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는 안 보고 싶은데 할머니가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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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는 안 보고 싶은데 할머니가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 최선경 편집국장
  • 승인 2011.05.06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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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이혼으로 조손가정 이룬 별이와 민수네


가정의 달 5월이다. 빠르게 가족 간의 유대 관계가 와해되고 해체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가정 형태가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가족 구성을 알아보고 그들의 삶의 모습을 4주에 걸쳐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① 조손 가정

별이와 민수는 오랜만에 북적이는 집이 좋은지 연신 들뜬 모습이다. 별이네 집을 찾아간 날은 마침 청운대 방송영상학과 학생들이 나와 별이네 가족을 소재로 휴먼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그리웠던지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누나 별이는 대학생 오빠한테 업혀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동생 민수는 대학생 누나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별이와 민수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건 5년 전쯤이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결국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맡겨진 셈이다.
“아이들 아빠가 다시 결혼을 하고 새로 가정을 꾸렸지만 지난 해 새엄마가 병이 나서 죽고 말았다. 그 후 애들 아빠는 혼자 방황하고 요즘엔 가끔 집에 들르곤 한다”며 할머니는 몹시 안타까워했다.

별이네처럼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손자녀로 구성된 가정을 ‘조손(祖孫)가정’이라고 한다. 가족 구성원이 노인과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없다. 별이네도 마찬가지다. 영세민으로 등록되어 있고 할머니가 장애등급을 받은 상태이며 아이들 앞으로 기초 생활수급비가 지급되어 그나마 생활을 유지한다. 할머니는 현재 우울증과 관절염, 고혈압 등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수십 알의 약으로 근근이 버텨 나가는 형편이다. 사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재혼가정으로 엄격하게 말하면 아이들이 친손자녀도 아닌 셈이다.

“내가 정신이 가끔 없어요. 그래서 애들한테 화도 내고 혼내기도 많이 해요. 아직은 애들이 말을 잘 들어요. 어떨 땐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라며 띄엄띄엄 더디게 말을 이어 가신다.

현재 별이는 초등학교 5학년, 민수는 3학년이다. 그런데 두 아이는 모두 학습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조부모들은 손자녀 양육의 어려운 점으로 양육에 따른 경제적 문제를 꼽고 그 다음으로는 아이들의 생활과 학습지도 문제를 꼽는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집 근처 지역아동센터에서 나머지 시간을 보낸다. 물론 아동센터에서 공부도 하고 저녁도 먹는다.

한사랑지역아동센터 강난예 센터장은 “할머니께서 아이들을 위해 여간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다. 몸이 불편하시면서도 항상 아이들 옷도 깨끗하게 입히고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센터로 연락을 주신다. 애들이 어디가 아픈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집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꼬박꼬박 얘기를 하시고 관심을 많이 갖고 계신다”며 “현재 별이네 경우엔 할머니께서 집안일을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청소라든가, 빨래라든가, 밑반찬 등의 지원이 제일 필요하다”고 말한다.

촬영을 나온 청운대 방송영상학과 구경혜 양은 “처음엔 과제 때문에 아이들을 만났지만 주기적으로 한 달에 한번이라도 찾아올 예정”이라며 “아이들이 너무 잘 따라서 울컥했다. 작은 관심만 보였는데도 너무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난다. 가까운 주변에 이렇게 소외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참 가슴이 아프다”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현재 군내 면 단위 학교의 조손가정 실태를 조사해 보니 A초등학교 51명 중 17명, B초등학교 18명 중 5명, C초등학교 61명 중 15명이 실질적인 조손가정으로 파악됐다. 대략 30~40% 수준이다.
대평초등학교 교무부장 이혜란 교사는 조손가정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서류상의 조손가정보다 사실 부모의 이혼이라든가 맞벌이 등으로 실제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랑 같이 사는 아이들이 많다. 손자녀를 양육하는 조부모는 연로하고 학력, 경제적 수준이 낮아 먼저 경제적 지원을 통한 양육스트레스를 낮춰주면서 건강 문제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손자녀의 경우 학업지원, 부모의 유기에 따른 정서적 지원, 취업·진로지도 등을 통해 빈곤이 대물림되지 않고 사회적 약자로 소외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날이 가까워온다. 아이들에게 무슨 선물을 받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대뜸 핸드폰과 닌텐도라고 답한다. 별이와 민수도 다른 아이들처럼 게임도 좋아하고 새 핸드폰을 갖고 싶어하는 욕구는 똑같으리라.
아이들을 만나면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둘다 꿈이 없다며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이었다.

“꿈 없어요. 되고 싶은 것도 없어요. 엄마, 아빠 안 보고 싶어요. 근데 우리 할머니가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어린 민수의 눈빛이 흔들린다.
두 손자를 지켜보던 할머니는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렇다면 저 아이들은 누가 돌볼 것인지, 이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쩌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여겨질 수 있는 조손가정에 대해 이웃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정부의 체계적인 정책과 지원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 가족 해체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각 가정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의 버팀목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벼랑 끝에 내몰린 조손가정’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가정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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