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기제에 빠진 우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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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기제에 빠진 우리사회
  • 범상 스님 (오서산 정암사 총무스님)
  • 승인 2010.10.2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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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방에는 반년이 넘도록 고장 난 벽시계가 걸려있다. 정확히 말하면 고장이라기보다는 일부러 건전지를 갈아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기거하는 방을 사용한 3년 동안 필요할 때 마다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몸에 배인 습관은 시계가 멈춘 지 6개월이 넘도록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보다 못한 어떤 분이 건전지를 직접 갈아 넣어주겠다고 성화를 부려 하는 수 없이 "3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이 사라지는데 걸리는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실험하는 중"이라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개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종을 쳤고, 그것에 길들여진 개는 종소리만 들어도 먹이를 먹기 위한 침이 분비된다는 파블로프의 실험에서처럼 어떤 습관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새로운 생체메커니즘을 형성한다. 필자역시 처음 몇 개월은 시계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쳐다보았고, 6개월이 지난 지금은 고장 났다는 사실을 순간 인식하지만 이미 고개는 시계를 향해 돌아간다. 이처럼 길들여진 습관을 재거하기가 무척 어렵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집단메커니즘을 철저히 이용한다. 우리사회의 개혁이 더디고, 70%의 서민들이 부자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을 지지했던 것은 사안의 옳고 그름보다는 오랜 시간 교육으로 길들여진 집단메커니즘이 시키는 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 소위 기득권으로 분류되는 보수세력들이 즐겨 사용하는 '반공' '좌파 빨갱이 논리'는 집단메커니즘을 악용하는 대표적 용어라 할 수 있겠다. 대리투표가 가능할 만큼 민주주의가 정착된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에서 보듯이 좌우익은 말 그대로 새의 양 날개와 같아서 균형과 견제를 의미한다. 이러한 좌우익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지배논리로 왜곡된 것은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을 무력화 시켜 최소한 남한이라도 지배하겠다는 미국의 패권주의 전략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미국은 집단메커니즘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종교를 이용하여 '사회주의는 무신론' '자본주의는 유신론'으로 대별시켰고, 이승만 정부는 반공을 내세워 정적을 재거함으로서 당시 민족주의진영에 비해서 상대적 열세에 있던 정치적 한계를 극복하고 남한의 단독정부를 수립하였다.

이후 우리사회에서는 지금의 복지국가에 해당하는 최소한의 분배의 정의를 요구하거나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면 엉뚱하게도 좌파 빨갱이로 몰려 숙청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6.25를 겪으면서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집단메커니즘이 형성되면서, 같은 형제들끼리 총부리를 겨누었던 민중들은 자기 합리화와 살아남기 위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민중들에게서 좌파 빨갱이 메커니즘은 크게 두 가지로 이해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6.25세대와 반공논리로 전쟁을 벌였던 사람들이다. 6.25를 전후해서 같은 형제간에도 좌우익으로 갈라서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했으며, 북파공작원과 같은 특수임무와 월남참전은 철저한 반공논리에서 이루어졌다. 이들에게 좌파 빨갱이 논리는 이데올로기의 모순에 빠져 살인(殺人)을 했다는 양심적 가책을 덮는 유일한 방어기제이다. 그래서 김대중 노무현정부가 '월남전고엽제환자지원'과 '북파공작원의 명예회복'에 적극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이 좌파논리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단군이래로 단 한 번도 민중봉기로 정권을 탄생시키지 못했고, 철저한 수직적 논리 즉, 승자의 입장에서 가르쳐진 역사관의 문제이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아직도 국민들에게 보편적 상식의 기준이 되는 국정교과서는 식민사관과 친일ㆍ친미를 미화시키는 철저한 지배논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교과서가 제시하고 있는 역사와 다른 사실이나 논리에 대해서는 자신의 견해를 바꾸기 보다는 무조건 좌파논리를 내세워 자신의 무지(無知) 방어하려 한다.

예를 들면 박정희 정권이 일본으로부터 6,6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정치뇌물을 받고, 한일협정에서 단돈 3억 달러에 36년간 저지른 일본의 모든 악행을 덮어버렸고 개인적으로 피해보상청구를 할 수 없도록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경제를 살리고 청렴한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정권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좌파로 매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보수세력들은 이러한 집단메커니즘을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교묘히 위장하여 부자일변도의 정책으로 양극화를 부추기면서도 국민적 동의를 얻어내고 있으며, 의도적 군복부미필자라고 의심받는 정치인들과 내각은 여전히 좌파 빨갱이논리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민중이 좌파 빨갱이논리로 개인들의 과거사나 무지를 합리화 시켜온 사실에 대해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하고, 감세정책과 같이 좌파 빨갱이논리 뒤에 숨어서 성장하고 있는 기득권만의 정책에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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