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농경지와 작목반 활성화로 부농 일구는 효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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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농경지와 작목반 활성화로 부농 일구는 효도마을
  • 이은주 기자
  • 승인 2010.06.2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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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행복마을] 33. 광천읍 운용리


광천읍 운용리는 대평리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 광천읍 가운데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는 장곡면 가송 2리, 서쪽으로는 대평리, 남쪽으로는 장곡면 죽전리, 북쪽으로는 홍동면 홍원리와 인접하고 있다.

운용리는 홍동면에 편입됐다가 198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일일생활권에 가까운 광천읍에 편입됐다. 운용리에는 상원마을과 원천리 마을 경계에 위치한 아홉골짜기로 이뤄진 석삼봉이라는 산이 있는데 아홉 개의 골짜기 중 구룡실마을에는 용이 아홉마리가 살고 있어 구용쟁투의 형국이라 하여 구룡동, 구룡실, 구렁실로도 불리웠다.

▲ 마을 입구.

광천에서 청양으로 가는 96번 도로를 가로지르는 위치에 있는 그멀들(검은들)은 장곡면 죽전리와 가송리에 접해 있고 벙어골 아래와 도축재능선 끝자락에 넓은 평야가 있다. 이외에도 가축을 도살하는데 혐오감을 없애기 위해 사방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살이 이뤄졌던 도축재고개와 일제강점기에 우리 지하자원을 착취하던 금광이 있었던 방앗간 뜸, 모양이 마치 거북이가 엎드리고 있는 형국 같다 해서 붙여진 복구장, 뾰족간뜸, 분주골, 상구룡실 마을, 새눈바위, 새터마을, 샘 건너밭, 성황당고개, 양지뜸, 용양골, 운동마을, 음산마을장고개, 한샘 등이 있다. 이중 한샘은 마을 앞 논 한가운데에 있는 공동샘물로 물이 무척 차가워 찬샘 또는 한샘이라 불리웠다. 한샘은 그동안 마을 주민들의 식수와 농업용수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또한 주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운동마을 북쪽에 있는 능선의 서남향사면 중하단부에서 고분군이 발견됐다고 한다. 현재 고분의 석재는 다른 용도로 전용되고 고분이 있었던 곳은 밭으로 개간되어 경작되고 있어 고분의 형태는 확인하기 어렵다. 고분은 천정석을 갖춘 형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며 출토유물도 토기가 나온 곳이 있는가 하면 청동제 숟가락이 나온 곳도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기간 동안 조성된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어른 공경과 주민단합으로 효도마을이라 불리우는 운용리

운용리는 현재 90세대 23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마을이 가장 번성했던 1980년대에는 가구수가 100호에 달했다고 한다. 주수입원은 친환경 오리농법을 이용한 쌀농사를 기본적으로 지으며 감자작목반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을 만큼 대략 20만평(인근지역 포함)에서 감자재배가 이뤄지고 있다. 운용리의 작목반은 감자작목반 12명, 친환경 오리쌀ㆍ우렁이쌀 18명으로 작목반 회원들은 양질의 농산물 생산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또한, 16호 정도의 양돈농가와 양파, 고추, 담배 재배 등 넓은 농경지를 갖추고 있는 마을 특성상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또 마을 노인들은 농한기에도 쉬지 않고 늦가을에 냉이를 심어 이듬해 봄까지 수확을 하고 있을 만큼 부지런한 마을이다.

▲ 효자 김복한 정려.


운용리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80년 동안 마을을 지키고 있는 효자문인 정려가 하나 있다. 정려는 정측면 1칸 건물로 사면은 철망으로 둘러져 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내부 중앙 상단에는 <효자가선대부중추부사연광 김복환지문>이라고 적힌 효자 현판이 걸려있다. 현판뒷면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내부에 찬양문이 쓰여진 정려비가 있다. 이에 이웃마을에서는 운용리를 효자문 동네라고 부르기도 했다. 정려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김복환은 영광 김씨로 성리학의 가르침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하며 가정살림이 어려워도 어버이를 섬기는데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어느 날 마을의 집집마다 밤을 새고 나고 가축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김복환의 부친은 새벽 일찍 일어나 외양간을 돌아보던 중 호랑이와 마주치게 되어 호랑이를 잡으려다 호환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러자 김복환은 부친의 곁을 떠나지 않고 아침마다 부친의 분을 맛보아 병세를 진단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부친에게 드리는 등 온갖 정성을 다했다. 그러한 그의 효성에도 불구하고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김복환은 호랑이가 잡혔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가 호랑이 고기를 씹어 먹으며 한을 달래고 호랑이를 죽인 포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의 집을 팔아 상을 줬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1928년 영광 김씨 문중에서 이 정려를 세우게 됐다.
운용리의 입향조는 상산 김씨로 김만용 묘소와 후손들의 묘소가 마을회관 뒤편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후 능성 구씨가 가장 오래전부터 마을에 세거하며 대대로 10대까지 운용리에 살아왔다. 현재는 영광 김씨, 경주 김씨, 상산 김씨 등 각성바지 마을이 되었다.

▲ 마을회관.

운용리에는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상계가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져 왔다. 상계에 가입하게 되면 입회비로 쌀 3말을 내고 상계의 운영은 회원들의 입회비로 모은 경비와 수시로 기금을 모아서 운영비로 사용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상부상조하기위해 구성되었던 상계는 주민의 감소와 관심부족 등으로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 마을 공동우물.

운용리의 마을 조직으로는 문금진(61)이장을 비롯해 노인회와 부녀회, 청년회, 그리고 작목반이 있다. 노인회는 구병회 노인회장을 중심으로 40여명의 회원들이 마을 대소사에 조언을 하며 지주 역활을 하고 있으며 부녀회와 청년회에서는 마을기금으로 해마다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효도관광을 시켜드리고 있을 만큼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가득한 마을이다. 이외에도 임종미(47) 부녀회장과 50여명의 부녀회원들은 마을의 각종 행사지원, 봉사활동 등 마을 발전을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다.

▲ 운용마을농기계보관창고.

임종미 부녀회장은 "운용리는 마을 대소사시 한명도 빠지지 않고 참석할 만큼 주민간 단합이 그 어느 마을보다 잘되고 있는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마을발전을 위해 2004년부터 이장을 맡아 6년간 마을일에 앞장서고 있는 문금진 이장은 "현재 운용리에는 군비 5억을 들여 상수관로 확장공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1/2정도만 이뤄지고 있는 상태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도 공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대평초등학교에서 운용리까지 이어진 302호 농어촌도로에 대한 포장공사가 하루 빨리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을 전했다.

▲ 은혜교회.

▲ 운용리 물탱크.

▲ 담배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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