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자연이 살아있는 제주성읍민속마을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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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자연이 살아있는 제주성읍민속마을 돌담길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한지윤·이정아 기자
  • 승인 2019.09.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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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돌담길의 재발견<15>
제주도에는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검은 현무암돌로 담장은 돌로만 쌓고 초가집의 벽은 토석담으로 쌓은 특징이 있다.

돌담문화는 돌담 집, 파도 방벽, 집 울타리 등 삶 보호하기 위해 시작돼
제주도는 화산활동으로 검은 현무암 지천으로 널려있어 제주 땅은 ‘돌밭’
성읍민속마을 돌담길, 제주의 전통과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어 매력 발산
제주의 돌담은 흑룡만리(黑龍萬里)라 불려, 돌담 연결하면 9700리나 돼


제주하면 누구나 바람·여자·돌을 연상하게 된다. 그래서 삼다도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이는 제주도가 위치한 지리적 요인과 화산섬이란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제주의 삼다 중 하나인 돌을 제주도 원주민들은 어떻게 활용하며 거친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 왔을까. 그 대표적 산물이 돌담이다. 제주를 여행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돌담이다. 이 돌담에는 제주도만이 갖는 삶의 역정과 문화가 담겨 있다. 밭담, 올렛담(울담), 축담, 산담, 환해장성 등등이 있다. 밭담은 밭과 밭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함도 있지만 거센 바람과 우마(牛馬)들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것이다. 구멍이 뻥뻥 뚫려 있고 엉성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 밭담이 강한 태풍에도 잘 무너지지 않는다. 현무암이란 특성도 있지만 그 만큼 제주 사람들이 돌을 쌓는 기술이 탁월했던 것일까? 제주의 시골마을을 가보면 마을을 가로지르는 큰 길이 있고, 그 큰 길에서 돌담길을 따라 작은 골목길들이 올망졸망 나 있다. 그 작은 골목의 돌담길을 제주에서는 올레라고 한다. 올레 안쪽에는 대다수 일가친척이 모여 산다. 올레(골목길)의 길이가 얼마냐에 따라 가문의 세력(勢力)를 상징하기도 했다고 한다. 올렛담을 쌓고 올렛길을 따라서 좌우로 늘어선 집들을 감싸고 있는 축담의 규모를 보면 그 집안의 밭(대다수 보리나 조를 경작하는 밭)과 우마수를 집작할 수가 있어 그 올레에 모여 사는 씨족들이 세력을 가늠하게 되는 것이다. 올렛담과 축담은 밭담과는 달리 정교하며 웅장하기도 하다.

■ 제주도의 돌담은 ‘바람그물’이다
돌담은 바람의 산물이다. 지금도 제주 해안마을에는 돌담의 옛 형태들이 많이 남아있다. 또한 과거에는 초가지붕이었지만 지붕만 슬레이트에 청색이나 황색, 초록색 등의 페인트로 개조된, 초가집담의 모습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돌담문화는 돌담 집, 파도 방벽, 집 울타리 등과 같이 처음에는 삶을 보호하기 위해 민중 스스로가 이뤄낸 주거용에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차차 마소를 키우거나, 경작 등의 생산을 위해 확대돼 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제주의 돌담 쌓기 방식은 현재, 엄연하게 제주적인 형식으로 남아있다. 또 그 형식이야말로 자발적인 민중문화라는 점에서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에도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돌담은 제주에만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있기 마련이다. 쌓기 방식도 다양한 것 같지만 실은 조밀도(稠密度)의 문제일 뿐이다. 돌담은 문화권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즉 해당 지역의 돌의 종류와 빛깔, 용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항상 풍토적인 느낌을 발산한다. 돌담은 지역적인 풍토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경관 미학적으로 각각 상이하다.

제주도에는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검은 현무암이 지천으로 널려있어 제주 땅은 ‘돌밭’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밭에는 물론 마을과 묘지, 목장 심지어 바다까지 돌밭이다. 따라서 제주에서는 돌로 만든 다양한 생활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돌담은 경계를 구분하고 말과 소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하고 바람을 막는데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돌담은 집을 짓고 촌락을 형성하고 밭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필요에 의해 생겨났을 것이다.

한반도 본토의 돌담이 토석(土石)담으로 일정한 크기의 돌 또는 기와와 흙, 짚 등을 사용하며 쌓는 것과 달리 제주의 돌담은 오로지 돌로만 쌓는다. 제주에서와 같이 전 지역에 걸쳐 이루어진 돌담은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고 돌담을 쌓은 장소 혹은 기능, 형태에 따라 올렛담과 울담, 측담, 밭담, 산담, 원담, 잣담, 성담 등 다양하게 발달돼 왔다.

또 제주의 돌담은 최근에 인공석을 이용하거나 자연석을 깎아 쌓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연석 그대로를 이용해 만들었다. 특히 제주도 돌담을 ‘바람그물’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치밀하게 쌓되 자세히 보면 돌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돌담의 원재료인 현무암 자체로도 구멍이 많지만 길게 한 줄로 이어 쌓은 돌담은 구멍이 뚫려 있다. 틈새를 주지 않고 쌓으면 거친 바람에 언젠가 돌담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의 돌담은 조금씩 바람이 빠져 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줌으로써 거센 바람이 구멍으로 빠져나가면서 돌담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성읍민속마을 돌담은 초가와 어우러져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돌로만 쌓은 특징이 있다.


■ 성읍민속마을 돌담길과 초가의 삶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마을 돌담길은 제주의 전통과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다. 성읍민속마을의 길을 걷다보면 도시의 시멘트와 인공미에 허덕이는 메마른 감정은 다시 촉촉했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게 하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성읍민속마을 돌담길의 매력은 검은색으로 빛나는 묵은 돌담들이다. 제주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그대로 살펴볼 수 있는 성읍민속마을은 지난 1984년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됐다. 제주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그대로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마을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600여년의 팽나무들이 곳곳에 서 있어 마을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제주 돌담의 본질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검은 현무암이었다. 제주는 말처럼 돌이 많은 고장임에 틀림없다. 좀 더 눈 뜨고 바라보면 제주인의 삶은 돌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곳 성읍민속마을에서는 전통과 자연이 어우러진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마을이다. 밭들의 경계를 갈라놓은 검은 바위 담, 오름 등성이의 무덤들의 경계를 정방형으로 쌓아 만든 담, 뭍의 장승이나 솟대처럼 종교적 색채를 띤 방사탑(防邪塔), 봉수대의 역할을 한 연대(煙臺), 그리고 동네의 집집마다 골목을 이루는 돌담, 제주의 상징이 돼버린 하루방, 이 모든 것들이 검은 작은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제주도의 돌로 이뤄진 생활공간을 엿보는 즐거움은 곧 그들 제주인의 삶 속으로 잠시나마 다가가 보는 것이 될 터이다. 제주의 돌담은 흑룡만리(黑龍萬里)라 불리어진다. 검은 용의 길이가 만리(萬里)나 된다는 다소 과장된 것처럼 느껴지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주의 돌담들을 연결하면 9700리나 된다고 하니 과히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제주도의 원형질이 온전하게 보존된 대표적인 마을이 이곳 표선읍 성읍리에 위치한 성읍민속마을이다. 성읍마을은 조선조 태종 10년(1410년)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됐던 정의현청이 조선조 세종 5년(1423년) 이곳으로 옮겨진 이래 500여 년간 헌정 소재지였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한적한 도로변에 위치한 이곳은 돌담길과 어우러진 제주도의 전통적인 초가집이 한곳에 모여 마을을 이룬다. 지정구역 전체 가구 수는 247가구로 성내에서 실제 거주하는 수는 40~50가구라고 한다. 실제 초가집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마치 사극 속 주인공들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민속 마을을 지키고 있는 600여년 된 느티나무와 팽나무, 조선 시대 지방의 교육기관인 정의향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 혹은 궐자를 양각한 위패를 모시는 곳인 객사 등이 있다. 성읍민속마을에서는 오메기떡, 전통음식 만들기 체험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실제 초가집에서 거주할 수 있는 곳도 갖춰져 있다.

제주성읍민속마을에는 제주도무형문화재 제19호인 강임용 초가장(지붕 잇기 장인·71)이 있다. 1990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23년 동안 초가장들과 표선민속박물관 초가를 지었다. 민속박물관 130여동의 초가지붕은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육지와는 다른 독특한 형태로 짓는 제주 초가를 전승·보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결과 2008년 4월 18일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초가장’이 지정됐다. 전통 초가를 짓기 위해서는 목공, 석공, 토공, 지붕 잇기 장인 4명이 한 팀을 이뤄야 한다. 무형문화재 제19호 초가장은 다른 무형문화재와 달리 한 단체로 구성됐다. 석공 분야에 강창석, 토공 분야에 김권엽, 초가지붕 잇기 분야에 강임용이 지정돼 맥을 잇고 있다. 목공 분야는 현남인이 맡았지만 몇 해 전 유명을 달리하면서 현재는 공석이다. “제주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성읍민속마을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전수자 등록과 지원 방안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성읍민속마을 돌담은 초가와 어우러져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돌로만 쌓은 특징이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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