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말 위대하다'는 말만 던지고는 넋을 잃기 십상인 북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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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위대하다'는 말만 던지고는 넋을 잃기 십상인 북한산
  •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 홍성고 20회)
  • 승인 2011.01.0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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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 유태헌의 전국 100대 명산 산행기 서울 북한산 ①

 


홍주신문은 국토의 등뼈를 밟아가는 산꾼 유태헌(홍주신문 서울총괄본부장홍동출신홍성고 20회손전화 010-3764-3344)의 전국의 100대 명산 산행기를 연재하고 있다. 홍주신문 독자들과 산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편집자 주>

산행일자 : 2011년 1월 2일
구 간 : 불광동-족도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문수봉-대남문-문수사-구기동
산행거리 : 6.7km
산행시간 : 4시간 30분 소요


신묘년 첫날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둘째 날은 신년 첫 산행을 하기로 하고, 설악산과 북한산을 고민하다가 북한산으로 결정했다. 북한산은 서울 북쪽에 위풍당당한 기상(氣像)으로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다. 서울의 진산(鎭山)이자 우리 모두의 산이다. 북한산의 주봉 백운대(白雲臺)의 높이는 해발 836.5m이다. 그러니까 높이만 따진다면 1000m가 넘어야 행세께라도 할 수 있는 거산(巨山) 반열에 끼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북한산은 명산이다. 명산이라도 그냥 명산이 아니다. 우리나라 '오악(五嶽)'에 드는 명산이다.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오악이라고 하여 이름 난 산 다섯 곳을 꼽아 왔다. 북쪽의 백두산, 동쪽의 금강산, 서쪽의 묘향산, 남쪽의 지리산, 그리고 중앙에 삼각산이 그것이다. 삼각산은 북한산의 옛 이름이다. 이쯤되면 북한산에 무관심 했던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 한데 묶어 웅장, 신비, 수려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보고 있노라면 정수리가 찡해지고 몸 전체가 저려오는 전율(戰慄)을 느낀다. 이것을 산의 정기(精氣)라고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북한산은 분명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으로 부터 백두대간을 통해 한맥(韓脈)의 정기를 맥맥이 이어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아, 참으로 입에 담기조차 외경스러운 북한산이여! 북한산은 뭐니 뭐니 해도 백운대를 정점으로 만경대와 인수봉이 창출하는 백악의 조형미가 압권이다. 이 세 개의 거대한 암봉(巖峰)들은 삼각형의 절묘한 형세로 어우러져 삼각산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쪽빛 하늘을 금방이라도 꿰뚫을 듯이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다. 백운대는 주봉답게 의젓하고, 인수봉은 꿋꿋한 남성미를 한껏 뽐내고 있으며, 만경대는 인간들의 섣부른 접근을 거부라도 하듯 톱날처럼 날카롭게 서있다. 하긴 북한산은 인수봉이 아니더라도 산 전체에서 우람한 남성미가 철철 넘친다.

 

 

 

 


'사람(人)이 산(山)에 있으매 선인'이요,
'사람(人)이 골짜기(谷)에 머무르니 속인(俗人)'이다

설악산 지리산만이 명산이 아니다. 북한산에 오를 때마다 이 산 역시 설악산과 지리산이 갖고 있는 온갖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값진 문화유산을 지녔다고 자랑한다. 비록 규모는 작더라도 기암괴석을 어루만져 볼 수 있다. 옥류에 손을 씻어 보고 참나리 향기에 취해 본다. 비가 오고 나면 진동하는 계곡의 물소리, 그리고 폭포, 운해(雲海)라도 운 좋게 만나면 '아!' 하고 탄성을 지른다. 버스나 지하철 한번으로 이만한 명산을 아무 때나 쉽게 만날 수 있으니 그야 말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한자(漢字)를 파자(破字)하여 이렇게 풀이했다. 선인(仙人)은 '사람(人)이 산(山)에 있으매 선인'이요, 속인(俗人)은 '사람(人)이 골짜기(谷)에 머무르니 속인'이라고, 이렇게 본다면 선인은 따로 있는 것도, 거창한 존재도 아닌 듯 싶다. 산이 좋아서 산을 찾고, 산속에 푹 묻혀서 산을 생각 하는 것이 곧 선인이 되는 길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번 산과 더불어 잠시나마 선인이 되어 보기 위해서 명산인 북한산에 오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수백 번 오른 북한산 이것만 설레는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불광동역에 내리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북한산지역과 도봉산지역은 한데 묶여져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 되었다. 1983년 4월에 열다섯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북쪽으로는 의정부 사패산에서 부터 남쪽으로 서울 불광동에 이르기까지 그 넓이가 78.5평방킬로미터, 이중 북한산이 지역이 54.5평방킬로미터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산은 산 전체가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악산(岳山)이다. 1억5000만 년 전 지구 지각 변동 때 굳어진 것이라 한다.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풍상우로(風霜雨露)에 갈고 다듬어 진 것이다. 그러니 기기묘묘함이 삼각산 세 봉우리에만 그치겠는가. 기암과 괴석들이 산 여기저기에 무수하게 널려 있다. 북한산의 이런 경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면 소금강(小金剛)이라고 한들 너무 과장된다고 나무라지 않을 성 싶다.

 

 

 

 

 

 

 

 

 

 


백운대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내려뻗은 능선들을 밟아 가면 북한산의 암봉군을 순서대로 만날 수 있다. 우선 서쪽으로 굽어보면 백운대 발자취에서 내려 뻗은 원효봉능선이 숨 돌릴 겨를도 없을 만큼 가파른 경사로 멀리 효자동 끝자락에 있는 북한산 길까지 내리 뻗어 있다. 이 능선에 영취봉(염초봉)과 원효봉이 솟아 있다. 군데군데 북한산성의 성벽과 북문, 서암문 등도 능선의 암벽과 같이 하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 소나무와 암릉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영취봉 릿지와 함께 파랑새 릿지는 숨은 벽 릿지와 만경대 릿지와 함께 쌍벽을 이룬다. 백운대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면 우이능선이다. 우이능선에는 영봉이 솟아 있고 우이능선에서 북서쪽으로 갈라져 나간 상장능선에는 산장봉이 내려 다 보인다. 다음은 산성주능선으로 주능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가지 능선을 거느린 북한산 산줄기의 가장 큰 맥(脈)이다. 이 주능선을 밟아야 북한산의 전모를 알 수 있다. 백운대 밑 위문(衛門)에서 떠나 만경대를 왼쪽으로 하고 그 허리께 서쪽 벼랑길을 돌아서면 바로 거대한 암봉이 가로막는다. 높이 716m의 노적봉(露積峰)이다. 이 노적봉은 북한산성 입구나 원효봉에서 바라보아야 그 진면모를 알 수 있다. 온 몸을 뿌리째 드러내고 버티고 선 화강암 덩어리에 "아, 정말 위대하다"는 말만 던지고는 넋을 잃기 십상이다. 그 위용이 삼각산 세 봉우리에 못지않아서 인수봉을 빼고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을 삼각산이라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실제로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를 외삼각산,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을 내삼각산으로 구분하는 설(說)도 있다. 계속해서 용암봉, 일출봉, 반용봉, 시단봉, 동대장등을 거쳐 대동문에 이르면 진달래능선이 왼쪽으로 떨어져 나가고, 오른쪽으로 조금 더 나아가면 칼바위능선이 갈라진다. 칼바위라는 별난 이름은 이능선 북쪽 경사면의 바윗결이 칼날을 촘촘히 세운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능선은 남서쪽으로 뻗다가 한 번 불끈 힘주며 솟는데 보현봉과 문수봉이다. 보현봉에서는 형제봉능선이 갈라지면서 형제봉, 북악스카이웨이, 인왕산까지 이어진다. 산성주능선은 이윽고 문수봉에 이르러 비봉능선과 의상봉능선에게 배턴을 넘긴다. 남서쪽으로 뻗은 능선이 비봉능선이고 북서쪽으로 휘어지면 의상봉능선이다. 비봉능선에는 승가봉, 비봉, 향로봉, 족두리봉으로 이어지며, 의상봉 능선 쪽으로는 나한봉, 나월봉,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 등 수 많은 봉우리들이 병렬했다.

진흥왕순수비, 추사 김정희가 발견 판독해 세상에 알려
오늘은 수많은 아름다운 능선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라는 비봉능선을 오르기로 하고 불광동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구기터널을 향해 10여분 걸으면 북한산 둘레길과 마주하는 터널입구에서 좌측으로 가파른 능선을 30여분 치고 오르면 맨 먼저 족두리봉(수리봉, 367m)을 만난다. 멀리서 보면 족두리를 쓴 모습으로 보여 흔히들 족두리봉으로 부른다. 족두리봉은 쳐다보는 방향에 따라서 수리봉, 시루봉, 독바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정상에서 동쪽으로는 가야할 향로봉, 비봉, 문수봉, 보현봉, 멀리 백운대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족두리봉을 좌측으로 끼고 눈길을 조심조심 오르내리며 걷다보면 어느덧 향로봉(539m)이다. 향로봉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북한산 일대의 정경과 수도 서울의 위치가 아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배산(북한산) 임수(한강)의 전통적인 주거지인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의 참된 발전은 북한산과 한강을 얼마나 조화롭게 할 것인가 가 관건이다. 세계 속에서 빛나는 서울은 개성 없는 서구식 양적 팽창이 아니라 북한산과 한강이 조화를 이루는 서울 속에서, 즉 배산임수라는 우리 선조의 주거 조건을 잘 살리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향로봉 정상 능선등로는 눈이 많이 와서 폐쇄함에 따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가파른 내리막과 오르막을 오르내리면 이마엔 땀방울이 솟는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없고 햇빛이 따뜻하다보니 겨울산행 하기엔 최고 좋은 날이다. 전망 좋은 바위에서 의상봉능선과 백운대, 만경봉, 인수봉, 노적봉을 바라보며 걷다보니 어느덧 비봉(560m)이다. 비봉 정상에는 국보 제3호인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순수비가 서 있다. 신라 진흥왕(재위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 가운데 하나로, 한강 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비의 형태는 직사각형의 다듬어진 돌을 사용하였으며, 자연 암반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세웠다. 윗부분이 일부 없어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비몸의 크기는 높이 1.54m, 너비69cm이며, 비에 쓰여 있는 글은 모두 12행으로, 행마다 32자가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비문의 내용은 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까닭 등이 새겨져 있는데, 대부분이 진흥왕의 영토 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의 건립연대는 비문에 새겨진 연호가 닳아 없어져 확실치 않으나 창녕비가 건립된 진흥왕22년(561)과 황초령비가 세워진 진흥왕29년(568) 사이에 세워졌거나 그 이후로 짐작케 한다. 조선 순조16년(1816)에 추사 김정희가 발견하고 판독하여 세상에 알려 졌으며, 비에 새겨진 역사적 사실 등은 삼국시대의 역사를 연구 하는데 귀 중한자료가 되고 있다. 진품은 용산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정상에는 모조품이 서 있다.

사모바위 가기 전에 4거리를 만난다. 좌측은 삼천사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승가사(僧伽寺)가는 길이다. 승가사는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비봉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 말사에 속해 있다. 756년(경덕왕15)에 낭적사의 승려 수태(秀台)가 창건하고 당나라 고종 때 천복사(薦福寺)에서 대중을 가르쳤던 승가(僧伽)를 기르는 뜻에서 승가사라 이름 지어졌다. 1024년(현종15) 지광(智光)과 성언(成彦)이 중수하고, 1099년(숙종4)에는 의천(義天)이 불당을 고쳐지었다, 조선후기에는 불교부흥운동의 중심지가 되었고, 1941년 도공(道空)이 크게 고쳤다. 6.25전쟁에 불타 크게 망가진 것을 1957년에 도명(道明)이 크게 수리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산신각, 향로각, 동정각, 범종각, 대방, 요사채등이 있다. 또 유물로는 절 뒤편 자연 입석에 부조로 새긴 마애석불석가여래좌상(보물215호)이 전하고, 석굴 안에는 고려 현종 때 조성된 승가사석조승가대사상(보물10000호)이 남아 있다. 4거리를 지나면 넓은 헬기장이 있고 사모바위가 보란 듯이 버티고 서 있다. 조선 인조임금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자가 전쟁터로 갔다가 다행히 살아서 고향에 돌아와 보니, 사랑하는 여인이 청나라로 끌려갔다. 전쟁이 끝나고 여인들은 다행히 풀려났으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금의 홍은동 지역에 모여 살았다. 남자는 여인을 찾으려고 그 지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그는 북한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언제고 돌아올 그녀를 기다리다가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구기동 쪽에서 사모바위를 보면 북쪽을 향해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북한산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가장 아름다운 곳 '승가봉'
사모바위를 지나 승가봉에 오르면 북한산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흰 눈이 내린 설경은 설악산 설경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의상봉능선과 그 뒤로 노적봉, 백운대, 만경봉, 인수봉, 문수봉, 보현봉, 형제봉, 북악산, 인왕산, 남산, 안산까지 펼쳐진 설경은 가히 선경이다. 때 늦은 점심식사 후 가파른 승가봉을 내려서고, 암릉을 치고 오르면 문수봉(715.7m)을 만난다. 문수봉 정상에 서면 비봉능선이 용의 등뼈처럼 우람하고 한강 너머 인천의 계양산과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성곽 길을 따라 내려서면 대남문(大南門)이다. 대남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문수사(文殊寺)를 만난다. 종로구 구기동 문수봉 아래 있는 문수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종의 말사다. 1109년(고려 예종4) 묵암(黙庵), 탄연(坦然)이 창건하였다. 탄연은 고려 때 신품사현(神品四賢)중 한명으로 알려진 서예가로, 이곳의 암굴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목격하고 문수암(文殊庵)이라는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이후 오대산 상원사, 고성 문수사와 함께 우리나라 문수보살 3대 성지로 알려졌다. 1451년(문종1) 연창공주가 중창한 뒤 여러 차례 중수 하였으나, 6.25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57년 신수(信洙)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오백나한을 모시고 있어 나한 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어머니가 이절에서 나한에게 백일기도를 한 뒤 이승만을 낳았다고 한다. 암행어사 박문수 또한 이곳에서 백일기도 후에 낳았다. 이러한 인연으로 1960년경 이승만이 이곳에 들러 참배하였고, 이 때 이승만이 쓴 문수암 이라는 현판이 요사채에 걸려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나한전,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의 문수보살상은 고종의비 명성황후가 모신 것이고, 석가모니들은 영친왕 이은(李垠)의 비인 이방자가 모신 것이다. 대남문 옆 남장대 벼랑 밑 문수봉에 있어, 북한산에서는 전망이 가장 뛰어난 사찰이다. 문수사를 지나 보현봉과 문수봉 골짜기로 한 시간여 내려와 구기동에서 제철에나 맛 볼 수 있는 굴전에 막걸리 한잔으로 북한산 첫 번째 이야기를 마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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