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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에게 덕을 끼친다’는 부여 홍산 만덕교 돌다리옛 돌다리에서 역사문화적 가치를 찾다<7>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사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9.0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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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홍산의 만덕교 돌다리는 1681년(숙종)경에 놓인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홍상배수장 안에 위치하고 있다.

만덕교돌다리, 부여나 내산에서 홍산현 관아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해
향토유적 제54호, 부여 홍산 북촌리 428 홍산배수장에 자리하고 있어
첨지 서덕해가 돌다리를 만들었다고 하나 정확한 시기 알려지지 않아
만덕교비 입비시기 숙종 7년(1681)으로 그 무렵 다리 놓였을 것 추정


충남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의 홍산객사 동쪽 200여m 지점인 홍산배수장에는 만덕교(萬德橋)라는 돌다리가 있다. 부여나 내산에서 홍산현 관아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만덕교 돌다리가 있는 홍산 북촌리(北村里)는 홍산의 동·북쪽에 위치하며 고려말기에 침입해 온 왜구를 무찌르기 위해 최영 장군의 말굽소리가 요란했던 곳, 조선 선조 때 반란을 일으킨 이몽학의 말굽소리가 성급하게 뛰어다녔던 역사적인 태봉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백제 때는 대산현의 고을이었으며 통일신라, 고려 때에는 백제 멸망의 상처에서 다시 일으키는 씨족이 번영을 꿈꾸었던 지역으로 한 고을의 숙명적인 은둔 지대였다. 고려 초기에 홍산순씨가 처음 새로운 성씨로 정착하면서 마을을 형성해 나갔다. 이어 창원황씨가 정착하며 풀밭을 개간해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 북촌리 마을이 들어선 처음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홍산현 현내면의 지역으로 홍산 행정의 중심지가 되기 시작했다. 고려 현종 9년(1018)부터 현의 소재지 였다. 조선시대 말기(朝鮮時代末期)는 홍산군 군내면(鴻山郡 郡內面)의 지역으로 홍산군청(鴻山郡廳) 북쪽이 되므로 북촌(北村)이라 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좌촌(坐村), 여단리의 각 일부를 병합해 북촌리(北村里)라 칭했다. 북촌리에는 현재 홍산면사무소를 비롯해 홍산파출소, 홍산초등학교, 홍산중학교, 홍산농·공업고등학교, 보건지소 등의 기관이 위치하고 있다. 문화재 유적으로는 만덕교비, 만덕교 돌다리, 삽다리비, 객사, 태봉산 최영 장군 대첩비 등이 있다. 옛 고을의 현청이 소재하고 있던 곳으로 문화와 역사가 함께 숨 쉬고 있는 지역이다. 북촌리의 면적은 1.60㎢, 가구 수는 280여 가구에 인구는 800여 명이다. 뜸별로는 홍산 관청이 있었던 뒤에 마을이 있으므로 아후(衙後), 관리들을 맞아들이는 연봉정(蓮峰亭)이 있고, 풍수설에 관주혈(貫珠穴)이라는 산과 연화부수혈(蓮花浮水穴)이라는 연못이 있어 이 부근이 명당자리라 해 연봉이라 부르게 된 마을이다.

만덕교 다리 상판 모습.

■ 만인에게 덕을 끼친다는 만덕교돌다리
다리(교량)는 사람과 물자를 이어주고 소통하는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향토유적 제54호인 부여 홍산의 만덕교 돌다리는 부여 홍산면 북촌리 428번지 홍산배수장 안에 자리하고 있다. 홍산 객사에서 동쪽으로 약 200m 지점인 농경지 수로였던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논 어귀에 해당되는 곳이지만 농경지 정리가 이뤄지기 전에는 하천이었던 곳이다. 부여나 내산방면에서 홍산 관아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한 이 다리가 ‘만덕교 돌다리’였음은 지금 홍산 객사 내에 옮겨져 있는 ‘만덕교지비(萬德橋之碑)’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처음 첨지 서덕해(徐德海)가 돌다리를 만들었다고 하나 정확한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홍산 객사로 들어가면 오른쪽 구석에 몇 개의 비석들이 보인다. 그 중에서 하나가 만덕교비(萬德橋碑)로 1973년에 충청남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돼 있다. 이는 홍산천에 놓았던 만덕교를 기념하기 위해 숙종 7년인 1681년에 세운 비석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입비시기가 숙종 7년인 1681년으로 돼 있으므로 아마도 그 무렵에 처음으로 만덕교 돌다리가 놓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869년에 다시 개수했던 사실이 개건비에 기록돼 전해지고 있다. 지금의 다리는 1994년 흩어진 석재를 모으고 없어진 부분을 새로 만들어 원래의 자리에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평교(平橋)의 형태로 화강암으로 된 4개의 교각(다리기둥)을 세웠으며, 상판도 모두 판석으로 올렸다. 돌다리의 길이는 약 10m, 폭은 약 2m 정도다.

만덕교라는 이름은 ‘만인에게 덕을 끼친다’라는 데에서 유래했으며, 1946년 큰 홍수로 부서졌는데, 일부의 석재가 남아 있었다. 홍수 이후로는 마을 빨래터로 쓰였으나 지난 1994년 돌다리를 복원하면서 석재를 모두 정리했다.

■ 홍산 객사에 있는 만덕교지비
‘만덕교지비(萬德橋之碑)’는 홍산천(鴻山川)에 놓였던 돌다리(만덕교) 돌다리의 기념비(記念碑)이다. 1946년의 홍수로 홍산초등학교 앞에 이건했으나, 다시 홍산 객사 앞마당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만덕교비는 이수와 비신, 즉 비 머리와 비 몸체가 하나의 돌(화강석;花崗石)로 돼 있고 용과 구름의 모양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뒷면에는 다리 건설에 물자를 댄 인물과 석공, 야장의 명단이 기록돼 있다. 비신엔 가로로 만덕교지비(萬德橋之碑)라고 쓰인 제액(題額)이 있어 만덕교비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 아래 세로로 비의 건립에 대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비문에 의하면 객사(客舍) 동쪽에 시내가 있으나 다리가 없어 첨지(僉知) 서덕해(徐德海)가 오래 걸려서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를 놓았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언제인지는 알 수가 없다. 1946년 큰 홍수에 다리가 부서지고 새로 다리를 놓았는데 이전에는 이 다리가 홍산 읍내로 들어가는 큰 관문(關門)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 비는 원래 다리 옆에 있던 것을 다리가 없어진 뒤, 홍산초등학교에 옮겼다가 다시 현 위치인 홍산 객사 내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비의 높이는 135cm, 폭은 56cm로, 비문은 진사(進士) 이복형(李復亨)이 짓고 우정구(禹鼎九)가 썼다. 만덕교비는 홍산 지역의 교통로와 하천의 흐름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꼽히고 있다.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됐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마을에 놓는 다리는 자연의 일부로 동화시켜 구성했다. 동경의 대상이 일곱 빛깔 무지개를 따라 저 머나먼 하늘나라를 동경해 왔기 때문에 곳곳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교를 남겼던 것이다. 멀리서 보면 무지개가 박혀있는 모습을 보고 착안하지 않았을까 추정되는 대목이다.

옛 다리를 거닐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옛 다리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 반영된 외나무다리와 옛 돌다리에서 그 가치를 발견하고 현대적인 계승 방법 등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기대이다.

<이 기획기사는 충청남도지역언론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사료=김경미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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