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좁은 마을길 따라 아름다운 상학마을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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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좁은 마을길 따라 아름다운 상학마을 돌담길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한지윤·이정아 기자
  • 승인 2019.07.1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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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 덕천면 상학마을 돌담길

옛 돌담길의 재발견<5>
정읍 상학마을 돌담은 돌만 갖고 쌓은 ‘강담’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이 특징이다.

마을의 돌담은 흙을 채우지 않고 돌만 사용해 쌓은 것이 특징
돌담길과 어우러진 가옥들의 정경과 사람들의 삶의 현장 만나
떡시루에 쌀가루와 고물 층층이 쌓듯 네모난 돌 차곡차곡 쌓아
담장의 높이 1.2m~ 2m로 2400m 돌담길이 마을의 최고 보물


전북 정읍시 덕천면 상학마을은 구불구불 좁은 마을길을 따라 아름다운 돌담길이 들어서 있는 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상학마을의 돌담 담장은 두승산 동북쪽 기슭에 마을이 조성되면서 나온 크고 작은 돌들을 사용해 쌓았다고 전해진다. 이 돌담길이 2007년 11월, 등록문화재 제366호로 지정됐다. 이 마을의 돌담은 흙을 채우지 않고 돌만 사용해 쌓은 것이 특징이다. 이 마을의 돌담은 가옥과 어우러져 예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얼핏보면 다소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보기보다는 튼튼하다는 설명이다. 두승산을 바라보면서 마을의 입구와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령 300~500년 정도의 느티나무 세 그루가 서 있어 이 마을의 유서 깊은 내력을 웅변하는 자태다.

이곳 상학마을 돌담은 주민들의 힘으로 세대를 이어가며 기존의 돌담을 새로 만들고 또 덧붙여서, 주민들의 미적 감각이 가미된 토속미를 담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돌담길을 따라 좁다란 골목길이 이어져 있고, 돌담길과 어우러진 가옥들의 정경과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만날 수 있다. 이 마을 담장의 특징은 주로 막돌을 사용했고, 흙으로 채우지 않고 돌만 사용한 ‘허튼층쌓기’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제주도의 어느 시골 마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할 정도로 돌이 흔하게 보인다.

■ 헛간채까지 돌담으로 쌓여있는 돌담마을
상학마을 뒷산은 두승산(斗升山). 부안의 봉래산, 고창의 방장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불리는 산이다. 말두(斗)와 되승(升), 이름이 유별난데 그 유래가 흥미롭다. 고부관아에서 양(量)을 재는 기준이 모호해 표준이 될 말과 되를 두승산 말봉 바위에 새겨 놓았다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말과 되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나타낸다고 한다. 지금껏 보아온 말과 되지만, 말은 둥글고 되는 네모난 이치가 이와 관련돼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이치와 같이 이 마을의 돌담처럼 아무것도 섞지 않고 돌만 갖고 쌓은 담을 ‘강담’이라 한다. 이 마을의 담장은 온통 돌담장, 강담이다. 정읍에서는 돌담 대신 강담으로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는 설명이다. 이 마을의 노인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강담 쌓은 방법도 가지가지라고 한다. “어머니가 국 간볼 때 주둥아리 깨진 간장그릇 통째로 휘휘 돌리며 대충 간하듯 건성건성, 얼기설기 돌을 쌓은 담장이 강담”이라는 설명이다. “입에는 담배 한 대 물고 한 손에는 돌을 잡아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나무망치로 톡톡 치면서 자리를 찾아 끼워 맞춰 촘촘히 쌓은 강담도 있고, 떡시루에 쌀가루와 고물을 층층이 쌓듯 네모난 돌을 차곡차곡 쌓은 강담도 있다”는 설명이다.

돌담과 헛간채까지 돌담으로 쌓여있는 돌담마을, 지게라도 지고 있으면 옆으로 게걸음해야 하는 좁다란 돌담길과 어우러져 돌담길만 봐도 옛 생활이 저절로 그려지는 것 같다. 마을이 온통 어린애들로 바글대는 예전 같으면 이런 돌담길에선 숨바꼭질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도 옛 추억을 살린다. 지금은 상학리에서 제일 큰 아랫마을 학전에도 초등학교 학생이 몇 명밖에 없다고 한다. 옛 동화나라 같은 이 마을에도 이제는 아이들 소리가 없는 마을이 됐다고 한다. 어른들과 노인들만을 위한 동화마을처럼 느껴지는 건 가끔 개짓는 소리만 들릴 뿐 아이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돌담장 밑에서 소꿉장난을 하던 아이들의 모습은 이젠 돌담에 쌓인 돌들처럼 아련한 옛 추억으로 옛 이야기가 됐으니 말이다.
 

정읍 상학마을 돌담은 돌만 갖고 쌓은 ‘강담’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이 특징이다.

■ 마을의 돌담길이 최고의 보물로 꼽혀
이곳 상학마을의 옛 돌담 10리길이 녹색농촌체험관광의 명소로 부상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한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정감 넘치는 옛 돌담장이 있는 상학 돌담마을은 마을 양쪽으로 천태산과 대암산이 자리하면서, 등산명소로 유명해 졌다고 한다.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300~400년의 수령으로 추정되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와 마을 한가운데의 500여년쯤 되 보이는 귀목나무 한 그루가 마을의 운치를 더해 준다.

마을 입구에는 선돌(입석) 3기가 있어 이 마을의 오랜 역사와 함께 2400여m에 이르는 돌담길이 이 마을의 최고 보물로 꼽히고 있다. 담장의 높이는 대부분 1.2m정도이고 간혹 2m가 넘는 곳도 있다. 등록문화재 제366호, 이 마을의 돌담길이 근대문화재로 등록됐다. 이 마을의 돌담의 특징은 흙을 채우지 않고 돌만을 사용해 줄맞춤 없이 담장을 쌓은 ‘막돌 허튼층 쌓기’ 형식으로 담장을 쌓은 점이다. 이러한 막돌 허튼층 쌓기 방식이 자연과 동화되는 옛 가옥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전통경관을 잘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마을에는 상학1제와 상학2제 등 2개소의 저수지도 있다고 한다. 주민들은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수지에 낚시대를 설치하고 치어를 입식, 무료 낚시터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해마다 7월이면 녹색농촌체험마을로 거듭나고 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녹색농촌체험관, 농산물가공체험시설(6종) 등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사업’에 선정되면서 지압길, 산책로 등이 새롭게 갖춰지고 마을 환경이 정비되면서 한층 깔끔하고 쾌적한 마을로 거듭났다는 설명이다. 이 사업은 마을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근로자로 참여, 자신이 살고 있는 소중한 보물을 개발하고 보존, 살기 좋은 마을로 탈바꿈시켰다는 자긍심과 소득창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마을의 옛 돌담장은, 마을 주민들이 태어날 때부터 줄곧 봐온 담장이었는데, 어느 날 문화재가 됐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다. 마을 주민들은 돌담을 자랑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고부라진 마을의 골목길이 운치가 있어, 제주도는 저리 가라여. 제주도 돌은 시커먼데 여기 돌은 모나지 않고 동글동글하며 모양도 예쁘고 깨끗허잖여”라고 자랑이 여간 아닌걸 보면 돌담에 어느덧 깊은 애정이 스몄나 보다.

이렇듯 상학마을의 돌담은 이 마을의 조상들이 수백 년 전 호남평야에 홀로 우뚝 솟은 두승산(斗升山) 자락에 터전을 일구며 끝없이 나오는 돌로 담과 벽, 밭두렁과 논두렁을 쌓아 올리면서 삶을 살아왔고, 그러는 사이 어느 덧 돌담길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쌓아 올린 돌담의 틈바구니에는 뿌리내린 채 아랑곳 하지 않는 돌이끼와 담쟁이 넝쿨은 1894년 황토현에서 관군을 물리친 동학농민군들의 함성, 일제강점기 노다지의 부푼 꿈을 안고 마을에 들어섰다가 빈손으로 떠난 뜨내기 일꾼의 한숨, 그리고 1970년대 ‘잘살아보자’며 지붕과 돌담을 헐어낸 자리에 시멘트를 채웠던 새마을운동의 광풍을 모두 다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 돌담길 곳곳에는 도시 골목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늑함과 여유로움이 넘친다. 이제는 대도시 뒷골목도 새로운 문화공간, 관광자원으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하물며 옛 사람들의 공동체 숨결이 묻어나는 마을의 돌담길이야말로 아련한 향수를 되살리는 공동체 복원의 꿈을 이어갈 수 있는 골목길이 아닐까.
 

정읍 상학마을 돌담은 돌만 갖고 쌓은 ‘강담’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이 특징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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