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암산 차돌처럼 단단하게 똘똘 뭉쳐 화합하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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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산 차돌처럼 단단하게 똘똘 뭉쳐 화합하는 마을
  • 이은성 기자
  • 승인 2010.11.2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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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산면 상촌리 노동마을

갈산시장

갈산면 상촌리 '노동'마을은 홍성읍으로부터 12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예부터 서산`태안 간 국도의 유일한 경유지로 동쪽은 내갈마을, 서쪽은 갈산천을 경계로 상촌마을, 남쪽은 와룡천을 끼고 마을 북쪽의 병암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노동마을은 일제감정기부터 군내에서 세 번째로 큰 소 도읍으로 읍 단위에 있는 행정, 교육, 금융기관과 갈산시장이 마을에 위치해 홍성읍, 광천읍 다음으로 발전한 마을이다. 그래서 마을은 면소재지 마을 중에서도 큰 활동성을 보인다. 1930년대부터 시장이 개설되어 현재까지 갈산 오일장이 열리고 있다.

갈산 시장은 1942년 결성면의 용호리 시장이 완전 폐쇄되자 홍성군의 서부지면 4개면과 예산군 덕산면, 서산시 고북면등 타 시군 지역 6개면의 상권을 바탕으로 1990년까지 군도 변의 상점 20개소, 음식점 25개소, 양조장, 정미소 등 성시를 이뤘다. 또한 1960년 초까지 난장 씨름대회가 백중전후로 열리며 갈산시장은 더욱 번창했다. 하지만 1998년부터 29번 국도가 외곽지역인 상촌마을로 개통되고 자가용의 대중화로 홍성시장에 상권을 뺏기면서 지금은 어물시장 주축으로 면단위 5일 시장으로 변했다. 갈산 시장은 지금도 이름난 음식점이 많아 원거리 외지인들이 많이 찾아 성황을 이루고 있는 노동 마을의 대표적인 지역이다.
산신제터


'800여명 개인소지 올리며 정성담긴 병암산 산신제'
노동마을 주산인 병암산은 삼준산 줄기가 뻗어 내려와 끝부분에서 남쪽으로 뻗은 부분의 산으로 산 정상에서 70m정도의 바위 줄기가 있는데 이 바위줄기가 병풍을 닮아 이름 붙여진 산이다. 1960년대만 해도 산에 나무가 없어 마을에서 바위돌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치산녹화가 잘되어 보이지 않는다. 노동마을과 갈산면의 진산으로 산신제를 지내는 산신당 터가 있으며 현재까지 산신제가 행해진다. 150년 전부터 내려왔다고 전해지는 산신제는 1980년대 잠시 중단 된 적이 있는데 그 때 마을 주민들의 교통사고와 젊은이들이 번번한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이에 1988년 12월 당시 마을 어르신들과 주민들이 산신제 재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합의됨에 따라 그 당시 김종운 전 이장과 이노환 개발위원 등이 주동이 되어 산신제를 매년 거행하기로 하고 마을 개발위원회를 재구성해 추진했다. 산신제 터까지 자세히 안내해주고 설명해준 이노환 노인회장은 "20여년전 거행했던 산신제의 제향 절차를 잘 아는 사람이 없어 제향복구에 많은 난관에 부딪혔었다"며 "제향절차 수소문 끝에 인근 봉화사의 암자스님과 구항 백월산의 석련사 주지스님의 도움을 통해 현재의 산신제가 복구됐다"고 말했다. 그 후 매년 음력 정월 14일에 저녁부터 익일 새벽까지 산신제가 거행되고 있는데 한때 엄격했던 산신제는 정초에 제관, 헌관, 집례, 집사 등 7명을 선정해 정월 열흘날부터 몸을 정갈히 하고 부정한 것을 보지 않으며, 제관 집에는 황토흙과 금줄을 처 놓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했다고 한다. 현재 산신제는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가구주와 자녀들등 근 800여명의 개인소지를 제주와 집례자, 집사자 전원이 무릎을 끓고 정성스럽게 제를 올리며 약 4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노환 노인회장은 󰡒산신제는 마을과 마을주민의 평안을 기원하는 화합의 장이다󰡓며 󰡒이런 산신제등 마을 대소사를 이끌며 어르신들 말 한마디면 달려와 도움 주는 마을이장과 차돌회, 부녀회, 청년회등에게 정말 고맙다󰡓라며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김우열 가옥의 박계연 할머니


'도지정 민속자료 10호 김우열 가옥'
김우열 가옥은 19세기 중반 세워진 전통가옥으로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 세 개의 건물이 각각 독립되어 형태를 갖춘 전통한옥이다. 전체적인 'ㅁ'자 형태의 평면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건축자재가 크고 가공이 정밀해 조선말기의 세련된 건축기술 수준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가옥주는 지역 학교 설립에 많은 기여를 한 안동김씨 유지의 아들 김우열씨와 어머니 박계연 할머니가 현재 거주하고 있으며 가옥은 1985년 도지정 민속자료 10호로 지정됐다. 가옥을 방문한 기자에게 박계연 할머니는 따뜻하게 맞이하며 가옥에 얽힌 옛 추억을 전해 주었다. 황해도출신으로 엽전을 등에 진 일꾼들의 행렬이 끝이 보이질 않을 만큼 잘 사는 집안의 남편을 만나 서울 본집에서 신혼생활을 하며 지내온 박계연 할머니는 그때당시 김우열 가옥은 안동김씨가에서 일하던 일꾼들이 거주하던 집이었다고 한다. 일제감정기가 끝나고 6․25가 이어지면서 당시 서울에서 피난 내려오게 되어 현재의 김우열 가옥에 지금까지 살게 됐다고 한다. 피난 당시 가옥이 넓었던 만큼 어려운 피난민들이 가옥으로 모여들게 됐는데 당시 할머니 가족은 20여명의 피난민을 받아주었다고 한다. 식량이 부족하고 모두가 어려웠던 당시, 먹을거리가 없어 함께 풀죽으로 연명하며 어렵고 힘든 6․25시절을 보냈지만 서로 의지하며 지탱해준 힘든 시절을 간직한 가옥에 대해 할머니는 작은 도움으로 다같이 살 수 있었다며 가옥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박계연 할머니는 후손들에게 대대로 가옥을 전해 유지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며 기자를 배웅해 주었다.
마을회관


'마을 대소사 주민 모두 하나 되어 이끌어 나가'
갈산면 상촌리 노동마을은 현재 245세대 6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 주민 대부분 상업과 농업에 종사하며 직장인들이 많다. 조병모 마을이장은 "노동마을은 화합가 단합이 잘되는 마을이다"며 "차돌회, 부녀회, 청년회, 개발위원회 등 마을 조직이 활성화 되어 다같이 마을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중 노동마을 1991년 봄에 구신오, 조병모 이장 등이 발의하고 결성된 차돌회는 마을 대소사 뿐만 아니라 갈산면 전체 행사에도 참여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김좌진장군 축제가 열릴 때면 김좌진 장군 생가지로부터 5km의 거리에 '청사초롱' 설치 등 지역축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또한 노동마을 연중 꽃피는 시가지 조성을 위해 페튜니아 및 국화 800분등 노동마을 시가지에 화분을 들여놓고 아름다운 갈산시장 꾸미기에 발 벗고 나선다. 노동마을에서 30년 동안 전파사를 운영해온 차돌회 이기환 회장은 "차돌회는 1991년 조직된 모임으로 노동마을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모여 봉사단체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결성하게 됐다󰡓며 󰡒병암산 정상 뾰족하고 단단한 차돌로 뒤덮여 자신들의 놀이터가 되준 차돌처럼 단단하게 똘똘 뭉쳐 마을을 위해 봉사하자라는 뜻으로 차돌회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최금자 부녀회장이 이끄는 부녀회는 어버이날이 되면 차돌회와 함께 어르신들 저녁식사 대접과 함께 카네이션 달아드리기 등 크고 작은 마을 애경사를 돌보며 힘쓴다. 그리고 다가오는 정월대보름에는 연중행사로 마을조직들이 하나되어 쥐불놀이, 농악놀이, 달집태우기, 풍선날리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을 주민을 위해 한마당 잔치를 벌이며 노동마을은 화합으로 피어나는 웃음꽃으로 가득 찬다.
명당터 여수울


한편, 최금자 부녀회장은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마을회관에 어르신들이 자주 모이는 횟수가 늘어나는데 회관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난방비 문제로 서로 눈치 보며 애용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까 걱정된다"며 "어르신들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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