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은 우리 땅의 골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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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은 우리 땅의 골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
  •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 홍성고 20회)
  • 승인 2010.02.19 2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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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1구간

 

산행일자 : 2010년 2월 6일~7일
구 간 : 중산리-법계사-천왕봉-연하봉-장터목-세석-벽소령-음정리
도상거리 : 22.14km
산행시간 : 11시간 30분 소요 

 

 

 

 

▲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
산에 오르다 보면 가끔 힘든 등산을 왜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난 등산은 산이 지닌 다양한 난관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고 성취감을 느끼며 심신을 단련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마음으로 산에 오른지가 15년이 넘었고, 서울 근교의 산은 물론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산은 거의 올랐다. 서울 근교의 산 중에서는 제일 좋아하는 북한산에는 320번 정도 올랐고, 100대 명산도 10개 남았다.

경인년 새해를 맞아 백두대간을 종주하기로 결심을 하고 단독 종주는 여건이 허락지 않아 대간
 종주만 전문으로 하는 '코뿔소산악회'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백두대간 첫날이 왔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서울 잠실에서 대원들과 반가이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올랐다. 밤 11시 30분경 버스는 출발하고 산행대장이 산행 안내지도 등을 나누어 주었다. 버스에서 모든 대원들은 휴식을 취하는데 난 잠이 오지 않는다. 백두대간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백두대간이란 백두산(2750m)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로만 지리산(1915m)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줄기를 말한다. 백두는 백두산의 '백'자와 지리산의 옛 이름인 두류산의 '두'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고 대간은 큰 산줄기를 말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 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 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한다.
 한반도의 뼈대인 백두대간은 그 굵은 산줄기와 산이 낳은 물줄기를 통해 우리의 삶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신라는 백두대간의 첫 고개인 하늘재(계립령)를 뚫었기에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고, 신립 장군은 천혜의 요새인 새재를 포기했기에 패할 수밖에 없었다. 또 문경이 도자기로 유명한 것은 남한강과 낙동강 수계, 영남대로의 육로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원산, 낭림산, 금강산을 거쳐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까지 내려와 속리산에서 다시 덕유산, 지리산까지 그 길이가 1625km로 높이는 100m에서 2750m까지 다양하다. 이중 남한구간인 미시령부터 지리산 천왕봉까지 684km 만 종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깜빡 잠든 사이 출발지인 중산리에 새벽 4시경 도착하고 4시 40분경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랜턴을 켜고 산행이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3시간 30분 정도는 오르막 산행이다. 오전 6시 40분경 망바위에 도착할 즈음 새벽의 여명 사이로 지리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가운 새벽공기를 들이키며 숨차게 오르던 발걸음을 잠시 쉬어주니, 마음까지 상쾌하다. 아침 7시 20분경 법계사에 도착했을 때는 태양이 오늘의 날씨를 예감할 수 있게 강렬한 빛을 발하며 떠오른다. 잠시 쉬면서 기념촬영도 하고, 등산화 끈을 동여맨다.

천왕봉을 향해 발걸음에 힘을 가하였다. 급한 경사를 오를 때는 숨이 차고 힘이 드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전 8시 30분경 드디어 천왕봉 정상 

눈앞에 펼쳐지는 천왕봉 절경은 지리산의 명성이 무색하지 않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북쪽으로 덕유산, 동쪽으로 가야산, 남쪽으로 광양만과 백운산, 서쪽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조선 중기의 거유였던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의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지리산'이라는 싯귀가 실감이 난다. 천왕봉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아침 식사 장소인 장터목을 향하여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하늘과 통한다는 '통천문'을 지나 6.25전쟁 때 무자비한 토벌로 황량한 고원이 되어버린 제석봉 정상은 옛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나 고사목들은 자리산을 지키는 장수처럼 굳건하다. 제석봉 봉우리를 넘으면 장터목, 말 그대로 장이 서던 곳이다. 해발 1750m, 이렇게 높은 곳에 오래전 천왕봉 남쪽의 사천 주민들과 북쪽의 마천 주민들은 매년 봄, 가을 이곳에 모여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 교환했다는 장터목이다.

오전 10시 10분경 장터목에 도착, 늦은 아침식사를 한다. 버너에 라면과 햇반을 끓여 먹는 맛이란~. 커피 한잔에 장터목 산장을 40분경 뒤로 하고 연하봉을 지나 촛대봉에 오르면 여신의 엉덩이를 닮은 반야봉을 배경으로 세석평전이 발 아래다. 자그마한 돌이 많아 󰡐잔돌평전󰡑이라고도 불리는 세석평전은 남한 최고의 철쭉단지다. 


세석에서의 산길은 낙남정맥이 분기하는 영신봉, 영신봉을 넘어 칠선봉, 덕평봉을 지나면 달빛이 좋기로 소문난 벽소령으로 이어진다. 서남쪽 섬진강 자락에서 피어오르는 운무가 파도처럼 몰려와 계곡을 덮고, 산허리를 감돌아 흐르는 자연의 조화가 신비롭다. 뛰어내리면 신선이 될 것만 같은 지리산 운해를 감상하며 드디어 벽소령에 도착한다.

1차 종주 마지막 구간이다. 30여분 휴식 후 목적지인 음정리로 향한다.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웅장함을 자랑하는 지리산은 배달겨레가 '어머니의 산'으로 여기는 산이다. 동쪽 천왕봉에서 제석봉, 장터목, 촛대봉, 세석, 영신봉, 형제봉, 토끼봉, 삼도봉을 거쳐 서쪽의 노고단까지 이어지는 주봉은 장장 40km로 해발 1400m를 훌쩍 넘는 고봉준령들이 아득히 솟아올라 하늘금을 이루는 산길은 남한에서 최장, 최고의 장쾌한 구간으로 꼽히는 꿈의 능선이다. 영호남 800여리에 걸쳐 있으며 경남의 함양, 하동, 산청, 전남의 구례, 전북의 남원 이렇게 3도 5개 시군에 걸쳐 한반도 남부의 동서간을 이질적인 다양한 문화권으로 만들기도 했다. 호남과 영남을 대표하는 백제 문화권과 신라 문화권의 구분이 바로 지리산의 거대한 산줄기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2차 구간인 벽소령에서 노고단까지의 능선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오후 4시 40분경 목적지 음정리에 내려와 기념촬영 후 오후 6시경 후미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막걸리 한잔에 산채비빔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니 부러울 게 없다.

오후 6시30분경 출발해 목적지인 서울 잠실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다. 첫 구간을 무사히 종주하니 그동안 마음에 짐이 됐던 하나의 과제를 털어버린 듯 홀가분하다.

 

 

 

 

 

 

 

 

 

 

 

 

 

 

 

 

 

 

 

 

 

 

 

 

 

 

 

 

산에 오르다 보면 가끔 힘든 등산을 왜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난 등산은 산이 지닌 다양한 난관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고 성취감을 느끼며 심신을 단련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마음으로 산에 오른지가 15년이 넘었고, 서울 근교의 산은 물론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산은 거의 올랐다. 서울 근교의 산 중에서는 제일 좋아하는 북한산에는 320번 정도 올랐고, 100대 명산도 10개 남았다. 경인년 새해를 맞아 백두대간을 종주하기로 결심을 하고 단독 종주는 여건이 허락지 않아 대간 종주만 전문으로 하는 '코뿔소산악회'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백두대간 첫날이 왔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서울 잠실에서 대원들과 반가이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올랐다. 밤 11시 30분경 버스는 출발하고 산행대장이 산행 안내지도 등을 나누어 주었다. 버스에서 모든 대원들은 휴식을 취하는데 난 잠이 오지 않는다. 백두대간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백두대간이란 백두산(2750m)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로만 지리산(1915m)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줄기를 말한다. 백두는 백두산의 '백'자와 지리산의 옛 이름인 두류산의 '두'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고 대간은 큰 산줄기를 말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 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 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한다. 한반도의 뼈대인 백두대간은 그 굵은 산줄기와 산이 낳은 물줄기를 통해 우리의 삶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신라는 백두대간의 첫 고개인 하늘재(계립령)를 뚫었기에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고, 신립 장군은 천혜의 요새인 새재를 포기했기에 패할 수밖에 없었다. 또 문경이 도자기로 유명한 것은 남한강과 낙동강 수계, 영남대로의 육로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원산, 낭림산, 금강산을 거쳐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까지 내려와 속리산에서 다시 덕유산, 지리산까지 그 길이가 1625km로 높이는 100m에서 2750m까지 다양하다. 이중 남한구간인 미시령부터 지리산 천왕봉까지 684km 만 종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깜빡 잠든 사이 출발지인 중산리에 새벽 4시경 도착하고 4시 40분경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랜턴을 켜고 산행이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3시간 30분 정도는 오르막 산행이다. 오전 6시 40분경 망바위에 도착할 즈음 새벽의 여명 사이로 지리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가운 새벽공기를 들이키며 숨차게 오르던 발걸음을 잠시 쉬어주니, 마음까지 상쾌하다. 아침 7시 20분경 법계사에 도착했을 때는 태양이 오늘의 날씨를 예감할 수 있게 강렬한 빛을 발하며 떠오른다. 잠시 쉬면서 기념촬영도 하고, 등산화 끈을 동여맨다. 천왕봉을 향해 발걸음에 힘을 가하였다. 급한 경사를 오를 때는 숨이 차고 힘이 드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천왕봉 절경은 지리산의 명성이 무색하지 않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북쪽으로 덕유산, 동쪽으로 가야산, 남쪽으로 광양만과 백운산, 서쪽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조선 중기의 거유였던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의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지리산'이라는 싯귀가 실감이 난다. 천왕봉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아침 식사 장소인 장터목을 향하여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하늘과 통한다는 '통천문'을 지나 6.25전쟁 때 무자비한 토벌로 황량한 고원이 되어버린 제석봉 정상은 옛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나 고사목들은 자리산을 지키는 장수처럼 굳건하다. 제석봉 봉우리를 넘으면 장터목, 말 그대로 장이 서던 곳이다. 해발 1750m, 이렇게 높은 곳에 오래전 천왕봉 남쪽의 사천 주민들과 북쪽의 마천 주민들은 매년 봄, 가을 이곳에 모여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 교환했다는 장터목이다. 오전 10시 10분경 장터목에 도착, 늦은 아침식사를 한다. 버너에 라면과 햇반을 끓여 먹는 맛이란~. 커피 한잔에 장터목 산장을 40분경 뒤로 하고 연하봉을 지나 촛대봉에 오르면 여신의 엉덩이를 닮은 반야봉을 배경으로 세석평전이 발 아래다. 자그마한 돌이 많아 󰡐잔돌평전󰡑이라고도 불리는 세석평전은 남한 최고의 철쭉단지다. 세석에서의 산길은 낙남정맥이 분기하는 영신봉, 영신봉을 넘어 칠선봉, 덕평봉을 지나면 달빛이 좋기로 소문난 벽소령으로 이어진다. 서남쪽 섬진강 자락에서 피어오르는 운무가 파도처럼 몰려와 계곡을 덮고, 산허리를 감돌아 흐르는 자연의 조화가 신비롭다. 뛰어내리면 신선이 될 것만 같은 지리산 운해를 감상하며 드디어 벽소령에 도착한다. 1차 종주 마지막 구간이다. 30여분 휴식 후 목적지인 음정리로 향한다.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웅장함을 자랑하는 지리산은 배달겨레가 󰡐어머니의 산󰡑으로 여기는 산이다. 동쪽 천왕봉에서 제석봉, 장터목, 촛대봉, 세석, 영신봉, 형제봉, 토끼봉, 삼도봉을 거쳐 서쪽의 노고단까지 이어지는 주봉은 장장 40km로 해발 1400m를 훌쩍 넘는 고봉준령들이 아득히 솟아올라 하늘금을 이루는 산길은 남한에서 최장, 최고의 장쾌한 구간으로 꼽히는 꿈의 능선이다. 영호남 800여리에 걸쳐 있으며 경남의 함양, 하동, 산청, 전남의 구례, 전북의 남원 이렇게 3도 5개 시군에 걸쳐 한반도 남부의 동서간을 이질적인 다양한 문화권으로 만들기도 했다. 호남과 영남을 대표하는 백제 문화권과 신라 문화권의 구분이 바로 지리산의 거대한 산줄기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2차 구간인 벽소령에서 노고단까지의 능선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오후 4시 40분경 목적지 음정리에 내려와 기념촬영 후 오후 6시경 후미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막걸리 한잔에 산채비빔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니 부러울 게 없다. 오후 6시30분경 출발해 목적지인 서울 잠실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다. 첫 구간을 무사히 종주하니 그동안 마음에 짐이 됐던 하나의 과제를 털어버린 듯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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