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베틀 삼베길쌈으로 특색있는 마을 가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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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베틀 삼베길쌈으로 특색있는 마을 가꾸자
  • 이은성 기자
  • 승인 2010.11.0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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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북면 신정리 상유정 마을은 홍복면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동북쪽으로 예산군 삽교읍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탬봉을 경계로 응봉면 계정리와 맞닿아 있다. 제룡산을 기준으로 홍성군 홍북면과 예산군 응봉면으로 나누어 진다. 마을도로는 차가 왕래하는 길가에서 농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할 만큼 교통이 불편하며 도로확장은 마을의 숙원사업이다.

돌박재



장수가 던진 바위

마을엔 돌박재라 불리는 뒷산이 하나 있다. 뒷산 정상에는 큰 바위가 박혀 있으며 이 바위에는 전설이 내려져 온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바위는 처음부터 뒷산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주 먼 옛날 덕산 개굴에 무예가 출중한 장수가 있었는데, 하루는 산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니 삽교천 일대가 물에 잠겨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삽교천 일대는 비만 오면 하천이 범람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수는 둑을 만들면 백성들이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해 바위를 던져 물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위 하나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상유정에 떨어지게 됐다. 상유정 마을 임도빈 이장은 "지금도 돌박재 바위에는 장수의 손자국이 남아 있다"며 "그때 장수가 바위에 힘을 너무 가해 높이 솟아 이리로 떨어진 전설이 전해져 온다"고 설명했다.

베틀



삼베길쌈 전통 아쉽게 사라져

전통적인 생활모습이 이어져오던 1970년대만 해도 상유정 마을에는 대동회를 중심으로 동네사람이 다같이 모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정월 보름이면 풍물 치며 놀았고, 1964년에는 상유정 농악대가 홍성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할 만큼 풍장 치는 솜씨가 좋았다. 농악대가 1등 한 날 상쇠잽이의 부인이 만삭인데도 행사에 따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출산한 일화가 전해져 온다. 예전 상유정 마을 여자들은 전통적인 방식을 이용해 삼베를 만들고 베틀을 사용하는 방법을 대대로 물려받고 이어왔었는데 현재는 5세대 정도가 하고 있다.

이영호 노인회장은 "예전에는 삼베길쌈이 있을 정도로 마을전체가 삼베를 만들며 생활했다 "며 "현재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고 1년의 공정을 거치며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힘든 실정이다"고 말했다. 날이 갈수록 주민은 줄어만 가고 고령화 되어 얼마 남지 않는 삼베가구에 상유정의 삼베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상유정 삼베는 수작업을 통해 생산되는 만큼 베의 질감이나 착용감이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은 삼베가구가 모두 사라지기 전에 전통적인 베틀을 사용하는 생산방식을 고수한 마을 특산물로 상품화 하여 예전의 삼베길쌈이 되살아 날 수 있도록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상유정 마을회관


현재 상유정 마을은 49세대로 100여명이 살고 있고 3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 마을명 으로는 윗뜸, 가운데뜸, 아랫뜸으로 불려진다. 임도빈 마을이장은 "한때는 70여가구로 인구가 많았다"며 줄어가는 마을주민과 노령화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마을의 주 수입원은 벼농사이며 예전에는 담배와 삼베를 많이 생산하였으나 지금은 벼농사와 딸기재배, 한우 등에 종사하고 있다.

하유정 마을회관


어느 해나 풍년이 든다 하여 '풍덕골' 이라 불린 하유정 마을

신정리 하유정 마을은 홍북면의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서남쪽으로 홍북면 갈산리ㆍ산수리와 인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삽교읍 신가리와 맞닿아 있다. 하유정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경지정리와 수리시설이 발달하기 이전에도 논과 들에 비교적 수량이 풍부하여 해마다 농사가 잘 되는 마을이었다. 하유정의 동남쪽에 위치한 자연부락 중 하나로 예로부터 수원이 좋아서 매년 풍년이 든다 하여 풍덕골이 불린다고 한다. 풍덕골에는 서낭댕이라고 불린 고개가 하나 있다. 서낭댕이는 지나는 사람들이 던진 돌로 수북하게 쌓인 돌무더기가 있었고, 그 옆으로 서낭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제사를 지내진 않았지만 종종 개인적으로 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굿판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마을의 선생님  최 선생

하유정의 해주최씨는 현재까지 오랜 세월 마을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하유정에 살았던 해주최씨 최규훈씨는 마을에서 뿐만 아니라 주변 갈산리나 석택리, 상하리 에서까지도 '최 선생'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했다고 한다. 최규훈씨는 서당을 마련해 남녀노소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무료로 한문을 가르쳤으며 아픈 사람을 위해 무료로 침을 놔주기도 했다. 침놓는 솜씨는 앉은뱅이도 최 선생에게 침을 맞으면 걸어 나간다고 할 정도로 유명했다. 그 소문을 듣고 예산, 홍성 등에서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걷지 못하는 사람이 지게에 업혀 와도 일주일 만에 걸어 나갔다고 한다. 최규훈 씨는 당시 많은 땅을 가지고 있어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을 기꺼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에게 도움받은 사람들은 미안한 마음에 추수절이 되면 누가 먼저라도 할 것 없이 일손을 거들고 명절 때마다 몰래 선물을 두고 갔다고 한다. 최규훈씨에 대한 일화는 지금까지 주민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고마운 인물로 전해진다.

곤파스가 휩쓸고 지나가

현재 하유정 마을은 3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총 51가구 1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부녀회, 노인회, 작목반 등은 한달에 한번 모임을 가지고 1년에 2번씩 마을 사람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여행을 가거나 잔치를 연다. 마을을 관통하는 하전이 없어도 논마다 수량이 풍부한 샘이 있어 예로부터 농사가 잘되었다. 하유정 마을은 전체 52농가 중 25농가가 딸기재배를 주업으로 삼으며 오순도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 들이닥친 곤파스로 인해 마을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고 말았다. 하우스 비닐이 찢어지고 철제가 휘어져 딸기 재배가 어려워진 것이다. 마을주민들 대부분이 딸기 복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김진희 마을 이장은 여러모로 마을 복구를 위해 발 벗고 나서 움직이고 있다.



김진희 이장은 "태풍 곤파스로 인해 딸기 하우스가 많은 피해를 입었다"며 "70대 이상 어른신들은 복구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 까워했다. 하유정 마을은 곤파스가 지나간 후 아수라장이 되어 지금도 계속 복구 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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