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으로서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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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으로서의 문화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1.01.2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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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으며,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늦은 감이 있지만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다문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과 같은 형태의 다문화운동은 결코 바람직한 미래를 건설 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문화란 자연환경과 그 속에서 사는 인간이 자자손손 대를 이어오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낸 유무형의 산물이며 특수성과 보편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떤 인류학자는 에스키모들이 인디언들처럼 백인들에게 학살당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은 성문화로 차이로 해석했다. 에스키모들은 이방인들에게 성을 개방하는 반면, 인디언들은 온 부족이 나서서 여성의 성을 생명처럼 지켰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결과 문란(개방)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환경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에스키모처럼 외부인들과의 접촉이 어렵고 혹한의 자연에서는 종족보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의 유전인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성을 개방하여 새로운 유전인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회를 유지해 나가기위한 불가피한 문화현상이다.

그런데 이와 다른 환경에 있는 인디언들은 외부인들과의 접촉이 빈번함으로 오히려 성 개방은 부족전체를 멸망시키는 일이 된다. 이것은 대다수의 사회에서 성을 숨기고 터부시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서 에이즈처럼 성을 통해서 옮겨지는 성병들은 치유가 어렵고 자칫 사망에 이르며 대를 이어 유전되어 건강한 종족유지에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절친한 친구가 방문하면 부인을 내주어 잠자리를 함께하는 것으로 우정을 돈독히 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러한 문화는 사냥과 같은 위험한 일로 남자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빈번한 곳에서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부인을 함께 공유 할 수 있는 친구사이가 된다는 것은 불의의 사고로 자신이 죽었을 때 남아있는 가족들을 보살펴 달라는 무언의 부탁이며, 일종의 보험과 같은 계약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는 같은 문화권 안에서는 공동체 구성원들 간에 이루어진 하나의 약속체계이며 고정관념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보편성을 가지지만 다른 문화권과 비교 될 때는 확연한 특수성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특수성 안에는 종족보전(인간행복)이라는 동일목적이 내포되어 있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부르는 아리랑이지만 산악지방인 정선아리랑은 박자가 느린 반면, 진도아리랑은 박자가 경쾌하고 빠르다. 이것은 산악지방은 짐을 지고 고개를 넘어 다녀야 하므로 발걸음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박자가 느려지고, 상대적으로 들판이 발달된 곳에서는 발놀림이 빠르고 풍요한 농산물이 있어 놀이(축제)형태의 경쾌하고 빠른 박자가 발달된다. 이때의 아리랑은 보편성이지만, '정선아리랑'과 '진도라이랑'은 특수성으로 구분된다.

살펴보았듯이 인류는 인간행복이라는 동일목적을 지향하면서도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의 문화가 생겨난다. 그래서 문화는 기계문명처럼 선진과 미개 즉, 열등과 우월의 방식으로는 평가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문명의 영향으로 문화의 형태가 달라진다 할지라도 자연환경이라는 특수성을 완전히 벗어 날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문화를 말 할 때, 자연환경(역사 등)이 주(主)가 되고 거기에 사는 사람이 종(從)이 되어야 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매우 역동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비계획적이지만 변화에 대처능력이 뛰어나고 전체를 보는 눈이 정확하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4계절의 뚜렷한 변화 때문에 생겨난 성격이다. 계절의 변화는 주변이라는 자연환경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체리듬과 호르몬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긴 시간동안 일 년에 4번이라는 환경변화와 생체변화를 겪으면서 살아왔으므로 당연히 역동적이며, 순간대처능력이 뛰어나다. 전체를 보는 안목은 집을 지으면서 여름만 설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겨울만 생각 할 수 없어서 한 곳에서 4계절이 완벽히 해결되는 한옥이라는 주거형태를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한국인이라는 독특한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내었고 지역과 국가 간의 교류를 통해서 발전을 거듭해 왔으며, 다문화라고 부르는 각 나라와 민족 역시 이와 같은 방식문화와 고정관념이라는 일정한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문화운동에 있어서 각국의 문화의 다양성의 인정 보다 그들(이주민)이 문화의 주(主)가되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자연환경과 거기에 살면서 만들어낸 삶의 방식)에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를 먼저 가르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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