그 규모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상성(內廂城)의 성주(城周)는 3352척이고, 높이가 12척, 여장의 높이가 3척인데 적대(敵臺)는 18개소 중 16개소가 아직 축조되지 않은 상태다. 문은 4개문인데 옹성(瓮城)은 없었으며, 여장(女墻)은 688개, 성 안에 샘이 3곳이 있고, 해자(海子)가 3626척이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해미의 병마절도사영성(兵馬節度使營城)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관방조(關防條)에는 ‘현 동쪽 3리에 석성(石城)이며 주(周) 3172척, 높이 15척, 안에는 3개의 우물과 군창(軍倉)이 있다’고 했으며 ‘동국여지지’는 이를 따르고 있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성주(城周) 3172척, 높이 15척의 기사와 ‘문종실록’의 성주(城周) 3352척, 높이 12척의 기사가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은 위치를 옮겨 축조했다기 보다는 성주에 있어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적대의 길이를 가산하지 않은 것 같고, 성고에 있어서도 ‘문종실록’의 성고 12척은 여장의 높이 3척을 가산하지 않은 때문으로 추정된다. 성주 3352척을 세종 대 포백척(布帛尺)의 기준치인 46.73㎝를 적용하여 환산하면 1566.4m가 되며, 성주 3172척을 포백척으로 환산하면 1482m가 된다.

성돌에는 축성한 고을명을 각자해 책임지도록 했는데, 논산의 옛 지명인 덕은(德恩)과 부여의 홍산(鴻山)이란 글씨가 보인다.

■ 성벽축성 ‘공사 실명제’ 무너질 경우 책임
사적 제116호인 해미읍성은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전북 고창의 고창읍성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읍성으로 꼽힌다. 성벽의 높이는 약 5m, 둘레는 1.8㎞로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다. 성벽 외부는 잘 다듬은 성돌을 쌓아올리고, 그 안쪽은 작은 돌과 흙으로 채워 넣는 내탁식(內托式) 성벽을 갖춘 평지성이다. 성 외벽의 성돌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주, 청주, 충주, 임천, 서천, 부여 등 희미하게 고을명이 새겨져 있다. 진남문 쪽에서 오른 쪽으로 청주, 공주, 이×·홍, 공주·충주, 충주·임천, 임천·부여, 부여·서천, 서천·덕은, 덕은·홍산, 연산·한산, 판독불가, 니산·남포, 석성·회덕, 회덕·진잠, 진잠·×인, 면천, 면천·정산, 전×·×천, 보은·옥천 순이다. 축성 당시 고을별로 일정 구간의 성벽을 나누어 쌓게 함으로써 성벽이 무너질 경우 그 구간의 고을이 책임지도록 한 일종의 ‘공사 실명제’인 셈이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읍성 전체를 감싸는 해자(垓子)를 설치했다. 현재 동문과 암문 사이의 일부 해자가 복원돼 있고, 진남문 해자 구간 시굴조사가 마무리됐다. 서산시에 따르면 정밀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해자 복원계획을 세우고, 문화재청의 발굴·현상변경 허가 등 행정절차를 거친 뒤 2019년 본격적으로 해자 복원을 추진할 방침이다. 해미읍성을 ‘탱자성’이라고도 부른다. 기록에 의하면 성벽과 해자까지는 5m 내외의 공간이 있는데 적의 진입을 지연시키기 위한 방책으로 이곳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해미읍성에는 세 개의 성문과 한 개의 암문이 있는데, 이 가운데 남쪽으로 통하는 진남문(鎭南門)만 원래 모습이고 동문과 서문은 1974년에 복원됐다.

해미읍성 정문인 진남문은 우리나라 성곽의 남문에 주로 붙이던 이름으로 ‘임금이 계신 북쪽을 공격하려는 기운을 억누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성 안쪽에서 보면 문루 아래를 가로지른 받침돌 중앙에 ‘황명홍치사년신해조’(皇明弘治四年辛亥造)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황명홍치’는 명나라 효종의 연호인 ‘홍치’를 의미하는데 성종 22년(1491)에 진남문이 중수됐음을 추정할 수 있다.

진남문을 들어서면 드넓은 잔디밭과 함께 곳곳에 동헌과 옥사, 초가들이 눈에 띈다.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뛰어놀고,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즐기는 쉼터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른쪽 잔디밭에 조선시대와 고려시대에 사용했던 별대완구, 화포, 신기전, 투석기, 운제 등이 전시돼 있다. 옥사 옆 민속가옥에서는 말단관리인 서리의 ‘一’ 자형 가옥, 3칸 초가인 상인 가옥, 부농의 ‘ㄱ’ 자형 가옥 등 민가 3채가 조성돼 있다. 서산지역 노인들의 짚공예와 삼베짜기, 다듬이질 등의 시연을 관람하며 조선 시대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다.

<이 기획기사는 충청남도지역언론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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