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규성의 홍주골 톺아보기] 낙조 전망대 오서산을 한국의 우드스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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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규성의 홍주골 톺아보기] 낙조 전망대 오서산을 한국의 우드스탁으로
  • 손규성(한겨레신문 편집부국장)
  • 승인 2009.08.1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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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서산은 갈대밭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래서 오서산은 가을에 붐빈다. 하지만 더 오서산을 유명하게 만들 것은 저녁노을이다. 오서산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낙조는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술 세계이다.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
 

누구의 노래인지도 모르고 처음 ‘리버 인 더 파인’을 들었을 때 그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긴 생머리에 기타를 들고 조용히, 그러나 카리스마 넘치게 청중을 압도하는 가수는 ‘조앤 바에즈’였다. 그의 노래는 젊었을 때 ‘아침이슬’, ‘상록수’를 부른 가수 양희은의 목소리보다도 더 청아했다.


그 맑고 낭랑한 목소리는 청중을 꼼작 못하게 만들다가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무언가를 외치도록 만들었다. 반전(反戰), 월남전에 대한 반전이었다. 추악한 전쟁에 미국이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는 강한 메시지였다. 꼭 40년 전 요즘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그랬다. 1969년 8월 15일~17일 미국 뉴욕주의 전원도시 베델의 우드스탁이라는 곳에서 반전과 평화를 노래하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렸다. 그 농장에는 조엔 바에즈와 지미 헨드릭스 등 당대를 풍미했던 가수들과, 다 헤어진 청바지에 머리를 치렁치렁 기른 히피 등 50만 명이 모여 그들만의 세상을 열어 제쳤다.


폭염주의보가 내리는 8월의 홍성은 어떤 모습일까. 고향집 돌담길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맨드라미꽃처럼 한가하고 나른한 모습일 듯하다. 어디서나 왁자지껄한 젊은이들이 적으니 더욱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 한가한 여름의 홍성에 야단법석의 젊은이들이 50만 명은 아니더라도 한 500명쯤 모여 그들만의 세상을 엮어 나가게 하면 안 될까. 주민들도 슬쩍 끼어들어 젊은 시절로 뒤돌아가 나른한 여름을 성성하게 보낼 수도 있고.


▲ 지난 7월 24일부터 3일간 경기도 이천시에서 5만여명의 인파 속에 치러진 지산밸리 록페스티벌. <사진 출처=쥬크박스>

‘오서산 페스티벌’을 만들자


오서산은 갈대밭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래서 오서산은 가을에 붐빈다. 하지만, 더 오서산을 유명하게 만들 것은 저녁노을이다. 오서산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낙조는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술 세계이다. 폭염이 푹푹 찌는 여름에 오서산에 올라 저녁노을을 바라보면 홍성에서 산다는 것이 축복받은 일이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바로 이곳에 젊은이들을 모이게 하면 안 될까. 서해의 낙조를 바라보며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하고 이상적인 세상을 그려보게 하는 것이다.


'오서산 페스티벌’을 만들 수 있다. 그 페스티벌은 록 밴드들의 향연일 수도 있고, 우리의 사물놀이패들의 걸쭉한 한마당일 수도 있다. 아니면 록 밴드와 사물놀이의 협연의 장으로 꾸밀 수도 있다. 하여튼 젊은이들이 찾아와 발광(?)을 할 수 있는 그들만의 공동체를 세우는 무대를 마련해 주자는 것이다. 전국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록 밴드그룹은 다 모여 당신들의 끼를 맘껏 발산해 ‘당신들의 천국’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다.


각 대학마다 적어도 록 밴드나 사물놀이패들이 한 팀 정도씩은 있다. 그러니까, 200여개의 대학에서 1팀씩만 모이더라도 최소 1000명은 모이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4~5일 그들만의 경연을 하게하고 마지막 날에는 최고의 기량을 보인 팀 10개 정도를 뽑아 결승 공연을 하게 하는 것이다.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장학금 1000만원을 걸면 되고. 잠자리는 무료로 제공하고 식사는 각자 해결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페스티벌이 잘 개최돼 10년쯤 지났다고 보자. 참여자와 관중은 적어도 3배는 불어나게 돼 있다. 이곳을 참여한 자들은 자신의 추억을 찾고 싶어서, 또 후배들의 경연모습을 보고 싶어서 다시 올 수밖에 없다. 더 나이가 들면 부인과 자식을 데리고 다시 찾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홍성은 젊은 시절의 상징이 되고, 젊음의 추억장소로 기억되게 돼있다. 한 번만 잘 개최해 이어나간다면 큰돈 안들이고 엄청난 파급효과를 노릴 수 있다.

 

우드스탁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반전의 아이콘이 됐다. 기성질서를 불신하고 이상향을 찾는 젊음의 상징이었다. 그것을 잇는 것은 록 음악이었다. 무언가를 매개체로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드스탁이다. 한국의 우드스탁, 홍성이 될 수 있다. 오서산의 낙조는 한국의 우드스탁이 될 만한 좋은 환경요소이다. 우드스탁의 드넓은 농장에서 벌어진 페스티벌이 한국의 낙조 전망대인 오서산에서 벌어진다 해도 부족한 것은 없다. 홍성이 젊음의 아이콘이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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