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암민속마을 지키는 수백 년 전통의 적송 소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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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민속마을 지키는 수백 년 전통의 적송 소나무 숲
  • 취재=한기원 기자 사진·자료=한지윤 기자·신우택 인턴기자
  • 승인 2019.07.1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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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시대 공동체의 삶과 생명의 공간이다
아산 외암마을 숲은 외암 이간의 묘소를 중심으로 소나무 숲을 조성한 것이 마을 숲의 시초가 됐다.

성리학자 이간 배출한 이래 그의 호를 따 ‘외암마을’로 불려
마을의 한가운데 기(氣)의 흐름을 위해 소나무 숲으로 조성해
이끼 낀 돌담장 안으로 수많은 과실수·조경수들 심어져 있어
본래 마을 숲은 예안이씨 소유, 묘소 주변 감싸기 위해 조성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외암민속마을. 마을전체가 중요민속자료 236호로 지정된 전통민속마을이다. 대략 65여 가구에 280여 채의 한옥과 초가로 구성돼 있다. 외암민속마을은 광덕산을 조산(組山)으로 하고 설화산을 배산(背山)으로 하는 풍수지리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설화산 자락이 펼쳐져 내려 닿은 이 마을은 떠올리기조차도 막막했던 옛 농경사회의 풍경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마을이다. 특히 주산인 ‘설화산’은 한자로 ‘雪華山’이지만, ‘雪火山’으로 불리어진 적이 있어 설화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집집마다 수로를 만들어 방화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송화군수댁, 건재고택, 교수댁 등은 방화수를 정원수로 활용해 한국전통정원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가옥을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외암마을은 대략 15세기경 강씨, 진씨, 목씨 등이 정착해 마을이 형성됐다고 알려지고 있다.  다만 예안 이씨가 평택 진씨의 사위로 왔다는 족보기록으로 미뤄볼 때 외암마을이 예안 이씨의 집성촌으로 변모하기 전에는 평택 진씨의 세력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조선 명종 때 선능참봉을 지낸 이연(李延·?~1546) 형제의 낙향으로 예안이씨(禮安李氏)가 세거하게 된다. 이후 조선 명종(1545~1567)때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이연 일가의 낙향, 이주로 예안 이씨의 세거가 본격화돼 집성촌을 이룬 것은 500여 년의 역사를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예안 이씨들은 이조시대부터 참판, 군수 등 중요한 관직에 진출한 사람이 많았는데, 이들이 대부분 양반가를 이뤘다. 이 마을은 원래 ‘오양골’이란 이름으로 불렸으나 당대의 걸출한 성리학자 이간(李柬·1677~1727)을 배출한 이래로 그의 호를 따 ‘외암(巍巖)’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표기 간편화 정책에 따라 ‘외암(外岩)’으로 다시 바뀌었다.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유명했던 외암 덕에 예안이씨는 마을의 중심적인 세력으로 성장했다. 지금도 마을의 가구 중 절반 이상이 예안이씨라고 한다.

■ 소나무 숲 조성, 마을 숲의 시초
또한 마을 우측의 백호(白虎)자리가 허(虛)하다고 해서 외암 이간 선생의 묘소를 중심으로 소나무 숲을 조성한 것이 마을 숲의 시초가 됐다고 한다. 원래 평평한 마을 한가운데는 기(氣)의 흐름을 안정되게 하기 위해 이곳 역시 소나무 숲으로 조성했다. 이러한 풍수지리적 전통을 따라 심은 소나무들은 수백 년 동안 한국의 전통 (적송)소나무 숲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이 마을의 또 하나의 특징은 4만여 평 남짓한 마을크기에 비해 유난히 긴 돌담길을 들 수 있다. 1m 남짓 되는 높이의 돌담길이 약 5.3km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돌이 많은 이 지역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돌담장이다. 그리고 이끼가 낀 돌담장 안으로 수많은 과실수와 조경수들이 심어져 있다. 지난 2001년에는 산림청에서 주관하는 ‘아름다운 마을 숲’ 공모에서 최우수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외암마을을 가로지르는 물과 광덕산 강당계곡 근처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만나 물레방아 앞의 하천을 이루고, 물레방아 앞의 기암괴석과 전통적 돌쌓기 방식으로 축조된 제방이 하천과 함께 어우러져 외암마을의 정취를 살려내고 있다.

외암민속마을의 자랑은 무엇보다 500여 년간 전통마을의 외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조선시대 원주민들의 후손들이 그대로 그 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중기 5대 한학자 중의 한 명으로 꼽는 외암 이간 선생의 외암문집과 이간 선생이 강학을 했다는 ‘강당사’가 있다. 특히 추사 김정희의 처갓집 이었던 건재고택에 추사의 각종 편액 서체들과 참판댁에서 임금에게 빚어 올렸다는 연엽주가 잘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도 후손들에 의해 비법이 전수돼 내려오고 있다. 또 마을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마을공동의 제의행사인 장승제가 정월대보름 하루 전에 열리고 있다. 또한 해마다 마을장년들과 노인들이 초가집 지붕을 씌우기 위해 새끼줄로 초가를 엮고 용마루를 얹은 것이 짚, 풀 문화의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건물을 고치거나 다시 짓는 경우 거의 외부업자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옛날 건물과는 달리 내벽이나 주춧돌, 기둥 등이 예전의 건물에 못 미치고 있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심지어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비가 새거나 벽이 벌어지는 등 부실공사가 허다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해마다 10월 말에 열리고 있는 ‘외암민속마을짚풀문화제’는 짚풀을 이용한 농경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마련된 지역축제인데 실제로 40년 동안 한 번도 짚신을 신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마을 노인들의 증언을 접하면서 마을문화의 복원이 시급하다는 위기의식이 계기가 됐다고 전한다. 현재도 마을의 초가잇기, 용고쇠틀기 등은 거의 외부인력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옛 짚풀문화와 농경문화의 기술이 이 마을에서조차 단절돼 왔음을 알 수 있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산 외암마을 숲은 외암 이간의 묘소를 중심으로 소나무 숲을 조성한 것이 마을 숲의 시초가 됐다.

■ 정자와 송림이 어우러진 마을 숲
이 마을은 설화산(雪華山·441m)을 주산으로, 설화산에서 발원한 계류가 내수 역할을 하며 마을 남측을 감싸 돌아 동구에서 객수(客水)인 근대골내와 만나 평촌 쪽으로 흐른다. 마을 어귀 정려를 지나 반석교를 건너면 정자와 송림이 어우러진 마을 숲과 만난다. 본래 마을 숲은 예안이씨 소유로 본래 묘소 주변을 감싸기 위해 조성됐다고 한다. 큰 비가 내리면 반석교 아래 반계는 불어난 두 개울물이 부딪혀 넘실거리는데, 이 때 숲은 풍수상 수구막이 역할도 겸한다는 설명이다. 숲의 주된 수종은 소나무(60여 그루)와 상수리나무(30여 그루)이며, 이밖에도 향나무, 개나리, 무궁화, 명자나무 같은 관목(灌木)도 내·외곽에서 고루 자라고 있다.

마을을 찾는 외지인들은 일단 숲에 잠시 머물며 한숨을 돌린 후 돌담길을 따라 고샅을 훑는다. 그러나 겉모양새와는 달리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고 숲의 바닥으로 답압(踏壓;밟아 누르는 것)이 작용하다보니 나무들의 생육 상태가 썩 좋지는 못한 편이다. 사유지인데다 묘소 주변과 가까워 드나드는 외지인들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고민 또한 크다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찾아오는 외지인들을 모질게 내칠 순 없는 노릇이어서 주민들은 묘 주변에 금줄을 치는 등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다는 설명이다. 예안이씨와는 별도로 아산시도 나서서 숲을 관리하고 있다. 나머지는 외지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들어가지 말라는 곳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서로에게 무탈한 일이다.

숲에서 벗어나 안길을 따라 느티나무 당목(堂木)을 지나면 사극 세트장 같은 풍경이 거짓말처럼 펼쳐진다. 샛길을 따라 이끼 묻은 오래된 돌담길이 실핏줄처럼 고샅을 잇는다. 집집마다 쌓은 돌담의 길이는 무려 5.3㎞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깨금발을 들어 돌담 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멋쩍고도 즐거운 일이다. 사람의 눈높이와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돌담은 폐쇄와 개방 사이를 적절하게 줄타기 한다. 다 들여다보이진 않지만 아예 안 보이는 것도 아니다. 다 들여다보일라 치면 능소화, 감나무, 대추나무, 살구나무 등의 가지가 시야를 살며시 가려 애를 태우는 일은 피식 웃음부터 나오는 해학이다.

현재 시민단체와 마을청년회를 중심으로 마을의 내발적 발전을 위해 팜스테이, 체계적인 민박프로그램운영, 떡메치기, 솟대만들기, 민속놀이, 마을투어 등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면서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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