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의 역사․문화적 스마트 파워 보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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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의 역사․문화적 스마트 파워 보일 필요가 있다
  • 손규성(한계레신문 편집부국장)
  • 승인 2009.07.0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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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삼문이라고도 하며 아해건물로 안회당과 함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선조 목조건물인 홍주아문.





















자칫 잘못하면 홍성주민들은 2류 주민이 될 수도 있다. 충남도청이 이전하고 그 주변의 신시가지가 완성되면 홍성과 예산의 기능적 중심축은 도청청사 이전지가 될 것이다. 도청이 있다 보니 그 일대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지배적 위치를 확보할 것이다. 2012년 도청 청사가 이전하면 지배적 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 주변의 신시가지가 완성되는 10년쯤 후에는 이런 지위는 확고해 질 것이다. 

도청 신도시가 완성되면 홍성읍 또는 광천읍은 구도시 또는 구도심이라고 부를 것이다. 구도심은 현대적이지 않고 세련되지도 않고 전통적이며 낙후된 지역이라는 의미가 포함된다. 신도심 지역은 외부에서 유입된 새로운 사람들이다. 주로 대전이라는 대도시에서 전입된 사람들로 세련미를 자랑할 것이다. 전통적이랄 수 있는 구도심의 사람들과 차별성을 보일 것이다. 같은 홍성지역의 주민이라도 서로 이질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고, 서걱거리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적어도 정서적으로 그럴 수 있다. 

심하게 말하면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또는 신도심과 구도심 지역 사이에 내부 식민지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사회 경제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집단들은 상대편에게 우월적 의식을 가진다. 의식은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고 그 행동은 배타성을 가져, 지역적으로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가질 것이다. 홍성 내에서 두 개의 울타리가 쳐질 수 있다. 지배력에 의한 우월의식은 상대에게 보이지 않게 열등의식을 강요할 것이다.

홍주는 최소 1000년의 역사에서 잉태한 문화적 유산이 있다

지명이 생성된 역사만 해도 1000년을 가진 '홍주'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원주민이 이주민에게 하대 받는 일을 생각할 수 없다. 홍주의 역사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1000년의 역사는 독자의, 고유한 문화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타인이 흉내 낼 수 없다. 그 지역에 이주하는 이주민들은 이런 고유한 문화적 전통을 만들 수도 없고 그런 문화적 유산을 가질 수도 없다. 홍주는 최소 1000년의 역사에서 잉태한 문화적 유산이 있다. 홍주는 상대와의 관계에서 문화적 우월감을 가질 수 있다. 이 문화적 우월감으로 새로 전입한 주민들을 융합해야 평등적이고 상호협력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면 홍주는 하나가 된다. 

문제는 그 문화적 우월감을 무엇으로 어떻게 보여줄까 하는 데 있다. 우리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면에 흐르는 문화적 유산이 있는 문화인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보일 필요가 있다. 유형의 자산으로는 홍주성과 홍주목 관아를 꼽고 싶다. 홍주성은 축조 시기와 상관없이 홍성이 어떤 곳이고, 그곳을 지킨 주민들의 의식과 성향을 대변하는 웅장한 구조물이다. 의병들이 창의하고 수성과 탈환을 위해 피 뿌린 투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더 스마트 파워를 가질 수 있는 것이 '홍주목 관아'라고 보여진다. 이를 복원하면 그 자체가 볼거리가 풍부한 자원도 되지만, 목사(牧使)가 관장하는 치소의 위치가 복원되는 효과가 있다. 그것은 홍성주민들이 내포지방을 관장했던 정치, 행정, 경제, 사회의 중심지역 주민이라는 것을 한 눈에 보여주는 일이다. 이는 새 이민자들이 갖는 지배자적 의식을 무력화할 수 있고 서로 협력하며 화학적으로 융합돼야 한다는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일이다. 또 도청 이전이 외부의 파워가 밀어 올려서 홍성에 오는 것이 아니라 홍성 스스로가 가진 소구력에 의해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는 역사적 선순환의 과정이었다는 뜻도 된다. 도청 신가지 조성을 위한 삽질이 시작된 만큼 10년쯤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완성시기에 맞춰 이의 복원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사를 기름지게 한 홍성의 인물 유산이 너무 많고 크다

홍성의 대표적 스마트 파워는 뭐라 해도 인물 유산이다. 우리의 역사를 기름지게 한 홍성의 인물 유산이 너무 많고 크다. 독립운동사와 지성사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그림의 이응노, 학춤의 한성준, 시의 한용운, 결성 농요 소리꾼의 선조가 창조한 판소리 등은 홍성의 문화사가 너무 장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선열들의 기념비적 공헌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우리의 정신적 자산이고 특권이다. 

하지만, 이런 인물 유산을 집대성한 곳이 없다. 최소한 기념관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 향후 10년의 목표를 두고 이들 문화예술의 대가들을 한 곳에 모시고, 인물을 기리고 작품을 감상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떨까 한다. 만약 홍성고등학교의 교사가 도청신도시로 이전한다면 그곳에 이들 인물의 기념관을 설치해 인물 유산 단지를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이 될 듯하다. 우선 문화재로 지정된 홍성고 강당을 교육과 역사인물박물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 인물 유산 복합 기념단지에서 시와 그림, 노래와 춤, 이 네 가지 장르가 혼합 융합 또는 개별적으로 펼치는 문화행사가 연중 이어진다면 원주민의 문화적 자긍심 고양은 물론이고 이주민이 가질 수 있는 잘못된 의식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1등 주민이 될 수 있다. 관광객의 방문은 덤 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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