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산이고, 하나의 산행이며, 하나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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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산이고, 하나의 산행이며, 하나의 마음이다
  • 유태헌 서울본부장
  • 승인 2010.12.10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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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21구간

 


올해 들어 본지는 국토의 등뼈를 밟아나가는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홍동출신ㆍ홍성고 20회ㆍ전화 010-3764-3344) 출향인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비롯해 산행기를 연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산행일자 : 2010년 12월 4일~5일
구 간 : 죽령 - 삼형제봉 - 도솔봉-묘적봉 - 솔봉 - 시루봉-투구봉 - 촛대봉 - 저수령
도상거리 : 20.18km
산행시간 : 10시간 10분 소요


이번 대간 길은 송년 산행을 위해 차갓재-저수령을 건너뛰고 저수령에서 죽령까지 약 20여km구간이다. 저수령부터는 소백산 줄기다. 저수령부터 소백산 비로봉을 잇고 있는 봉우리들은 마치 하나의 산인 듯 서로 부르며 다가서고 있다. 봉우리들은 소백산의 최고봉인 비로봉(琵盧峰. 1493.5m)을 향해 있다. 비로(琵盧) 는 "비로자나불(琵盧滋那佛) 의 줄임말로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 는 뜻이다. 즉 부처의 진신(眞身) 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저수령에서 소백산으로 가는 산줄기의 봉우리들은 모두 부처님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낮은 머리고개인 저수령에서 고개를 숙이고 산길을 들어서면 불 밝혀 길 인도하는 촛대봉(1081m)을 만나게 되고 하늘길 애써 땀 흘리며 묘적봉(1.148m)과 도솔봉(1314m)오르게 된다. '묘적'은 참선하여 삼매경의 오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도솔'은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니 산길은 그저 산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수행 길이기도 하다. 불 밝혀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촛대봉을 지나 참선을 통해 삼매경에 든 후 도솔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도솔봉을 지나면 바로 사바세계에 내려오신 부처님을 상징하고, 세속에 드러난 진리를 상징하는 연꽃이 봉우리 띄운 연화봉(蓮花峰. 1394m)이다. 그 연화봉에서 진리의 삶을 이루게 되면 바로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부처님의 진신인 비로봉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소백산 비로봉을 가는 산행은 그것 자체가 수행이요, 깨달음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이번 대간 길은 송년 산행을 위해 차갓재-저수령을 건너뛰고 저수령에서 죽령까지 약 20여km구간이다. 저수령부터는 소백산 줄기다. 저수령부터 소백산 비로봉을 잇고 있는 봉우리들은 마치 하나의 산인 듯 서로 부르며 다가서고 있다. 봉우리들은 소백산의 최고봉인 비로봉(琵盧峰. 1493.5m)을 향해 있다. 비로(琵盧) 는 "비로자나불(琵盧滋那佛) 의 줄임말로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 는 뜻이다. 즉 부처의 진신(眞身) 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저수령에서 소백산으로 가는 산줄기의 봉우리들은 모두 부처님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낮은 머리고개인 저수령에서 고개를 숙이고 산길을 들어서면 불 밝혀 길 인도하는 촛대봉(1081m)을 만나게 되고 하늘길 애써 땀 흘리며 묘적봉(1.148m)과 도솔봉(1314m)오르게 된다. '묘적'은 참선하여 삼매경의 오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도솔'은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니 산길은 그저 산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수행 길이기도 하다. 불 밝혀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촛대봉을 지나 참선을 통해 삼매경에 든 후 도솔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도솔봉을 지나면 바로 사바세계에 내려오신 부처님을 상징하고, 세속에 드러난 진리를 상징하는 연꽃이 봉우리 띄운 연화봉(蓮花峰. 1394m)이다. 그 연화봉에서 진리의 삶을 이루게 되면 바로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부처님의 진신인 비로봉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소백산 비로봉을 가는 산행은 그것 자체가 수행이요, 깨달음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오르막길 30리, 내리막길 30리, 죽령고갯길

하나의 산이고, 하나의 산행이며, 하나의 마음이다. 이렇듯 저수령에서 출발하여 죽령을 통해 비로봉까지 가야 하는 소백산 구간이지만 차마 부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부족한지라 죽령에서 저수령까지 남진 한다. 새벽 02시30분경 죽령에 도착하니 소백산의 칼바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영주와 단양을 잇는 죽령(竹嶺.689m)은 158년(아달라왕5년)에 신라의 죽죽(竹竹)이 처음으로 고갯길을 열었다. 고개 나이가 무려 1.850살 가까이 된다.기록상으로 백두대간 분수령에서 두 번째로 열린 고갯길이다. 첫 고갯길은 죽령보다 2년 전인 156년에 열린 계립령, 곧 지금의 하늘재다. 죽령은 하늘재와 더불어 고구려, 신라가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며 패권을 다투던 곳이다. 그 흔적으로 영춘에 온달산성이 있다. 조선시대에 죽령은 문경-충주의 새재, 영동-김천의 추풍령과 함께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는 3대 관문에 속했다. 현재 고갯길은 5번 국도가 지난다. 1942년 국내에서 두 번째로 긴 4.5km의 죽령굴이 뚫리며 중앙선 열차가 다니기 시작하였고, 2002년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백두대간이 4.6km직선의 죽령 터널로 뻥 뚫렸다. 안동, 풍기, 순흥 선비들과 부보상들을 힘겹게 하던 오르막길 30리, 내리막길 30리, 꼭 하룻길의 죽령 고갯길을 승용차를 타고 눈 할 사이에 지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자 5번 국도는 순식간에 옛길이 되었다. 오르내리던 차량으로 밀리던 고갯길은 한참을 기다려도 차 한대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한가하다. 길도 썰렁하고 마을들도 왠지 스산하다. 죽령이 죽은 걸까. 아니다 차량이 뜸해지면서 죽령은 살아나고 있다. 행인들은 이전에 비해 훨씬 여유롭게 죽령과 가까이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고갯마루에는 소풍 나온 학생들로 가득하고, 희방사역에서 고갯마루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인 죽령 옛길은 찾는 이들도 점차 늘어난다. 죽령은 그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문화적인 콘텐츠가 넘친다. 따라서 주변의 자연과 연계한 테마를 개발하면 아마도 문경새재에 버금가는 답사 코스가 될 것이다.

'도솔'은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 의미

쏟아지는 별 마음에 담지도 못하고, 대간길은 죽령을 02시50분에 출발한다. 가파른 길을 60 여분 오르니 죽령 1.3km 도솔봉 4.7km을 알리는 이정목이 서있다. 바로 곁에는 산행을 하다가 먼저 간 악우님에게 친구들이 위령문을 새겨서 설치해 놓았다. "여기 산 을 좋아하던 우리친구 종철이가 백두대간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잠시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 여기서부터 된 비알이 시작되고 힘들게 1130봉과 1230봉을 지나 삼형제봉(1255m)에 오른다. 힘든 계단 길을 오르내리고 소백산 칼바람과 싸우며 05시경 도솔봉(1314.2m)에 오른다. 도솔봉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에 걸쳐있고, 소백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동쪽의 삼형제봉과 더불어 가장 한적한 산으로, 육산이지만 정상일대는 암봉군이며 너널지대가 특이해 스릴 있는 산행을 줄길 수 있다. '도솔'은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니, 이 길은 진리의 길로 인도 하는 촛대봉을 지나 참선을 통해 삼매경에 든 후 도솔천에 들어가는 경건한 길이다. 철쭉과 진달래가 동산을 이루며 고산 식물이 많아 소백산의 축소판이라 불리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기읍의 야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아직 새벽이라 아름다운 운무는 보이지 않지만 어느 시인의 '도솔봉 운무 '시 한수 스친다. ' 운무야 너도 도솔봉을 찾아구나! 색색 저고리 입은 새 악시 볼이 그립더냐. 옛님 연지 곤지가 그리워서 찾아 왔느냐. 도솔봉은 사랑을 머금은채 말이 없구나. 나하고 놀다 구름타고 산을 내려. 죽령 주막에 주 향기에 취해보세.' 시 한수에 취하고 서 있기조차 힘든 바람 앞에 간신히 사진 촬영 후 가파른 암벽지대 계단 길을 내려서면 정상석을 대신해 동판으로 새겨진 묘적봉(1148m)에 오른다. '묘적'은 참선하여 삼매경의 오묘한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묘적'은 참선하여 삼매경의 경지에 이르는 것

작은 봉우리 몇 개 오르내리니 묘적령이다. 좌측 능선 길은 고향치 가는 길이고 우측은 옥녀봉 가는 길이다. 여기서 조금 내려가 바람을 피해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한다. 솔봉(1102m)에 오르니 주변이 모두 환상적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산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설치된 송전탑 이지만 흉물스럽다. 송전탑 아래를 지나 봉우리 하나를 넘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바위 위에 돌탑이 서 있는데, 대간길만 바라보고 가다가는 놓치기 십상이다.

뱀재를 지나 흙목산(1033m)정상에서 잠시 쉬면서 가야할 대간 길을 바라보니 그 멀지 않아 보인다. 조금 내려오니 단양 유황천과 예천군 원용두 마을가는 싸리재를 지나 유두봉(1059m)을 넘고 배재와 표지석도 없는 시루봉(1110m)에 오른다. 마치 오른쪽 바위의 모습이 투구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투구봉(1080m)을 지나면 마지막 봉우리인 촛대봉(1081m)을 만난다. 정상에서 지나온 마루금을 뒤돌아보니 삼형제봉, 도솔봉, 묘적봉, 솔봉, 시루봉까지 마루금은 단양 온천을 중심으로 마치 활 모양으로 휘어져 있다. 정상에서는 소백산 관광 목장이 보이고 저수령으로 간간이 차량 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3여분 내림길을 내려오면 백두대간 저수령 표지석이 있는 저수령(846m)에 13시경 도착한다. 저수령은 예천 용두리와 단양 울산리를 잇는 고개로 알프스의 목장을 연상케 하는 평퍼짐한 언덕이 넓다랗다. 순 우리나라 말로 '낮은머리고개'라 한다. 그러나 고갯마루가 해발850m 가까이 되니 결코 낮은 고개는 아니다. 인근 주민들은 이 고개가 소백산 군에서 가장 낮은 고개라 저수령이라 했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소백산의 대표적인 고개인 죽령이 해발 689m밖에 안 되니, 이 또한 제대로 된 유래는 아닌듯 하다. 이외에도 이 고개를 넘는 왜적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선 힘없는 나라의 백성들이 가졌던 소박한 소망을 엿볼 수 있다. 험난한 산속으로 난 고갯길이 워낙 가팔라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다(저수 低首)'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게 잘 알려진 유래다. 단양 쪽은 부드럽다해도 예천 쪽 고갯길은 구절양장이니 옛날에 다리품을 팔며 이 고개를 넘던 선비나 장꾼들은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에 영광은 간곳없고, 저수령휴게소는 폐업하고 텅 빈 주차장만 찬바람과 함께 을씨년스럽다. 후미가 도착하여 단양에서 삼도봉을 바라보며 늦은 점심에 소주 한두 잔 후 귀경길에 오른다. 차창 밖 아름답게 펼쳐진 산들을 바라보며 왜 힘든 산행을 하는가 생각게 한다. 치악산 자락에 사는 서양화가 김만근의 말로 대신하면 "육체를 극한의 고통으로 몰아넣어 자신을 체크하는 산악인들은 결국 마음의 산을 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철학자에 가깝다" 하였다. 철학자는 아니더라도 60대 중반에 산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온다. 자신감과 성취감이 밀려와 눈을 감았는데, 어느새 서울에 도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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