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 양산 통도사서 고려대장경 6800권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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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양산 통도사서 고려대장경 6800권 열람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8.0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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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만해 열반 75주년 기획<18>
만해 한용운이 불교대전 편찬을 위해 고려대장경 1511부 6802권을 빠짐없이 열람했던 양산의 영축산 통도사 전경.

만해, 출판 사업을 통한 불교 대중화와 의식개혁 운동을 펼쳐
불교 교리를 일반대중 위해 소개할 수 있는 쉬운 개론서 필요
고려대장경 1511부, 6802권 열람, 현대적 언어로 변용해 요약
‘불교대전’은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밝힌 불교개혁 의지의 산물


신라 선덕왕 15년인 서기 646년에 자장율사가 세운 경남 양산의 영축산 통도사는 원래 아홉용이 살았던 연못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연못의 흔적은 대웅전 옆 구룡지(九龍池)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북의 축을 가진 일반적 가람배치와는 달리 동서로 긴 통도사는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나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심적인 특징은 부처님의 정골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이기 때문에 대웅전에 불상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대웅전 바로 뒤에는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위치해 있어 불단 뒷문을 열면 바로 금강계단의 탑이 보인다. 또한 통도사에는 대대로 글씨와 그림에 능한 스님들이 많은데, 혹자는 영축산의 한 봉우리에 붓의 모양을 한 문필봉이 있어서 그 정기가 흐르기 때문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1300여 년이 넘은 고찰 통도사도 조선시대 불교의 암흑기를 거쳐 조선시대 말인 1899년 여름이 돼서야 백운암에 선방을 열었다고 한다. 경허 스님이 해인사에 처음으로 선원을 연 것이 그해 봄이니, 통도사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 경허 스님이 직접 통도사로 와서 선풍을 떨치는데, 이때 통도사 본사 안에 있는 보광선원이 문을 연다. 이곳에서 성해 스님과 그 제자인 구하·경봉 스님, 그리고 초대방장인 월하 스님이 도를 닦으며 통도사를 떠받치고 나갔던 것이었다. 이후 1905년 내원암에도 선원이 개설됐고 이후 안양암, 백련암, 극락암 등에 차례로 선원이 개설됐다고 한다.

■ 불교 교리를 현대화해 대중에게 제시
이러한 내력을 지니고 있는 경남 양산의 통도사는 만해 한용운과도 깊은 사연이 있는 곳이다. 만해 한용운은 출판 사업을 통한 불교 대중화와 의식개혁 운동을 펼쳤는데, 이곳 통도사에서 출판의 핵심사상을 얻었던 것이다. 바로 만해 한용운의 역작 중 하나가 바로 ‘불교대전’인데, 이곳에서 ‘불교대전’ 집필을 위한 자료를 모으게 되기 때문이다. 불교 교리를 일반대중을 위해 소개할 수 있는 쉬운 개론서가 있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만해 한용운은 1912년 여름 양산 통도사에서 ‘고려대장경’을 한 권 한  권 열람하기 시작했다. 만해는 장경각에 있는 고려대장경 1511부, 6802권을 빠짐없이 열람했으며, 이를 현대적 언어로 변용해 요약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초록본만 444부에 이른다고 한다.

앞서 발간한 ‘조선불교유신론’이 승려를 상대로 한 이념적인 저작이라면, ‘불교대전’은 불교 교리를 현대화해 대중에게 제시한 실천적인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대전’은 1914년 4월 국반판 800페이지로 부산 범어사에서 간행됐다. △서품 △교리강령품 △불타품 △신앙품 △업연품 △자치품 △대치품 △포교품 △구경품 등 9개품으로 구성된 ‘불교대전’은 만해의 독창적인 대전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경전은 화엄경으로 약 400여 구(句)가 되고 다음이 열반경으로 200여 구(句)가 된다. 그리고 반야경, 법구경, 대승기신론, 중론, 사분율 등 대소승경전과 율장, 논서 등 총 444종의 경전과 율장, 논서가 등장한다.

당시 시대적 언어로 교리서를 발간한 만해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불교 잡지 ‘해동불교 제6호(1914년 4월)’에는 “만해 스님의 ‘불교대전’은 광세의 대 저작이며 불교 포교의 교과서”라고 평가하기도 했으며, 또 다른 잡지에서는 일독(一讀)을 권하는 광고문이 실리기도 할 정도였다고 하니 가히 그 반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기 만해 한용운은 대중들의 의식 개혁을 위한 교양서적 발간에도 힘썼는데 ‘정선강의 채근담’을 발간하기도 했다. 전북 순창 구암사에 머물 때 강의한 것을 묶은 것으로 1915년에 탈고해 1917년 동양서원에서 간행됐다. 이를 발간한 이유도 명확했다. 불교도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수양을 위해서 발간한 분명한 목적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 만해는 “분수에 맞지 않는 권력을 위해 남의 턱짓하는 밑에서 한 허리를 만 번이나 구부리면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자나, 불의한 복리를 위해 비굴하게 살면서도 태연한 자들을 일깨우겠다는 일념으로 ‘조선 정신계 수양의 거울’로써 이 책을 편찬했다”고 발간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30대의 만해 한용운은 전국의 산사를 돌며 불교 대중화와 민족운동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방대한 원력으로 ‘조선불교유신론’과 ‘불교대전’은 물론 ‘채근담’까지 써내기도 했던 것이다. 또한 임제종 운동을 주도해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도 만해 한용운이었다. 따라서 남도의 사찰은 만해가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됐던 것이다.

만해 한용운이 불교대전 편찬을 위해 고려대장경 1511부 6802권을 빠짐없이 열람했던 양산의 영축산 성보박물관 전경.


■ 고려대장경 1511부 6802권 열람해
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이 승가의 개혁론이었다면, ‘불교대전’은 재가신도를 위한 불교교리와 불교사상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불교대전’의 편찬을 계획한 만해 한용운은 1912년부터 경남 양산 통도사에 비치된 방대한 양의 ‘고려대장경’ 1511부 6802권을 낱낱이 열람하기 시작해 2년 후인 1914년 범어사에서 ‘불교대전’을 간행했던 것이다.

이 같이 ‘불교대전’은 만해 한용운의 신념인 ‘대중불교’의 실현을 위한 초석을 놓은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즉 ‘불교대전’은 고려대장경과 범어, 팔리어 경전 등 400여 개가 넘는 경전에서 총 1741(1742)개에 달하는 인용구를 가려 뽑아 만든 것으로 한국불교의 기념비적인 일로서 불교의 골수를 일반 대중에게 전하고자 한 만해 한용운의 대승적 보살정신에서 연유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만해는 탈세속적 구도의 초역사적 일탈을 부인하고, 끝임 없이 변화하는 역사의 현장  가운데에서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해 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가슴 속 깊이에 품었던 의인·걸사를 추구하던 지사적 정신은 대승 보살의 원력으로 승화되고, 일체중생개유불성(一切衆生皆有佛性)의 불성론(佛性論)은 자유·평등의 근대적 사상 체계의 안에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불교대전’은 이러한 일련의 만해 사상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만해는 경전에서 간추린 인용구들을 총 9개의 품(品)과 32개의 장(章), 189개의 절(節), 항(項)으로 분류해 수록했다. 품과 품에 속한 장, 절, 항 등에 적합한 내용의 불교경전 구절들을 대입시키고, 그 핵심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주제어를 각각 달아 일목요연하게 구성했다. 총 9개의 품은 ‘서품(序品)’, ‘교리강령품(敎理綱領品)’, ‘불타품(佛陀品)’, ‘신앙품(信仰品)’, ‘업연품(業緣品)’, ‘자치품(自治品)’, ‘대치품(對治品)’, ‘포교품(布敎品)’, ‘구경품(究竟品)’이다. 만해는 ‘경전의 민중화’와 ‘문자로의 선포’라고 표현할 정도로 역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불교대전’은 바로 만해의 대중교화, 포교, 역경에 대한 사상과 실천 의식 속에서 탄생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제6 자치품’과 ‘제7 대치품’은 ‘불교대전’에 담겨있는 만해 사상의 핵심과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품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두 품에 인용된 경전 수가 전체 인용경전의 약 60%에 이르는 만큼, 만해가 제6 품과 제7 품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불교대전’을 편성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렇듯 ‘불교대전’은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밝힌 구세주의적 불교개혁 의지의 구체적인 산물로써, 성전(聖典)의 대중화를 통한 만해의 대중 불교운동의 첫 행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불교대전’ 편찬 작업은 그 자체로써 한용운에게는 종교의 수행이자, 보살행의 실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즉 ‘조선불교유신’의 평등주의와 구제사상의 구체적인 실현물이 바로 ‘불교대전’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불교대전’ 편찬을 위해 양산 통도사에서 2년 동안 방대한 ‘고려대장경’ 1511부 6802권을 낱낱이 열람한 만해 한용운의 의지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시대정신이며, 만해 한용운 사상의 핵심 사상이 아닐 수 없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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