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섬진강에 감싸 안긴 풍요의 땅, 하동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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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과 섬진강에 감싸 안긴 풍요의 땅, 하동 돌담길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한지윤·이정아 기자
  • 승인 2019.10.1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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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돌담길의 재발견<17>
경남 하동 악양의 돌담길은 박경리 소설 토지의 주무대이자 국제슬로시티의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지리산과 섬진강에 감싸 안긴 83만여 평의 비옥한 땅 하동의 악양 들판
1960년대 말 소설가 박경리, 우연히 지나다가 드넓은 평사리 들판 발견
악양면의 3.1㎞에 이르는 옛 돌담길, 슬로시티의 새로운 명물로 떠올라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돌담에는 1만여 그루의 담쟁이 넝쿨 뒤덮여


‘거지가 1년 내내 집들을 돌며 동냥을 해도 들르지 못하는 집이 세 집이나 된다’는 풍요와 인심의 땅. 지리산과 섬진강에 감싸 안긴 83만여 평의 비옥한 땅 하동의 악양 들판에 소설가 박경리는 만석지기 사대부집을 지었다. 토지 길은 대지주 최씨 가문과 민초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던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를 휘감아 돈다. 평사리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섬진강변과 화개까지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을 멀리서 또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하동읍과 화개장터 가운데쯤 위치한 개치나루터는 화개장터로 가는 장배가 드나들던 곳이라고 한다. 소설 토지 속 인물들이 평사리를 떠나거나 돌아오는 길목이 됐던 곳이다. 용이가 사무치게 그리웠던 월선이 막배를 타고 섬진강을 넘었던 곳이기도 하다. 공원에 들어서니 푸른 대숲과 은빛 모래밭 사이로 평화로운 섬진강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 평사리 들판, 토지의 배경이 된 사연
전북 진안에서 구례까지 굽이굽이 협곡을 이루는 섬진강은 악양에 들어서며 비로소 유유히 섬진강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하동 사람들은 묵묵히 흐르는 섬진강을 ‘아버지 강’이라 했다고 한다. 모든 생명을 품고 있는 어머니인 지리산과 아버지인 섬진강이 만나 낳은 것이 악양의 무딤이들이니 축복받은 땅이 아닐까. 악양 들판의 또 다른 이름인 ‘무딤이들’은 밀물 때 섬진강 물이 넘쳐 무시로 물이 드나들었다 해서 붙여진 우리말 이름이다. 만석지기 서넛은 거뜬히 내었다는 악양 들판은 언제 보아도 풍요롭다. 1960년대 말 소설가 박경리는 딸과 함께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드넓은 평사리 들판을 발견했다고 한다. 경상도 방언에 익숙한 박경리는 마침 경상도에서 작품의 무대를 찾던 중이었고 넓은 들과 섬진강, 지리산의 역사와 무게를 한데 안은 평사리가 그래서 ‘토지’의 배경이 된 사연이다.

정작 박경리는 멀리서 들판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 실제로 들을 밟아본 적이 없다고 하니 소설 속 생생하게 그려진 악양의 정취가 더욱 신비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드넓게 펼쳐진 들판에 바둑판무늬를 새겨놓은 농로를 따라 걷다 보면 들판 한가운데 나란히 서 있는 소나무 한 쌍과 마주한다. 하동 악양의 상징인 부부송이다. 서희와 길상이, 혹은 월선이와 용이 소나무라고도 불리는 부부송은 사실 누가 어떤 연유로 심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다정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본 누구라도 사랑하는 두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최참판댁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옹기종기 초가집들이 모여 있는데, 하동군이 소설 속 평사리 마을을 그대로 옮겨와 지은 것이라고 한다. 작은 흙길 따라 지척으로 마주하고 있는 초가집에는 용이, 월선, 임이네, 두만네 등 문패가 걸려 있다. 외양간에는 소 한 마리가 한가로운 소 울음을 울고, 주말이면 문인협회에서 운영하는 북카페도 연다. 드라마 촬영지로 지어졌지만 여전히 일상이 숨 쉬고 있는 곳이다. 초가들을 스쳐 최참판댁 솟을대문 앞에 서면 만석지기 최씨 집안의 위엄이 드러난다. 3000여 평 대지에 지어진 14동의 한옥은 조선 반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살려 지은 것이다. 윤씨 부인과 서희가 기거했던 안채, 길상이를 비롯한 하인들이 머물렀던 행랑채, 김환과 야반도주한 별당 아씨가 머물던 별당, 최치수의 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한 사랑채 등이 잘 정돈돼 있다. 작은 연못 위로 수양버들이 춤을 추는 별당은 최참판댁에서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최참판댁에 들렀다면 반드시 누마루에 올라볼 일이다. 들 한복판에 선 부부송과 함께 탁 트인 시야 가득 드넓은 악양 들판이 펼쳐지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굽어 흐르는 섬진강 물줄기까지, 저절로 탄성이 나오는 절경이다.

최참판댁에서 내려와 마을의 돌담길을 걸으면 조부잣집이라 불리는 조씨고가가 나온다. 조선 개국공신 조준의 후손인 조재희가 1876년 개항으로 신문물이 쏟아져 들어올 때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부를 얻어 17년 동안이나 지은 집이란다. 한때 거느리는 식솔과 줄을 잇는 손님들로 밥 짓는 연기가 끊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조부잣집에서 흘러나온 쌀뜨물로 섬진강이 뿌옇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하니 그 위세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동학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별당과 행랑 등이 불타고 지금은 안채만 남아 있지만 돌담으로 이어지는 고풍스러움은 여전하다.
 

조씨고가의 돌담길.

■ 돌담길, 슬로시티의 새로운 명물
박경리 소설 ‘토지’의 주무대이자 국제슬로시티인 하동군 악양면에는 3.1㎞에 이르는 옛 돌담길이 슬로시티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돌담길은 악양면 초입의 개치마을 등 8개 자연마을에 높이 0.6~1.5m 총연장 3115m에 이른다는 것. 돌담길은 개치마을을 비롯해 최참판댁 인근의 상평마을, 조씨고가가 있는 정동·상신마을, 전통간장마을이 있는 평촌마을, 십일천송의 노전마을, 면소재지인 정서·부계마을 등 기존의 관광명소인 슬로시티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돌담길이다. 돌담길의 돌담에는 1만여 그루의 담쟁이 넝쿨이 뒤덮여 있다고 한다. 또 돌담이 연결되는 담벼락에는 다양한 벽화(290.8㎡)를 그려 넣고, 돌담길 주변도 깔끔하게 정비해 여유를 즐기며 걸을 수 있도록 했다.

소설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됐던 경남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과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이 된 곳으로 알려진 조씨고가. 최참판댁은 평사리 조용한 마을에 위치한 곳으로 한옥과 조선 후기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마을을 두루 돌아보며 실제 초가집이 펼쳐진 평사리 마을의 조용하고 평온한 모습은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곳이다. 멀리 악양 들판의 노부부송과 푸른 들녘이 시원스레 펼쳐지는 풍경이나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이 됐던 조씨고가가 있는 상신돌담마을의 풍경이 정겨운 까닭이다.

조씨고가는 조선 개국공신 중 한 사람인 조준의 직계손이 이곳으로 낙향해 집을 짓고 살던 곳이라고 한다. ‘조부자집’이라 불리던 이곳은 옛날의 부와 명성은 사라졌지만 아담하고 정갈한 한옥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이곳 상신마을은 돌담길이 아름다운 아기자기한 시골 마을이다. 예부터 악양은 돌이 많아서 집 안팎의 담뿐 아니라 다랭이 논도 돌을 쌓아 만든 곳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을 걷다 보면 마치 미로 속을 걷는 것 같아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난 것 같기고 하고 또 시골 마을의 수더분한 정겨움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하동 최참판댁과 조씨고가가 있는 상신돌담마을을 돌아보는 일이 어쩌면 여행의 백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인지 소중한 평사리의 자산은 역시 오래된 돌담길이다. 마을마다 대봉감나무와 더불어 마삭줄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돌담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멋진 문화유적이 아닐 수 없다. 골목길을 따라 200m 정도의 왼쪽 돌담길에 정원이 잘 꾸며진 ‘지리산학교’가 있다. 이곳 돌담길을 둘러보면 마치 옛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이다. 돌담 위의 마삭줄과 호박덩굴이 서로의 몸을 감싸고, 탱자나무와 감나무 등이 돌담길의 나그네를 굽어보고 있는 풍경이다.

구불구불 돌담길을 둘러보다 하평마을이나 대촌마을을 빠져나오면 평사리 무딤이 들녘이 반긴다. 토지문학제(10월 10일)를 전후해서 황금 들녘을 배경으로 온갖 허수아비들이 들어선다고 하는데, 이 무딤이 들의 포인트인 ‘부부소나무’와 더불어 장관을 이룬다. 부부소나무를 휘돌아 들판을 빠져나가면 젖줄인 악양천을 만난다. 봄이면 은어 떼가 오르는 악양천 둑방길을 따라 악양을 감싸며 섬진강까지 뻗어 내린 풍요로운 들판과 산줄기, 그래서 이 마을에는 돌들이 풍족해서 가지런한 돌담으로 쌓였을까.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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