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짓는 죄 - 증오로 돌아오는 말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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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짓는 죄 - 증오로 돌아오는 말폭탄
  • 김선미 디트뉴스 편집위원
  • 승인 2011.01.2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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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이 성기게 섞인 바람은 살을 에는 듯 차가왔다. 워낙 게으른 성격에다 미용실 가는 걸 엄청 귀찮아하는 탓에 정말 벼르고 벼르다 미용실에 들렀다.

집안 혼사 준비로 밖에 나갔다가 허둥지둥 달려와 내 머리를 만져주는 미용사와 매섭게 추운 날씨 이야기를 나누다 화제가 가정사에 까지 이르게 됐다. 난방을 못해 집안에서 동사한 할머니 이야기에서 시작된 대화는 비수가 되는 독설의 상처로 확장되었다.

그녀는 머리칼을 정리하는 도중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더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에게 교통사고가 났다는 거였다. 그 얼마 전에는 신랑 되는 시동생도 사고로 폐차를 했다고 했다.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시어머니 모진 말 털어놓으며 낯선이 앞에서 그렁그렁
"부모님이 몹시 놀라셨겠다"고 인사치레의 말을 건넸다. 전화 받기 전 아이가 다섯 살 때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연이은 자식들의 사고에 그 부모 심정이 어땠을까 싶어 건넨 인사였다.

그랬더니 반응이 의외였다. "우리 어머니는 냉정하셔서 아무 상관 없어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들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불편한 몸으로 퇴원을 했어도 이후 한 번도 집으로 찾아와 아픈 아들을 들여다보지 않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오히려 몸이 불편한 아들과 어린 손자를 부양하는 며느리에게 맏며느리 노릇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타박만 했단다. 그 때 시어머니가 쏟아냈던 모질고 매몰찬 말들은 7-8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비수가 되어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며 순간 눈물을 그렁거렸다. 그다지 가깝지 않은 단지 손님 앞에서의 일이다.

물론 시어머니도 할 말은 있겠지만 시집 온지 몇 해 안 된 며느리에게 어떤 험악한 말들이 퍼부어졌을지는 미루어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남편은 아파서 쓰러져있지, 위로를 해줘도 시원치 않을 시어머니는 모진 말로 윽박지르지 아마도 남편을 수발하는 일보다 주위의 모진 말들을 견디는 일이 몇 천 배 더 힘들었을 것이다.

미 애리조나 총격사건 후 독설정치에 대한 자성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많은 여성들은 물리적 폭력도 견디기 어려운 공포이지만 언어폭력 앞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터트린다. 악독한 말이나 욕설, 모욕 등의 행위를 통해 모욕감이나 혐오감, 공포감을 일으키는 󰡐언어폭력󰡑은 물리적 폭력이 주는 고통보다 더한 모멸감과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몇 십 년 전에 맞았던 기억은 가물거려도 가슴을 후벼 파는 모욕적인 언사는 나이 들어서도 어제 일처럼 기억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본다. 팔십 넘은 할머니가 새댁 시절에 들었던 남편이나 시댁의 모욕적 언사에 여전히 파르르 떠는 모습도 새삼스럽지 않다. 그만큼 상처와 원한이 깊다는 이야기다. 새해 벽두부터 언어폭력의 하나인 독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8일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발생한 6명의 사망자를 낸 총격난사 사건의 후폭풍이 미 정치권을 강타하며 우리사회도 독설, 비방에 대한 반성이 표출되고 있다.

연방하원의원의 머리를 겨눈 무차별적인 총격사건은"독성이 강한 적대적 방식으로 변한 워싱턴의 정치문화 탓으로 그 대가를 치른 것"이라며 "정치적 표현을 보다 부드럽게 낮추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자성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권도 결코 빠지지 않아 정치 희화화 주범
'독설' 하면 우리 정치권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상대를 향한 모질고 독한 말들은 우리의 정치 수준마저 후퇴시키며 정치를 희화화 하고 있다. 독설은 대통령이라고 비켜가지 않는다.

국격을 생각한다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언어들로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고 심지어는 사실관계까지 왜곡하고.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정치권의 독설정치를 확대 재생산하는데 앞장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해를 맞이한 지 벌써 3주째이다. 작심삼일이라고 새해 아침에 거창하게 세웠던 계획들은 벌써 사문화됐을지도 모르겠다. 가령 담배를 끊겠다라든가 운동을 하겠다든가 하는 일들 말이다.

아직 새해가 아니라고 우기면서 다짐 하나 해본다. 직업상 칭찬을 하기보다는 비판 하는 일이 훨씬 많지만 글을 쓸 때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글을 쓰겠노라고 말이다. 정당한 비판이야 당연하지만 적어도 악의에 찬 표현은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처가 되는 말은 삼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이다. 얼마나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독설은 상대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보다는 원한과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는 흉기라는 것을 나부터 다시 한 번 새겨야겠다. 말로 짓는 죄는 씻을 길도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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