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된 느티나무 아래 오손도손 모여사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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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 된 느티나무 아래 오손도손 모여사는 마을
  • 이은주 기자
  • 승인 2010.07.12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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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갈산면 쌍천리

▲ 쌍천리 전경.

홍성읍에서 갈산방면으로 국도 29호선을 따라 가다보면 갈산면소재지에서 동쪽 방향으로 3km지점에 갈산면 쌍천리가 위치해 있다.

갈산면 쌍천리는 마을 앞쪽으로는 논으로 이뤄진 넓은 들판과 남산천이 나란히 흐르고 있으며 하류지점에서 구항면 오봉리 쪽에서 내려오는 남산천과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쪽에서 내려오는 와룡천이 합류한다. 해서 쌍천리의 지명은 마을 앞에서 두 개의 큰 냇물이 합쳐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와룡천과 남산천이 합류하는 지점 바로 위쪽에서 조그만 실개천과 남산천이 마을 하류쪽에서 먼저 합류해 두 개의 냇물이 합쳐지면서 흐르다가 와룡천과 다시 합류하게 되므로 세 개의 내가 합류하는 셈이다.


쌍천리에는 마을 생활권이 두 지역으로 갈라져 있다. 용암마을 생활권과 닷마루, 점터, 수작골 생활권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는 용암마을과 닷마루 사이에 <청룡뿌리>라고 하는 산모퉁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왕래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남산천을 건너기 위해서 두 개의 다리가 놓여있는데 용암마을 앞으로는 국도 29호선과 연결해주는 남산교가 놓여있으며 닷마루 마을 쪽으로는 쌍천교가 높여서 앞뒤 마을을 연결해 주고 있다.

▲ 쌍천교.

쌍천교는 1979년 당시 마을 앞으로 흐르는 남산천을 건널 수 있는 교량 건설이 오랜숙원사업을 쌍천리 주민들의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이다. 당시 갈산면 쌍천리, 동산리, 내갈리와 결성면 형산리 주민 800여명에 1일 왕래 인원 400여명이었던데 반해 교량이 가설되지 않아 각종 생필품의 운반과 농경지간 내왕의 불편을 물론 30mm의 강우에도 통행을 못하고 1.5km 지점에 있는 이동교와 남산교를 이용해 통행을 하는 등의 불편함으로 조상대대로 내려온 숙원사업이었다. 해서 1978년 당시 이장이었던 김기태 이장을 비롯해 주민들은 주민총회에서 교량 건설 추진을 결의한 결과 1979년 새마을 자재의 지원을 받아 총연장 40m에 폭 5m의 쌍천교를 가설하게 된 것이다. 또한, 시공부터 완공까지 공사에 소요되는 거푸집을 제외하고 골재확보를 위해 부락 내 경운기 8대, 양수기 2대, 부녀회원 50명 등 연인원 360여명이 동원되고 80대 노인들까지 작업에 참여하는 등 1563명의 주민 부담 노력과 십시일반 모은 기금 240만원으로 사업을 추진해 마을의 자랑거리가 됐다.

▲ 수백년 된 느티나무.

닷마루는 용암마을 서쪽 산모퉁이인 청룡뿌리를 돌아가면 바로 마주치는 마을이다. 옛날에는 이곳까지 배가 들어와 배를 정박시키고 묶어두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점터는 용암마을의 맨 아래쪽으로 위치해 있는데 닷마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에서 그릇을 만들어 그릇을 만들던 터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느티나무 아래 마실나온 용암마을 노인들.

용암마을은 마을 앞 냇가에 용바위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백년 묵은 이무기가 용이 되어서 승천한 바위라고 전해지며 용바위가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용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용암마을 한복판에는 불쑥 솟아로는 언덕배기가 있고 그 곳에 수백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옛날 일제강점기에 진흥회의를 하던 장소인데 현재는 용암마을 경로당이 있으며 마을 공동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쌍천리는 현재 65세대 13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큰 내가 흐르고 있어 농사짓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마을로 주요소득원은 벼농사이다. 광복후 1960년대까지는 길쌈과 목화를 재배하여 벼농사와 함께 주소득원으로 삼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축산이 성행하기도 하였으나 마을 아래쪽에 상수도가 설치되면서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축산업이 위축되었다. 현재는 홍보댐에서 물을 공급받는 관계로 마을 아래에 설치된 상수도가 없어져 상수원 보호구역으로서 심하게 규재받았던 환경문제는 다소 완화되었지만 농촌의 고령화로 인해 마을 주민 3분의 2이상이 노인들로 벼농사 외에 축산업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 남산교.

현재 용암마을 20호 정도의 신평이씨가 살고 있을 정도로 쌍천리는 신평이씨 집성촌이었다. 대략 6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진에 살던 신평이씨가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시초라고 한다. 지금도 맨 윗대 조상의 산소가 쌍천리와 이웃한 남산리에 위치해 있다.

쌍천리의 출향인으로는 한국교원대에서 30년간 교편을 잡은 최운식 교수와 2005년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을 수여받은 한일용 씨, 지방청 홍보담당관실 홍보담당에 재직 중인 이만형 경정이 있다. 최운식 교수는 당진 출생으로 1949년 12월 쌍천리로 이사해 이곳에서 성장했다. 갈산 초ㆍ중ㆍ고를 거쳐 서울교원대를 졸업했으며 서경대 국어국문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ㆍ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만형 경정은 갈산초(58회), 갈산중(28회), 갈산고(6회)를 졸업하고 인하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이 경감은 경찰간부후보생 39기로 지난 1991년 4월 충북 제천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 쌍천리 마을회관.

현재 쌍천리에는 이병완(58)이장을 비롯해, 최귀순(76) 쌍천리 노인회장, 이석헌(81) 용암마을 노인회장, 사재옥 부녀회장이 마을의 대소사를 돌보며 마을 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병완 이장은 현재 15년간 당산농장을 운영하며 480여평에 느타리버섯, 표고버섯을 재배해 전량 서울 가락동 시장으로 출하하고 있다. 마을을 방문하니 이병완 이장은 다가올 복날을 대비해 마을 어르신들께 대접할 복날 음식에 대해 상의하며 마을 안팎을 챙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 용암마을경로당.

쌍천리에는 두 개의 경로당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닷마루에 위치한 마을회관은 운영비와 난방비를 지원 받는 반면 용암마을의 경로당은 지원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용암마을과 닷마루 사이 2km정도되는 거리를 노인들이 왕래하기에는 어렵고 불편한 점이 많아 10여년 전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조립식 건물인 용암마을 경로당을 마련한 것으로 허가를 받지 못하다 보니 일체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조립식 건물로 지어진 경로당 안은 찜찔방이나 다름없어 무더위로 인해 농사일을 잠시 접고 경로당에 모인 노인들은 발길조차 들여놓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마을 어르신들에 따르면 한 겨울에는 난방이 전혀 되지 않다보니 추위로 인해 이용을 못한다고 한다. 이병완 이장은 "그나마 두달 전 이철규 갈산면장이 느티나무 아래 들마루를 마련해줘 어르신들이 쉼터역할을 하고 있다"며 "용암마을주민 3분의 2이상이 80대 어르신들인 만큼 경로당을 새롭게 마련해 어르신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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