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유적지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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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유적지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마을
  • 이은성 기자
  • 승인 2010.08.2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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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면 읍내리-2 좌우촌마을]

좌우촌마을 전경

결성읍내리 좌우촌마을을 감싸고있는 석당산은 해발 146m 그리 높지 않지만 정상에서 서쪽으로 보면 멀리 천수만과 안면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산도에서 수룡동, 성남리, 해동마을까지 이어지는 바닷길을 볼 수 있어 옛 결성읍성이 위치해 있었다. 결성현의 관아도 정상에 위치해 서해관문의 요지에 속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산이다.
결성동현


금왕산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석당산은 광물이 풍부했던 산이라고 한다. 거대한 바위3개로 구성된 산에 읍신당이 있어 석당산이란 이름으로 지어진 설이 내려져 오는데 읍신당은 현재 신당터만 남겨져 있는 상태이다. 예로부터 뱃사공들이 길을 떠날 때 제사를 지내던 신당으로 공조참판 김덕함과 그의 부인 조씨의 신위를 모셔놓고 제를 지낸 자리기도 하다. 읍내의 신당터로 결성의 무병식재와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여 매년 1월 산제를 올려 왔으나 현이 폐지되면서 자연히 없어졌다.


석당산 정상에 위치했던 결성읍성은 1451년 조선문종때 완성된 석축성으로 지난 2004년 충남기념물 제165호로 지정됐다. 1,074m의 둘레로 백제, 고려시기 왜구 침입을 막는 서해 진영의 동문이었는데 결성현의 석당산성을 토대로 넓혀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산기슭에는 민가가 들어서면서 읍성의 동북벽은 파괴됐으나 동문과 서문을 둘러싼 옹성 일부와 성벽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있다. 서쪽으로 배후산지를 두었기 때문에 동문이 정문인데 1923년 왜병들에 의해 부서져 현재 그 터만 남아있다. 석당산을 내려와 석당산 입구에는 결성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1911년 41칸의 방으로 구성된 결성객사를 초등학교로 이용해 왔으나 지금은 아쉽게도 완전히 소실되고 현대식 초등학교가 다시 지어졌다. 결성객사는 결성관이라고도 불려 공무를 보던 국가직들의 숙소역할을 맡았고 임금의 제사를 지내기도 했던 건물이었다. 결성문화재보호회 황성찬 (74) 회장은 "마을 어르신들의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속에서 결성관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며 전했다. 초등학교에는 460살로 추정되는 은행나무가 교목으로 우두커니 자리잡고 있는데 좌우촌 마을의 보호수로 지정계획중이다. 그 크기가 둘레는 장정4명이 둘러싸야 둘러질 만큼 굵다. 높이 32m, 둘레 5.2m로 예로부터 손귀한 집안이나 아이를 못낳는 사람들이 제를 지내온 곳으로 전해져 오며 그 웅장한 자태가 좌우촌을 굽어보고 있다.
은행나무


은행나무를 거쳐 초등학교 정문 옆 에는 '결성객사시비(結成客舍 詩碑)'가 세워져 있다.

시비(詩碑)의 설명에 의하면, 세종 19년(1437년)에 충청도가 큰 기근을 겪을 때 충청도 도순문진휼사의 벼슬을 받고 이곳으로 내려와 백성을 구휼하면서 지은 시라고 적혀져 있다. 시비의 주인공은 정숙공 안 순(1371년~1440년)이다.

바닷가 결성객사 창문 아래에서
순풍에 돛단배 책상 앞에 보이네
외루운 성 눈이 쌓여 길은 막혔고 
큰나무 가지에 차가운 안개 서렸네
백성의 병 고칠 의술 없으니
어느 때 임금님 곁으로 갈 수 있으려나
한성으로 가는 길은 점점 멀어지는데
서리같은 귀밑머리 절로 나부끼네

결성객


객사비를 따라 내려오면 결성동헌과 향방청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1989년 4월 20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306호로 지정된 결성동헌은 지금으로 따지면 군청의 역할을 맡았다. 모두 3동의 건물로, 지방수령이 공사(公事)를 다루던 동헌, 순교가 지방 치안을 담당한 형방청, 책과 문서를 보관하면서 현감의 자제가 거처하던 책실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동헌은 1400년 석당산 정상에 세워져 1665년 현재 위치로 내려오게 됐다. 향방청 뒤뜰에는 높이 30.98m, 둘레 4.92m로 신목 또는 괴목이라 하여 회화나무(느티나무)가 향방청을 포함 읍내리를 내려다 보고있다. 세종 7년 1425년 형조참판 정구령이 결성현감 전임을 앞두고 심어진 나무로 올해 585세를 맞이했다. 신목에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져 오는데 1935년 향방청이 일본지서로 쓰였다. 이때 지서장으로 발령난 일본인 야마구찌가 신목의 가지가 보기싫다 하여 가지를 직접 잘랐는데 이후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그 후 발령오는 일본지서장마다 신목제를 올려 해방 후에도 지서장 중심으로 신목제가 이어져 왔다. 황성창 회장은 "현재 신목은 매년 금오날 결성문화재보호회에서 신목제를 주관하고 있으며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받기 위해 신청 준비중에 있다"고 전했다.
결성농요농사박물관


오래된 문화유적지와 역사가 풍부한 결성읍내리 좌우촌 마을은 본래 동헌을 중심으로 좌변리와 우변리로 나눠져있었다. 읍내 오른쪽으로 골짜기에 마을이 있다하여 골말이라 불리운 우촌, 우변이라고도 불리웠는데 결성읍성이 있는 석당산 우측에 자리한 마을이다. 이 골말과 교촌 동남쪽에 위치한 잿말이 행정구역통폐합으로 좌우촌이란 지명을 얻어 현재 6개반 200세대로 약 60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평균연령 60대이상의 어르신들이 주로 마을에 거주하고 계신다. 읍내리에 위치해 초, 중, 고등학교등 교육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학생수가 많이 부족해 1~2개 반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좌우촌 마을에는 60대이상의 어르신들이 125명이상 거주하고 있으며 인원이 많은 만큼 2개의 노인회관이 마련돼 있다. 현재 여성노인회관을 신축중에 있으며 청년회와 부녀회가 신축에 맞춰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준비중이다. 40명 이상으로 구성된 청년회와 부녀회는 지난 6월에 어르신들을 위한 제주도 여행등 마을 대소사에 적극 참여해 활발히 활동중이다. 최광주(79) 좌우촌마을 노인회장은 "청년회, 부녀회등을 통해 마을사람들이 하나되어 움직인다"며 "바쁜 농사일에도 항상 마을대소사에 신경써주는 모습이 고맙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많은 역사 유적지를 갖고 있는 좌우촌 마을은 뿌리깊은 결성의 전통문화의 맥을 잊지 않기 위해 2004년 결성농요농사박물관도 건립됐다. 박물관에는 농사유물 300점, 석기와 토기등 선사유물 300점, 백제토기 및 고려와 조선시대의 도자기 150점, 농경생활유물 250점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된 결성농요를 소개하고 알리는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견학을 오고 있어 지역문화를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다가오는 내포축제기간에는 동국대학교 사학과 학생 40여명이 숙박예정이다.
결성면복지회관


이대진(57) 좌우촌마을 이장은 "면의 파출소가 현재 근무자 1명만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다"며 "마을여행이나 행사 때 집을 비운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예전처럼 상주 또는 인원확보로 불안감을 덜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했다.
향방청


한편 결성문화재보호회 황성창(74) 회장은 "결성읍성의 역사는 홍주읍성보다 오래됐다"며 "균형발전뿐만 아니라 역사의 한축으로서 복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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