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돌담길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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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돌담길은 따뜻하다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한지윤·이정아 기자
  • 승인 2019.09.0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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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돌담길의 재발견<13>
낙안읍성 돌담길은 초가집 안을 들여다 보이도록 비교적 낮게 쌓은 강돌담이나 토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초가지붕으로 다닥다닥 붙은 돌담길과 어우러진 풍경 서정적
원형이 보존된 성곽, 민초의 초가, 고즈넉한 돌담 잘 보존돼
사람 키보다 낮게 쌓은 강 돌담과 토석담 초가집과 어우러져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 노력했던 조상들의 슬기가 묻어나는 곳


고향처럼 푸근한 풍경이 전남 순천의 낙안면에 있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이 그곳이다. 성곽 길과 고즈넉한 돌담길을 걸으며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앉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잊고 지낸 어린 날의 추억도 되살아나는 곳이다. 농촌에서도 초가집 보기 힘들어진 요즘,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이 초가집들과 어우러지는 돌담길은 참 흥미로운 볼거리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읍성이다. 전남지역, 특히 낙안은 평야가 많아 이를 노리는 왜구들의 침입이 잦았다고 한다. 성 안에는 객사와 동헌 등 관청건물과 함께 300여 채의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성 안에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옛 성안에 사람들이 사는 곳은 이곳 낙안읍성과 전남 진도의 남도석성 정도니 말이다. 이러니 성 안에는 사람의 온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따뜻한 이유다. 단지 전시만을 위해 빈 초가집만 몇 채 덩그러니 들어앉은 것과는 분위기가 완전 딴판이다. 그래서 성곽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 제302호로 지정됐다.

전국 각지에 있는 읍성 가운데 사적으로 지정된 곳은 11개, 이 가운데 낙안읍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릴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성안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마을의 모습을 기웃거려 본다. 마을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고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한 착각도 들어 즐겁기까지 하다. 동헌(관아) 마당을 거닐며 태양 볕을 즐기고 객사에 앉아 게으름도 부린다. 객사 뒤편 하늘로 치솟은 팽나무도 잊지 말고 구경할 일이다. 시간이 지나 갈수록 그 옛날의 흥성거림이 오롯이 살아나 가슴이 절로 벅차오른다.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함께 호남의 명루로 꼽혔던 낙민루도 볼거리다. 박의준 가옥, 이한옥 가옥, 임대자 가옥 등도 기억해 둘만 하다. 천천히 살피면 같은 듯 각각 다른 구조와 형태가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 옛 풍경들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은근하게 끌리는 초가집의 매력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낙안읍성에서는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상설로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판소리 배우기, 가야금 연주, 붓글씨 쓰기, 천연 염색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주말에는 풍물 공연과 순라(순찰 군졸) 교대 등의 행사가 열리니 이 또한 챙겨서 즐겨 볼거리다. 성곽을 밟으며 걸어도 좋다. 성곽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또 다른 감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성곽길이는 1.7km 정도다. 쉬엄쉬엄 걸어도 한두 시간이면 성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초가지붕으로 다닥다닥 붙은 풍경이 어찌나 서정적인지, 돌담길과 어우러진 풍경이 가슴 울컥하는 광경이다. 저녁밥을 지을 무렵이면 감정은 더 고조된다. 초가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문학적 감수성을 마구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마을을 배경으로 숱한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됐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내심 성곽 길을 걸으며 눈으로 살펴보는 초가집과 돌담길이 왠지 잊지 못할 추억의 풍경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낙안읍성 돌담길은 초가집 안을 들여다 보이도록 비교적 낮게 쌓은 강돌담이나 토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 사람의 키보다 낮은 강 돌담과 토석담
낙안읍성 마을의 성벽에 올라서면 돌담 밖으로 넓게 펼쳐진 들녘에는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상들의 삶의 모습이 오롯이 이어져 오고 있다. 300여 동의 초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읍성에는 100여 세대 200여 명의 주민이 지금까지 직접 거주하며 살고 있는 민속촌이다. 원형이 잘 보존된 성곽, 시간이 멈춘 듯 관아 건물과 소담스러운 초가, 고즈넉한 돌담길에 이르기까지 잘 보존돼 있는 낙안읍성은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사람의 키보다 낮게 쌓은 강 돌담과 토석담은 단연 초가집과 어우러진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분명 삶의 숨결이 오롯이 배어있는 시간이 정지된 옛 민속마을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샅길에 들어서면 처마를 맞댄 초가집이 두런두런 정담을 나누고 돌담길 안의 장독대를 수놓은 모습이 빛바랜 앨범 속 추억처럼 정겹다. 그래서 전남 순천 낙안면의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시간이 정지된 마을임에 분명하다. 동문과 서문을 연결하는 대로의 북쪽엔 동헌과 고을 수령의 숙소인 내아와 외부 손님을 맞던 객사 등이 위치하고, 대로 남쪽엔 초가집과 돌담길이 어우러지며 대장간, 장터, 서당, 우물, 연자방앗간, 텃밭 등이 민초들의 삶의 터전이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미로처럼 이어진다. 길이 1410여m의 견고한 석성에 둘러싸인 낙안읍성은 원래 토성으로 태조 6년인 1369년에 이곳 출신 김빈길 장군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으나, 낙안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1626년에 석성으로 개축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100여 세대 200여 명이 살고 있는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초가집들은 모두 비슷한 구조다. 집안이 들여다보이도록 비교적 낮게 쌓은 돌담이나 흙담에 둘러싸인 집들은 가구당 두세 채의 초가와 마당, 텃밭으로 이뤄져 있다. 마당과 연결된 텃밭에는 고추, 상추, 토란, 연꽃 등이 자라고 있으며, 우물 옆에는 미나리꽝까지 갖춰져 있다. 왜구가 출몰하던 시절에 성안에서 웬만한 먹을거리를 자급자족하던 전통이 연면히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낙안읍성의 명물은 초가집과 그 집을 에두른 나지막한 강돌담과 토석담으로 쌓인 돌담길이다. 이끼 낀 자연석으로 쌓은 돌담엔 짙은 초록빛 담쟁이덩굴과 자주색 나팔꽃, 그리고 호박덩굴이 휘감고 있어 더욱 정겨운 모습이다. 조선시대로의 여행이 신기한 듯 돌담 안을 기웃거리다보면 연자방앗간과 짚풀공예방, 삼베 짜는 집, 서당, 도예방 등이 차례로 스쳐 지난다.

TV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장소로 극중 주인공인 장금이가 역병이 도는 마을에 들어와 병을 고쳐주고 역병의 원인을 알아내는 장면이 촬영됐던 세트장도 낙안읍성의 명소로 꼽힌다. 마을 고샅길을 한 바퀴 돌아 가장 높은 남서쪽 성벽에 오르면 낙안읍성 안팎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읍성 안에 위치한 향토음식점에서는 보리밥, 추어탕, 표고무침, 더덕주 등 이 고장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만든 전통음식을 판매한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낙안읍성을 방문했을 때 백성들이 대접했다는 팔진미(八珍味)는 낙안의 대표적 별미다.

낙안읍성 돌담길은 초가집 안을 들여다 보이도록 비교적 낮게 쌓은 강돌담이나 토석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 초가집과 돌담길 어우러진 옛 마을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진면목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동쪽 주차장에서 내려 낙안읍성의 동남쪽을 돌아 남문으로 들어가며 초가집과 돌담길을 감상해도 좋을 것이다. 남문 밖 100여m 쯤에는 고즈넉하고 조용한 시골길에 서면 저 멀리 금전산의 우뚝 솟은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다. 약간은 구불구불한 시멘트 길을 따라 남문으로 다가서는 이 통로가 낙안읍성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색다른 추억의 길이 될 수 있도록 꾸며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고 이 길에 관광상품점이 늘어서지는 않기를 바란다. 관광상품점은 남문에서 시작돼 낙안읍성의 여행이 끝나는 지점인 동문밖에 현재처럼 있어도 충분할 것이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봄에는 보리밭의 출렁임이, 여름엔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수많은 꽃의 화려함이, 가을엔 푸른 하늘과 코스모스의 단아한 어울림이, 겨울엔 수줍은 듯 살짝 몸을 감춘 보리 싹의 싱그러움이 여행자들의 낙안읍성 방문 길을 더욱 즐겁게 만들 수 있도록 꾸며지기를 꿈꿔보는 이유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건물은 동헌이 아니라 객사다. 객사는 전패 또는 궐패라는 작은 나무토막을 모셔놓은 마루 구조의 주사(主舍)와 온돌방인 동쪽의 동익(東翼) 또는 동헌(東軒) 그리고 서쪽의 서익(西翼) 또는 서헌(西軒) 등 3개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객사의 주사에서는 사또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절을 한다는 뜻의 망궐향배(望闕向拜)란 의식을 행하던 건물이라고 한다.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승평지를 쓴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수광은 ‘순천은 땅이 따뜻하다. 음력 정월이면 매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고 했다. 이렇듯 자연을 정복하기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 노력했던 조상들의 슬기가 묻어나는 곳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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